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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꿉놀이를 하면서 나는 세린이가 싫어하는 음식에 대한 거부감을 자연스럽게 없앤다. 소꿉놀이라 하더라도 처음에는 안 먹겠다고 했지만 계속 재미를 느끼게 하면 실제로 어느 순간에는 음식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지면서 많이는 아니더라도 아예 음식을 거부하는 일은 없다.
소꿉놀이를 하면서 나는 세린이가 싫어하는 음식에 대한 거부감을 자연스럽게 없앤다. 소꿉놀이라 하더라도 처음에는 안 먹겠다고 했지만 계속 재미를 느끼게 하면 실제로 어느 순간에는 음식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지면서 많이는 아니더라도 아예 음식을 거부하는 일은 없다. ⓒ 장희용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난 아이들과 거의 매일 신경전을 벌였다. 이 닦기나 목욕, 머리 감기, 편식 등 우리의 전쟁을 부추기는 소재들은 무궁무진했다. 그렇게 한바탕 폭풍이 지나가면 아이들은 주눅이 들었고, 아내와 난 끓어오르는 분을 삭이느라 한숨만 푹푹 쉬었다. '아!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자식이라더니….'

그러던 지난 6월 24일, 그날도 세린이는 이 닦기와 목욕을 거부했고 그로 인해 아내와 나는 짜증이 머리끝까지 났다. 울고 떼쓰는 아이를 보며 금방이라도 엉덩이를 때려주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어서 식탁의자에 앉아 내 마음을 달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문득 내 입에서 "세린아 우리 물놀이 할까?"란 말이 튀어 나왔다.

그런데 그 말 한마디로 상황은 반전됐다. 세린이와 태민이는 욕조 안에서 수영하는 흉내도 내고 거품장난을 하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렇게 얼마를 놀았을까. 세린이에게 머리 감고 이도 닦자고 했더니 이게 웬일인가. 흔쾌히 응하는 게 아닌가.

순간 '이거다!'란 생각이 스쳤다. 그 후 나는 모든 것을 놀이에 대입했다. 이를 닦는 것은 '세균맨 잡기 놀이'로, 우유 먹기는 '우유를 먹고 나서 키를 재거나 팔씨름을 하는 놀이'로 해결했다. 또 정리정돈을 위해 '정리 정돈 놀이'를, 반찬을 골고루 잘 먹게 하기 위해 '젓가락 놀이'를 고안해냈다.

우연한 '물놀이'로 '전쟁'에 종지부를 찍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치카치카 하고 머리 감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보시다시피 장난치느라 제대로 씻지는 않지만 세린이는 즐거운 마음으로 치카치카를 한다. 이 모두가 역시 놀이의 효과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치카치카 하고 머리 감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보시다시피 장난치느라 제대로 씻지는 않지만 세린이는 즐거운 마음으로 치카치카를 한다. 이 모두가 역시 놀이의 효과다. ⓒ 장희용
그렇게 시작된 놀이는 쭉~ 계속됐고 난 그날 이후부터 '놀아줘'로 무장한 녀석들과의 한바탕 전쟁(?)을 즐기기 위해 칼 퇴근을 하고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칼 퇴근 하면서 직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냐고? 물론 처음엔 많이 힘들었다. 술 먹자는 회사사람들이나 친구들의 유혹을 모두 뿌리치니 어울리기 싫어서 그러는 거냐는 오해도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한 명 두 명씩 나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어떻게 아이들과 그렇게 매일 놀아주느냐" "진짜로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 맞냐" "나도 그렇게 해 봐야겠다" 등의 긍정적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물며 직장상사는 나의 '이런 생활'을 알고는 다른 직원들에게 "술 먹지 말고 장희용씨처럼 아이들과 놀아주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단하지 않은가? 역시! 아빠는 아이들과 놀아줘야 한다.

어라? 놀아주니 나쁜 습관도 바뀌네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까꿍 놀이’와 ‘숨바꼭질’ 놀이다.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까꿍 놀이’와 ‘숨바꼭질’ 놀이다. ⓒ 장희용
요즘엔 퇴근과 동시에 아이들과 함께 기차놀이와 막춤을 즐긴다. 나는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옷을 방바닥에 그냥 놓은 채로 아이들 손에 이끌려 거실로 나온다. 저녁을 먹어야 하지만 일단 아이들의 소원부터 들어주기로 하고, 신나는 음악을 튼다. '그래!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망가져도 좋다!'

