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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천에 비친 광명시 주택가의 반영과 노을이 어우러진 풍경
안양천에 비친 광명시 주택가의 반영과 노을이 어우러진 풍경 ⓒ 유영수
한동안 잠잠했던 해오름과 낙조에 대한 내 열망이 요새 다시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늘 가슴 저 깊은 곳에 잠복해 있던 것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으련만 지난 번 '도심 속으로 노을지다' 기사 송고 후 주체할 수 없는 뜨거움을 날마다 다독거리며 지낸 것이다.

바쁜 일상을 뒤로 한 채 휴일 오후 한 나절을 오롯이 노을 지는 풍경을 담는 것에 투자하기로 결심한다. 쉬는 날 오후를 '올인'하다 보니 일요일 오전이 무척이나 부산하다.

이때까지는 옅지만 넓게 드리워진 구름 때문에 노을의 아름다움이 반감되어 보였다.
이때까지는 옅지만 넓게 드리워진 구름 때문에 노을의 아름다움이 반감되어 보였다. ⓒ 유영수
청소와 빨래 등 밀린 집안일을 아내와 함께 후다닥 해치운 뒤 카메라와 삼각대에, 대규모집회 때 운집한 군중들을 찍을 때 유용하게 쓰는 '촬영용 사다리'까지 총집합시켜 차에 태운 후 안양천으로 향한다. 지난 일주일간 외근을 하면서 점찍어 뒀던 촬영포인트로 이동하는 것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목동운동장을 배경으로 노을 지는 풍경을 담아보리라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지난 토요일 구로구에서 광명시로 넘어가는 다리 중 하나인 광명대교를 지나다 생각이 바뀌어 버렸다. 안양천의 도도한 물줄기와 광명시 도심 너머의 도덕산이 한 눈에 들어오는 이곳이 목동운동장보다 훨씬 훌륭한 포토아일랜드가 되리라는 확신이 있었던 게다.

서서히 노을지는 가운데 안양천변에는 추운 날씨 탓인지 운동나온 이들이 간간이 보일 뿐이다.
서서히 노을지는 가운데 안양천변에는 추운 날씨 탓인지 운동나온 이들이 간간이 보일 뿐이다. ⓒ 유영수
집을 나서 광명대교 쪽으로 향하던 중, 구로구청을 지나자 조금씩 불그스레한 기운을 띠기 시작하는 태양이 타워크레인 뒤에서 웃고 있다. 마치 '나 조금만 있으면 붉게 물들 시간이니까 빨리 와서 카메라에 담아가세요'하고 귀엣말을 속삭이는 듯하다.

타워크레인과 그 주변으로 넓게 퍼지는 햇살의 정경이 나 혼자만 보기 아까워, 잠시 차를 갓길에 세우고 몇 번 셔터를 눌러본다. 그렇게 조금 가다 차를 세우고 사진 찍고 하는 작업을 세 번 반복한 후에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역시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광명시 도심과 주택가는 물론 저 멀리 도덕산의 산자락과 굽이쳐 흐르는 안양천 물줄기까지, 멋진 노을 풍경을 연출해 내는 데 산천초목(山川草木)이 모두 가세해 최고의 촬영포인트를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흐뭇함에 취해 있다 흥분된 가슴을 진정시키고 본격적으로 촬영에 임한다. 날씨가 조금 풀렸다고는 하지만 초겨울 기온인데다 강바람이 워낙 매서워 자꾸 외투를 여미게 만든다. 만만치 않은 기온 탓인지 안양천변에는 운동 나온 시민들이 그리 많이 보이지는 않는다.

요즘은 사진운이 좋은 편이다. 이렇게 예쁜 구름은 쉬 보기 힘들지 않은가.
요즘은 사진운이 좋은 편이다. 이렇게 예쁜 구름은 쉬 보기 힘들지 않은가. ⓒ 유영수
촬영장소로는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을 물색한 건 사실이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지난 주 내내 낙조의 순간 태양을 휘감고 있던 멋들어진 구름의 형상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닌가.

안 그래도 집을 나서기 전 베란다에서 하늘을 살펴보며 구름의 동향을 짐작했다. 그 당시는 물론 구로구청 앞 타워크레인 뒤의 구름 모습도 지난 일주일 동안 내 가슴을 설레게 했던 그것이었던지라 마음을 놓았던 것이다.

