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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산 등산로 입구
고래산 등산로 입구 ⓒ 김선호
아직도 오일장이 열리는 소읍을 중심으로 작은 마을들이 실핏줄처럼 엉겨 있는 곳,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경춘선이 지나는 곳에 위치한 까닭에 차량 통행량은 해마다 증가하지만 마석 오일장이 여전히 성행인 이곳은 산들이 병풍처럼 감싸안고 있다. 이름 있는 산들도 있지만 이름이 없어 그저 동네 산으로 불리는 산들로 둘러싸인 이곳은 산이 많은 까닭에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물난리 한 번 겪은 적 없다는 천혜의 고장이다.

아이들과 더불어 우리 마을 돌아보기 두 번째 발걸음은 고래산에서 시작했다. 화도읍에서 차로 십여 분 떨어진 고래산은 백봉산 능선과 이어져 있으며 화도읍과 덕소의 경계 지점에 있는 와부읍을 내려다보는 곳에 위치해 있는 마을산이다.

고래산에서 만난 초막
고래산에서 만난 초막 ⓒ 김선호
아침을 먹고 간단한 여장을 챙겨 집을 나섰다. 집에서 출발해 차산리 쪽으로 십여 분 가다 보면 옛날에 노루가 많이 살아 '노루너머'로 불리웠다는 장현마을에 닿는다. 고래산은 장현마을 뒷산이다. 삼백여m의 낮은 산이지만 백봉으로 연결된 능선이 매우 길게 이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봄이면 갖가지 야생화가 피어나고 숲도 제법 울창한 탓에 등산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고래산 등산로 초입의 잣나무숲
고래산 등산로 초입의 잣나무숲 ⓒ 김선호
특히, 산길 초입에 조성된 잣나무숲은 매우 아름답다. 소나무가 어쩌다 한두 그루 보일 뿐인 등산로 초입의 잣나무숲에 들어서면 숲의 신선한 기운이 강하게 끼쳐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고래산은 지난 봄에 와 보고 처음이었다. 불과 반 년 정도 사이에 산자락 한곳이 뭉텅 잘려나간 흔적이 눈에 띈다. 산자락 바로 아래에서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산길바로 앞에까지 시멘트 포장된 길 한가운데 포클레인이 턱하니 버티고 서 있는 모습에 눈살이 찌뿌려진다. 길을 막고 서 있는 포클레인을 돌아 산으로 향한다.

아파트 공사 현장 뒤로 몇 걸음 차이로 가지런히 서있는 잣나무숲과 마주한다. 산새들도 모처럼 공사가 쉬는 일요일이라 즐겁게 지저귀고, 겨울 아침 햇살이 잣나무 가지 사이로 따스하게 비춰드는 모습이 마냥 평화롭다.

잣나무도 지난 가을, 우리가 모르는 새 단풍이 들었던 모양인지 숲에 마른 잎을 떨구어 놓았다. 잣나무 마른 잎새가 떨어진 숲길이 가지런하게 뻗어 능선으로 이끈다. 머잖아 숲의 모습은 참나무와 낙엽활엽수로 바뀌었지만 산길 초입부터 줄곧 이어진 부드러운 흙길로 이어진다.

산길은 어디 한군데 모난 곳 없이 평평한 흙길이고 그 길 위에 잘 마른 낙엽들이 쌓여 있어 사각사각 낙엽 밟는 느낌이 좋다. 산능선 아래 양쪽으로 마을들이 따라온다. 산능선이 이어지듯 마을과 마을이 이어져 있는 모습이 정겹다. 이름을 알면 불러보고 싶은 마을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을 발아래에 두고 능선을 오른다. 가끔씩 아랫마을에서 개짖는 소리도 들리고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도 들려온다. 어쩌다 마주치는 하산하는 등산객들과 나누는 인사도 마을산이라 더욱 정겹다.

산은 그리 크지 않은데 마을 이편과 저편에서 올라온 흔적들이 길이 되어 등산로가 여러 곳이다. 이정표가 굳이 필요없겠지만 생각보다 고래산 능선은 길어서 지나가는 등산객에게 길을 물어야 했다.

가르쳐 준 대로 약수터를 기점으로 위로 돌아 백봉으로 향한 능선에 접어든다. 간밤에 떨어진 기온으로 산이 얼었나 보다. 낙엽 사이로 서릿발이 햇살을 받아 투명하게 반짝인다. 마침 뭔가 재밌는 것을 찾던 아이들 눈에 띈 서릿발은 훌륭한 자연 관찰도구가 되어 준다.

산길에서 만난 때 이른 진달래꽃 한송이
산길에서 만난 때 이른 진달래꽃 한송이 ⓒ 김선호
아이들 흉내를 내서 서릿발을 햇살에 비춰본다. '보석 같다'는 아이들 표현에 고개를 끄덕이며. 해찰을 부리느라 뒤에 처진 아이들과 나를 두고 저만큼 앞서가던 남편이 우리를 부른다. "진달래꽃이 피었다"고. 아니, 겨울로 접어드는 엄동설한에 진달래꽃이라니.

