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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파 조금 늦겠다고 문자를 보내온 아이가 학교에 왔나 싶어 잠깐 교실에 들른 길이었다. 한 아이가 나를 보자 기다렸다는 듯이 내 소매를 붙들며 다급하게 물었다.

“선생님, 크리스마스실을 꼭 사야 되나요?”
“글쎄. 사면 좋지.”
“강제는 아니죠?”
“당연하지. 그런데 누가….”

누가 크리스마스실을 강제로 사라고 하더냐고 물으려는 참인데 마침 손에 가득 실을 들고 서 있는 부반장 연지와 눈이 딱 마주쳤다. 단짝인 성애의 손에도 한 묶음의 크리스마스실이 들려 있었다.

“너희들 지금 강제로 팔고 있는 거야?”
“선생님이 강제로 팔라고 했어요.”
“말도 안돼. 네가 잘못 들었겠지.”

그때 성애가 나를 툭 치며 조용히 하라는 듯이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쉿! 강제로 안 팔면 이거 다 못 팔아요. 선생님은 가만 계세요.”

그렇게 말을 하고는 다시 실 장사를 시작하는 성애의 뒷모습을 망연히 바라보다가 나는 잠깐 마음이 우울해졌다. 책임 맡은 일을 열심히 하려는 두 아이의 모습이 예뻐 보이기도 했지만, 모든 일을 쉽게만 해결하려는 편의주의가 문제였던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그 모델을 바꾸어줄 필요가 있었다. 나는 연지가 들고 있던 크리스마스실을 두어 장 가져다가 그것을 공중에 높이 치켜올렸다.

“자, 여기 좀 봐요. 며칠 전에 헌혈차가 학교에 왔었지요. 그때 헌혈했던 친구들의 피가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듯이 여기 이 크리스마스실도 마찬가지에요. 여러분의 작은 정성이 모아지면 결핵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도울 수가 있어요. 우리는 평소에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도 막상 그 방법을 몰라서 도와주지 못할 때가 많지요. 오늘 바로 그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세요. 물론 강제는 아니에요. 그래도 친구들과 과자 사먹는 돈을 절약해서 좋은 일 좀 하세요.”

한껏 목청을 높였건만 아이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한 번 더 호소해볼까 하다가 아이들의 무감동한 표정을 보고는 낙담이 되어 그만 두었다. 영혼의 회초리가 있다면 그것으로 그들의 마음 어딘가를 따끔하게 몇 대 때려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결국은 크리스마스실을 강제로 팔고 있던 두 아이만 난처한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 원망에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볼 법도 한 일이었다.

점심시간에 두 아이가 다른 일로 나를 찾아왔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두 아이를 잠깐 불러 세웠다.

“아깐 미안했다. 너희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하려고 한 건데 선생님이 방해만 한 것 같아서. 하지만 선생님도 어쩔 수 없었어. 학교에서 크리스마스실을 파는 것은 결핵환자들을 돕기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이런 기회를 통해서 이웃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갖게 하는 것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거든. 그런데 그것을 강제로 할 수는 없잖아?”

내 간절한 눈빛 탓이었을까? 두 아이의 표정이 사뭇 긍정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연지가 한 말이 나를 아프게 했다.

“저희들도 알아요. 선생님이 옳으신 거요.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잖아요.”
“세상이 그렇지 않다니? 그런 말 쉽게 하는 거 아니야. 너희들 선생님 좋아하지? 그렇지 않니?”
“좋아해요.”
“왜 좋아하는데? 왜 선생님을 좋아하는데?”

“선생님은 저희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주시니까요.”
“봐. 맞잖아. 내가 너희들을 인격적으로 대하니까 너희들이 날 좋아하잖아. 너희들은 세상사람 아니니? 너희들이 그렇게 생각하면 다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그러면 아까 선생님이 말씀하셨을 때 애들이 크리스마스실을 더 많이 사야 하잖아요.”
“그건 좀 달라. 사고 안 사고는 자유니까. 그리고 남을 돕고 싶은 마음이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은 아니야. 좋은 것일수록 시간이 오래 걸리는 법이거든.”
“알겠어요, 선생님. 저희들 그만 가볼게요.”

이런 대화가 오고 간지 닷새쯤 지났을까? 두 아이가 교무실로 다시 나를 찾아왔다. 무슨 좋은 소식이라도 전하는 양 연지의 목소리가 자못 들떠 있었다.

“선생님, 선생님. 이거 강제로 팔아도 된다고 했어요.”
“무슨 소리야?”
“딱 4장 팔았거든요. 나머지는 반품하러 갔더니 반품 안 된데요. 애들한테 강제로라도 팔라고 하셨어요.”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단 말이야?”
“그렇다니까요. 그러니까 이번에는 선생님 아무 말씀 마세요!”

학교에서는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교사나 학생이나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가장 편한 방법을 선호한다. 교육이 일상의 작은 과정들로부터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순간 누구라도 이런 편의주의의 함정에 쉽게 빠지고 마는 것이다. 매일 같이 익숙한 것들로부터의 결별을 꿈꾸지 않는다면.

그날 오후, 나는 두 차례나 교실을 들락거렸다. 한 번은 반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실을 사달라고 호소하기 위하여. 또 한 번은 토라진 두 아이를 달래주기 위하여. 두 아이가 토라진 이유는 물론 크리스마스실을 강제로 파는 것을 끝내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나는 불편하고 힘든 일을 자청하고 있는 셈이다.

다행히도 두 아이는 두 차례의 대화 끝에 제 담임의 진심을 알아차렸다. 나를 바라보는 한껏 부드럽고 성숙해진 눈빛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 작은 변화가 나로 하여금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익숙한 것들로부터 결별하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월간지 <사과나무>에도 기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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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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