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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봉투에 써 있는 편지를 보니, 눈이 휘둥그레해집니다.
"아니, 이걸 세린이 친구가 썼단 말이야?"
"나도 모르지. 친구가 줬다니까, 친구가 썼겠지."
"글씨 잘 쓴다. 어휴, 진짜 잘 쓰네. 승희라는 친구는 벌써 글씨 쓸 줄 아나보지?"
"요즘 유치원 다닐 정도면 읽고 쓸 줄 아는 애 많아. 한글 다 떼고 영어 하는 애도 많을 걸?"
친구한테 편지를 받았다는 말을 듣고는 괜한 걱정을 합니다. 세린이가 편지를 받은 것은 이번이 네 번째인데, 삐뚤삐뚤한 글씨지만 아이들이 직접 쓴 편지를 볼 때마다 아직 읽거나 쓸 줄을 모르는 세린이를 보면서 한글을 가르쳐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더구나 오늘(22일) 승희라는 친구한테 받은 편지를 보니, 또박 또박 써 내려 간 글씨가 여간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인지 더 조바심 같은 것이 생깁니다.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아이처럼 마냥 웃고 떠드는 세린이를 보면서 이제부터라도 한글을 가르쳐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세린이도 글씨 가르쳐야 되지 않을까?"
"뭐 벌써? 아직 어린데 뭐. 그래도 쓸 줄은 몰라도 아는 글씨는 많아. 그림책 봐서 많이 보여줘서 그런가 안 가르쳐도 아는 것 같아."
"그래도, 다른 친구들은 편지도 쓰고 그러잖아."
"에이, 그 애들은 그 애들이고, 다 때가 있는 거지."
"때가 뭐 따로 정해져 있나? 다른 애들 배우면 그 때가 배울 때지 뭐."
"아니야. 그래도 아직 너무 어려. 지금 공부시키면 오히려 글씨 배우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보일 수도 있어. 6살 되면 그 때 시작하지 뭐."
벌써부터 공부는 무슨 공부? 신나게 노는 것이 진짜 공부지!
듣고 보니 아내의 말이 일리가 있습니다. 5살이면 아직 어린 나이입니다. 한창 놀기에 바쁜 나이이고, 또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도 '실컷 놀아라. 그게 제일 좋은 거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금세 조급한 마음을 떨쳐 봅니다.
하지만 막상 다른 친구들이 직접 쓴 편지를 받다보니 부모인 저로서는 저도 모르게 마음이 흔들린 것은 사실입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겉으로는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속마음은 자꾸만 공부시키는 것에 대한 미련의 끈이 놓아지질 않았습니다.
한참을 고민 아닌 고민하다, '에이~ 놀기나 하자. 애들한테는 노는 게 최고의 교육이야'하면서 글씨에 대한 미련을 단숨에 집어 던집니다. 세린이하고 태민이하고 신나게 놉니다. 하하하, 호호호,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습니다.
2시간 정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아이들과 함께 놀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아빠하고 노는 것을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합니다. 물론 저도 아이들하고 노는 것이 무척이나 즐겁습니다. 비록 글씨는 아직 쓸 줄 모르지만 저는 아빠하고의 신나는 놀이를 통해 맑고 건강한 정신을 키우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또 어느 날인가, 세린이가 친구의 편지를 받아 온다 해도 오늘 이 마음 흔들리지 말자고 결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경쟁 사회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세린이와 태민이입니다. 부모의 욕심 아닌 욕심의 굴레에 아이들을 밀어 넣고 싶지 않습니다.
세린아, 마음껏 놀아라. 신나게 놀고 웃고 떠들면서 네가 행복함은 느낀다면 아빠는 다른 친구들이 다 쓰는 글씨 못 써도 괜찮단다. 까짓 거 아직 글씨 좀 못 쓰면 어때! 그치 세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