딱 한 송이였다.간밤에 내린 서리에 연한 꽃잎이 반쯤은 퇴색한 진달래꽃 한 송이가 반갑고도 안쓰러웠다. 주변에는 소나무가 듬성듬성 서있는 숲길 양쪽에 진달래나무가 눈에 띄었고 그중 한송이가 때를 잊은 듯 꽃을 피웠던 것이다.

우연히 만난 진달래꽃을 들여다 보느라 뒤처진 걸음을 다시 재촉한다. 산을 오르고 처음으로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놓여 있다. 줄곧 완만한 산길을 걸어온 탓인지 그리 험하지 않은 가파름에도 숨이 가피오지만 이런 길도 없다면 산에 오르는 맛 또한 없을 것임을 알기에 기꺼이 오르막을 향해 산길을 걷는다.

힘겹게 봉우리 하나를 넘으니 눈앞이 시원하게 트였다. 아마도 고래산과 백봉산의 경계가 아닌가 싶은 곳이었는데 바로 앞에 송전탑이 몇 미터 간격으로 서있는 모습이 보인다. 송전탑을 설치할 요량으로 베어낸 숲 언저리 때문에 산능선은 마치 너른 들판 같아 보인다.

오른쪽 아래 산자락에 지난번에 보았던 골프장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 사이로 노랗게 물들어 있는 낙엽송 군락이 산자락을 에워싸고 있다. 가끔 바람이 불면 노란 낙엽비를 날리던 낙엽송들이 골프장과 산능선에 제법 넓은 군락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송전탑 주변에는 바람을 타고 날아온 씨앗에서 발아한 어린 잣나무 들이 듬성듬성 자라있다. 누렇게 마른 풀들이 능선을 가득 메운 가운데 자라는 잣나무 어린싹들이 이쁘다.

백봉산 정상부근 억새밭에서 점심을 먹는 등산객들
백봉산 정상부근 억새밭에서 점심을 먹는 등산객들 ⓒ 김선호
고래산에서 출발한 지 두 시간 삼십여 분 남짓, 멀리 백봉산 정상이 눈에 들어온다. 백봉산 정상의 작은 봉우리를 감싸안을 듯 억새꽃이 하얗게 피어 있다. 억새꽃밭 속에 삼삼오오 모여 점심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백봉산 정상 590미터' 표지석을 확인하고 우리 가족도 억새꽃밭 속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이번에는 지난번 천마산 능선을 따라 마치고개로 올랐던 반대쪽으로 하산길을 잡는다. 진곡사 방향으로 백봉산 능선을 따라 내려가 홍유릉까지가 오늘 목표다. 이젠 내려가는 일만 남았으니 발걸음은 가볍고 마음도 한없이 느긋하다. 그런데 길이 의외로 가파르고 험하다.

백봉산의 암벽과 어울린 노송들
백봉산의 암벽과 어울린 노송들 ⓒ 김선호
이 길이 백봉산 등줄기가 아닌가 싶은 게 제법 커다란 암벽들이 웅장하고 암벽들 사이로 노송들이 우람하게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용의 비늘같은 수피를 가진 노송들은 언제 봐도 늠름하다.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가다 산악자전거팀과 마주쳤다. 그냥 맨 몸으로 산을 오르는 일도 쉽지 않은데 자전거를 끌고 산을 오르는 이는 얼마나 건장한 젊은이들인가 싶어 새삼 존경의 눈으로 쳐다 보는데 웬걸, 어린아이가 낑낑대며 자전거를 몰고 가는 것이 아닌가.

몇 살이냐고 물으니 "열두살요"하고 씩씩하게 대답하는 아이를 나보다도 동갑인 딸아이가 놀란 듯 바라본다. 뒤에 쳐져서 가는 분은 또 나이가 너무 많아 보여 연세를 물으니 나이 대신에 "저 앞에 노란옷 입은 사람이 김세환씨예요"라는 엉뚱한 대답을 해준다.

김세환씨가 누구인지 궁금해 하는 아이들에게 예전 노래들을 불러주며 내려오는 길. 이젠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지막 삼거리에서 남양주시청이나 진곡사 방향으로 하산을 한 모양인지 산길에 우리 가족 말고 아무도 없다. 오후해는 백봉산 끝자락을 적실 듯 넘실거리는 새말호수를 반짝이게 하고 더 멀리 아스라이 펼쳐진 한강을 금빛으로 물들여 놓았다. 끝날 줄 알았던 백봉산 자락은 쉽게 끝을 보여주지 않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산 아랫자락 능선길이 길었던 탓이다.

고래산에서 백봉으로 가는 능선은 부드러운 흙길로 이어진다
고래산에서 백봉으로 가는 능선은 부드러운 흙길로 이어진다 ⓒ 김선호
새말저수지를 기점으로 잡고 드디어 산을 다 내려와 홍유릉으로 가는 작은 소롯길에 접어들었다. 이로써 천마산 능선의 끝자락까지 걸어서 와 보았다. 잘 가꿔진 홍유릉의 토종 소나무들을 감상하며 금곡시내를 들어와 집에가는 버스를 탄다. 우리 가족이 탄 버스 위쪽으로 한발 한발 걸어서 올랐던 백봉의 능선들이 뒷걸음질 치며 멀어져 간다.

홍유릉 산책로를 따라가는 마지막 코스
홍유릉 산책로를 따라가는 마지막 코스 ⓒ 김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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