아아! 노을이 불타오르기 시작하니 카메라를 든 내 마음 또한 타오른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아아! 노을이 불타오르기 시작하니 카메라를 든 내 마음 또한 타오른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 유영수
하지만 정작 광명대교에 다다라 창공을 살펴보니 하늘은 온통 옅으면서도 넓게 퍼져 있는 구름 때문에 태양의 동그란 형체는 전혀 찾아보기 힘들었다. 기대했던 집채만한 뭉게구름 속에서 광채를 발하는 햇살은커녕, 하늘 전체가 짙은 안개 속에 휩싸인 듯한 모습을 나타낼 뿐이었다.

좋은 사진 더 나아가 많은 사람들이 함께 보고 즐거워할 만한 멋진 작품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선, 어떤 덕목을 지녀야 하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바로 길고 긴 '기다림'이다. 요즘 일간지에 나오는 일몰시각은 오후 5시 15분쯤이다.

붉게 물든 하늘 위로 비행기가 지나간 자취가 길고도 선명하게 남겨져 있다.
붉게 물든 하늘 위로 비행기가 지나간 자취가 길고도 선명하게 남겨져 있다. ⓒ 유영수
그렇다면 오후 4시까지는 정한 촬영장소에 도착해야 좋은 사진을 담아갈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있다. 어느 지점 어떤 각도에서 셔터를 누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미지의 사진들을 찍을 수 있으므로 해오름이나 해넘이를 위한 사전준비는 빠를수록 좋다.

마음을 편하게 먹고 안양천변의 다른 풍경들을 조금씩 담아내며 때를 기다린다. 지금 당장 태양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멋진 노을을 볼 수 없다고는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 하늘이기 때문이다.

소행성이 폭발하는 듯한 붉은 노을이 교회의 첨탑 십자가를 먹어 삼킬 것만 같다.
소행성이 폭발하는 듯한 붉은 노을이 교회의 첨탑 십자가를 먹어 삼킬 것만 같다. ⓒ 유영수
길고 길었던 기다림은 마침내 진한 감동을 선사해 준다. 노을이 짙어질수록 왜 생겨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권층운(Cirrostratus, Cs)이 점점 하늘을 뒤덮기 시작한다. 푸른 하늘에 하얀 면사포를 씌워 놓은 것 같은 권층운(卷層雲)은 새털같은 구름이 층을 지어 보인다고 하여 털층구름 혹은 견층운(絹層雲)이라고도 불린다.

새털같은 구름들 사이로 붉은 기운이 넓게 퍼진 가운데 창공을 가로지르는 비행기가 단단히 한 몫 하고 지나간다. 비행기 자국이 하늘 한 가운데 무지개처럼 쭉 뻗어나가는 장면을 보자 울컥하며 감동이 밀려온다.

노을의 아름다운 정경에 가로등과 나무들도 찬조출연을 해주었다.
노을의 아름다운 정경에 가로등과 나무들도 찬조출연을 해주었다. ⓒ 유영수
촬영용 사다리까지 동원해 사진을 찍는 모습에 신호 대기하는 자동차 속의 사람들과 운동을 하며 지나가는 시민들까지 호기심을 보인다. 오지랖 넓으신 어느 아주머니 한 분은 주저없이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뭘 찍는 거에요? 별로 멋있는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노을풍경을 담아내기도 바쁜 터라 잠시 대답을 미루고 있자 또 다시 집요하게 물으신다. '예, 저기 저 아름다운 노을 찍고 있습니다.' '저게 그렇게 대단한 거예요?'하고 돌아오는 아주머니의 말씀에 할 말을 잃는다.

ⓒ 유영수
자신의 관심사가 아니면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게 인지상정이라지만, 이리도 멋스러운 풍경을 하찮게 여기는 걸 보니 조금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냥 먹고살기에도 바쁘다는 핑계로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멋진 에어쇼를 무덤덤하게 지나치며 살아가나 보다. 그래서 1~2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에어쇼에는 그렇게 많은 인파가 다녀가는지도 모른다.

안양천 수면 위로 광명시의 주택가들이 반영(反影)되어 나름의 정취를 자아내고 붉게 물든 노을 바로 밑에는 작은 교회의 첨탑이 덩달아 타오르고 있다. 어느새 하늘은 붉은 기운을 모두 털어내고 회색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안양천 위에서 보낸 1시간가량이 촌각을 다투며 쏜살같이 지나가 버렸다.

세상의 어떤 아름다움도 도시의 하늘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노을의 그것에는 비할 수 없다는 생각에 잠긴다. 내가 그렇게 미치도록 낙조에 열광하는 이유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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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고 대자연을 누리며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서울에서 평생 살다 제주에서 1년 반,포항에서 3년 반 동안 자연과 더불어 지내며 대자연 속에서 깊은 치유의 경험을 했습니다. 인생 후반부에 소명으로 받은 '상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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