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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담
민중을 위한 동화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독일의 근대적인 민주주의가 출현하면서, 독일의 민족주의가 대두하고 여기에 가장 앞장선 것이 문화적인 측면의 낭만주의 현상이다. 낭만주의자들은 중세의 역사와 문학에 열광했고 민족문화의 증거들을 모으고 독일의 언어, 문화, 역사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것을 연구한 목적은 분열되어 있던 독일의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민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민중 문학을 교육적인 수단으로 삼아 국민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주고자 한 것이다. <그림 동화의 숨겨진 진실>의 저자 또한 1812년과 1815년에 발간된 <그림 동화> 1, 2권을 이런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이와 유사하게 해방 후 1950~1970년대에 국내에서도 야담을 다룬 잡지가 출간되었고, 1960년대 초에는 굵직굵직한 민간 야담, 설화, 사화를 모아 놓은 전집들이 출간되는 등 민중 설화 수집 열기가 뜨거운 적이 있었다. 아마 이러한 현상도 위의 분석과 맥락을 같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 형제의 첫째인 야곱 그림의 말을 빌리면 이런 노력의 목적은 아래 문장으로 요약된다.

"오래된 것을 모으고 보존해야 할 최고의 시간이 되었다. 그것은 불이 우물 속에서 꺼져버리는 것처럼, 이슬이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우리 시대의 소요 속에서 영원히 침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숨겨진 비밀(?)을 찾아 떠나는 산책

이 책은 그림 동화에 대한 책이라기보다는 슈타인나우-카셀-마르부르쿠-카셀로 옮겨 가며 살았던 그림 형제의 생을 추적하며 그림 동화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에 대해 얘기하는 책에 가깝다. 이 책은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교육을 받았으며,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내용을 채집하여 마침내 오늘날 세계적인 동화를 만들어내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저자는 그림 형제가 옮겨간 마르부르크에 대해 얘기하면서, 마르부르크에 있는 엘리자베트 교회의 기원과 성녀 엘리자베트의 일화를 얘기하고, 개신교와 가톨릭 교회의 역사까지 살짝 내비치는 등 가끔은 그림 형제보다는 실제로 그림 형제가 살았던 도시들과 당시 사회 배경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한다.

저자의 이런 산책은 19세기 독일에서 좋은 여자가 어떤 유형이었는지를 그림 동화 속에 투영된 주인공의 모습에서 찾아내는 데로 이어지거나, 현재의 시각으로 볼 때 그림 동화에서 잔혹하게, 혹은 음란하게 보일 수 있는 내용들의 기원이 당시 민중의 생활상을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을 설명하는데 쓰인다.

또 17세기 프랑스에서, 부모들이 아이들을 빈번히 유기했던 현상이나, 전사한 검투사의 피나 참수당한 범죄자의 피가 병을 치료한다고 믿어, 형리의 하인들이 피를 담은 컵을 판매하기도 했다는 기록 등을 제시하기도 하고, 백설공주나 개구리 왕자 등의 이야기가 시대에 따라 얼마나 순화되고 치장되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는 등, 민중 설화 작품과 시대 상황과의 관련에 대해 예리하게 지적하기도 한다.

이런 내용들이 책장을 펴기 전 ‘숨겨진 진실’이란 제목이 품게 했던 기대와는 사뭇 다르지만 실제로는 저자의 이런 산책들이 그림 동화를 만들어 낸 그림 형제의 삶에 담겨 있는 ‘숨겨진 진실’의 의미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사비니

그림 형제는 사비니 교수를 만나면서 인생의 전환기에 들어섰다. 단순한 독서광에서 조국의 고대 문학과 민담을 보존하고 전하려는 형제로 탈바꿈하게 된 것은 사비니 교수를 만나면서부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비니가 그림 형제에게 이러한 열정을 심어줄 수 있었던 이유는 다음 사비니의 말에서 쉽게 엿볼 수 있다.

"한 민족의 각 시대는 모든 과거의 연장이며 발전의 연속이다. 따라서 역사란 단순히 개별적인 사례의 수집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상태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다."

신화와 유사하게 민중 속에서 구전으로 전해지는 민담과 설화는 당시의 시대상, 문화상 그리고 역사를 반영한다. 사비니 교수에게 영향을 받은 그림 형제에게 있어 민담의 수집과 책의 발간은 단순히 책을 발간하겠다는 개인적인 욕심을 넘어서 민족과 국가를 위해 민중의 입으로 전해지던 역사를 후세에 전하겠다는 대의적인 동기가 더욱 컸음을 이 책을 통해 짐작해보게 된다.

<그림 동화의 숨겨진 진실>이라는 조금은 자극적인 제목이 오히려 내용과 부조화를 이루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는 하지만 그림 동화 자체는 물론 그림 동화에 얽힌 역사와 문화에 대한 예리한 지적을 동시에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이 품은 장점을 무시할 수 없다. 다만 저자의 산책이 좀더 일관적이고 심도 있게 진행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덧붙이는 글 | 제목 : 그림동화의 숨겨진 진실
저자 : 이민수
출판사 : 예담(2005)


그림 동화의 숨겨진 진실

이민수 지음, 예담(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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