아이들은 내가 흐느적거리며 추는 막춤을 보고 끊임없이 웃는다. 이렇게 20여 분 가량 춤을 추고 나면 이마에 땀이 흐른다. 그런데 이 춤을 추기 시작한 뒤로 우리 아이들의 가장 큰 문제였던 밥투정을 해결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세린이는 어려서부터 콩을 싫어했다. 한번은 아이가 면역력이 약해져 병원신세를 진 일이 있는데, 아내와 난 면역력 강화에 콩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세린이에게 콩을 먹이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결국 세린이는 먹지 않겠다며 울고불고 난리를 쳤고 아내와 나는 짜증으로 맞섰다.

하지만 춤을 추기 시작한 뒤부터 아이가 달라졌다. 하루 세 끼는 아니어도 춤을 추고 난 이후에는 콩을 잘 먹는다. 오히려 "아빠, 나 콩 잘 먹지?"라며 콩이 가득한 수저를 입 속으로 밀어 넣곤 한다.

그러나 이런 놀이로 얻게 된 가장 큰 수확은 따로 있다. 태민이에게는 '까꿍놀이'이자 세린이에게는 '숨바꼭질', 그리고 나에겐 '이불속에서 땀 빼기'로 통하는 놀이가 그것이다.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세린이는 이불 속에서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죄다 말한다. 처음 유치원에 갔을 때는 유치원 생활이 궁금해 이것저것 물어봐도 잘 대답을 안 하던 세린이다. 예전엔 자꾸 물으면서 대답을 강요하면 좋지 않다고 해서 묻지 않았는데, 이제는 굳이 묻지 않아도 조잘조잘 끊임없이 쏟아내곤 한다. 세린이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아이의 솔직한 내면까지 알 수 있게 됐다. 아이의 심리를 알게 되니 내가 아이의 기분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강요를 하는 일도 줄어들게 됐다.

언제까지 아이들과 놀아줄 거냐고?

이렇게 놀다 보면 1시간이 훌쩍 지나간다.좀 쉬었다 놀아야 한다. 아니면 나도 짜증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하고만 놀면 아내가 삐진다.  그리고 예전에는 책을 애들이 어지럽힌다고 계속 정돈하고, 방안에 놓았는데 거실에 놓고 아이들이 마음껏 꺼내 보도록 하고 있다. 책하고 친하게 지내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놀다 보면 1시간이 훌쩍 지나간다.좀 쉬었다 놀아야 한다. 아니면 나도 짜증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하고만 놀면 아내가 삐진다. 그리고 예전에는 책을 애들이 어지럽힌다고 계속 정돈하고, 방안에 놓았는데 거실에 놓고 아이들이 마음껏 꺼내 보도록 하고 있다. 책하고 친하게 지내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 장희용
처음에 나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것들에서 아이들과 부딪혔다. 솔직히 나 보다는 아내의 스트레스가 더 심했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씨름하며 보내는 아내의 스트레스 중 70%이상은 아이들의 이런 버릇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내가 늘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 "엄마 말 좀 들어!"였고 체벌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순간의 감정에 앞서 벌을 주거나 엉덩이를 때린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 나와 아내의 강제적 행위는 아이에게서 바람직한 행위를 이끌어내긴 했지만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고 옳지 않다고도 느껴졌다. 야단맞은 뒤의 세린이의 행동은 단지 엄마나 아빠에게 혼나기 싫어서 나온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세린이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고 우연히 시작하게 된 '놀이'로 실타래처럼 얽혀 있던 문제를 풀게 된 것이다.

퇴근해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어떻게 몇 시간씩 아이들과 놀아주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과의 놀이에선 시간보다 사랑이 더 중요하다. 단 30분을 놀아도 사랑으로 똘똘 뭉친 놀이로 함께한다면 아이들은 더 즐거워 할 것이다. 2~3시간 동안 놀아주지만 얼굴에 '귀찮음'이라고 써 놓고 상대하려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그러나 처음부터 아이의 버릇을 고치려는 목적을 가지고 노는 것 보단 그냥 놀아주는 것이 좋다. 그리고 자신도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를 선택하라. 아빠도 재밌어야 할 권리가 있으니까!

내가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 '놀이'를 즐기는 것을 보고 누군가는 묻는다. "도대체, 아이들과 언제까지 놀아줄 것인가"라고. 나는 이번 경험을 통해 아이들의 '인성'을 길러주는 데는 부모와의 놀이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난 세린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도 계속 놀아줄 것이다. 물론 지금처럼 이불 속에 들어가 '까꿍놀이'를 하진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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