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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장희용
태어난 지 20개월 된 둘째 태민이. 할 줄 아는 말이라고는 '엄마, 아빠'밖에 없다. 요즘은 무슨 말인가를 따라 하려고 제 딴에는 애를 쓰는 것 같기는 한데, '꺄뷰디꺕갸' '어뷰디딥댜' 등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한다.

때가 되면 다 말을 하련만 나는 둘째가 빨리 말을 해서 대화라는 것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요즘 몇 가지 말을 반복해서 가르친다. 예를 들면 아침에 출근할 때 "안녕히 다녀오세요"라는 말이 너무 듣고 싶어서 그 말을 가르치는데, 고작 한다는 말이 "아녀히..."까지만 하고 고개만 까딱 숙인다.

어떤 날은 유치원 다니는 누나의 인사법, 배꼽에 손 올려놓고 90도 인사하는 것을 따라하다가 중심을 잃고 앞으로 넘어져서 운 적이 있다. 아내는 급하기도 하다면서 나를 나무랐지만 나는 이에 굴하지 않고 오늘 아침에도 또 다시 말을 가르쳤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호전되지 않고 있다. "안녕히 다녀오세요"라고 몇 번이나 말해주지만 그저 녀석은 예나 지금이나 "아녀히..."밖에 할 줄 모른다. 사실 이 '아녀히...'도 그 말을 듣고 싶어 하는 내 귀에만 들리는 말일 뿐 다른 사람들은 해석조차 불가능한 말이다.

아직 '엄마, 아빠'라는 말 밖에 못하는 동생 보고 세린이는 자꾸만 '누나'하고 불러보라고 재촉합니다. 자기 딴에는 누나라는 소리가 듣고 싶나 봅니다.
아직 '엄마, 아빠'라는 말 밖에 못하는 동생 보고 세린이는 자꾸만 '누나'하고 불러보라고 재촉합니다. 자기 딴에는 누나라는 소리가 듣고 싶나 봅니다. ⓒ 장희용
"태민아, 누나라고 한 번만 불러 줘!"

그런데 이런 나보다 더 조급한 분(?) 있다. 누나 세린이다. 요즘은 포기했는지 동생을 붙잡고 잘 하지 않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생을 붙잡고 "태민아, 누나 해봐 누나!"라는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했던 세린이었다.

어떤 날은 사탕 하나 손에 쥐고 "누나 해봐 누나. 그러면 이 사탕 주께"하면서 제 나름대로 두뇌회전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디 그게 사탕 준다고 되는 일인가? 염불보다는 잿밥이라고, 누나의 간절한 소망에는 아랑곳없이 사탕에만 관심이 쏠려 사탕 달라고 울어대니, 누나라는 소리를 못 들어서 그런지 아니면 사탕을 뺏긴 게 억울해서 그런지 세린이는 막 울어 버렸다.

아직 세린이의 소원인 누나라는 말을 못하고, '아녀히...'라고 말해 내 소원 또한 들어주지 못하는 둘째지만 처음 보는 것이면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생각은 다 있는지라 배고프면 밥 달라고 전기밥솥을 가리키고, 밥 먹을 때는 엄마가 주는 것을 고개 흔들며 거부하고는 자기 입맛에 맞는 반찬을 가리키는 고집도 생겼다.

아직 말도 못하지만 존중해 줘야 할 나이

어제는 이발하러 갔다가 슈퍼에 들렀는데, 내가 야채 과자를 주니 '으응~'하면서 곧 죽어도 싫다고 한다. 그냥 내버려 두었더니, 웃기는 것이 과자 코너를 한 바퀴 혼자서 돌더니 사탕 한 봉지를 들고 왔다.

아내가 집에 있다며 손에서 뺏으니 최대의 저항 수단인 울음을 터뜨린다. 나도 집에 있는 것이니 다른 것으로 고르라고 했지만 태민이는 결코 그런 의사가 없다는 것을 강력히 보여주었다. 그래서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냥 사탕을 사 주었다.

사실 사 주었다기보다는, 좀 거창한 말을 쓰면 아들의 의사를 존중해주기로 했다. 아직은 20개월, 조금만 빨리 뛰어도 다리가 꼬여 넘어지는 어린 나이지만, 그리고 '엄마, 아빠'라는 말밖에 못하는 나이지만 나는 태민이가 분명히 자신의 의사를 표시할 정도의 인격체로 충분히 성장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세상과의 소통을 위한 방법이 아직도 '이잉~' '아앙~' '우우!' 하는 의성어를 동원한 손가락 가리키기와 눈빛이 유일하지만, 그래도 세상을 하나씩 알아가는 둘째다. 첫째인 세린이를 키우면서도 분명 겪었을 일인데도 둘째의 커가는 이런 모습들을 보면, 새삼 아기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말도 못하는 것이 자기 생각을 표시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 태민이는 무엇을 하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요즘 태민이는 처음 보는 것이면 무조건 가던 발걸음도 멈추고 신기한 듯 바라봅니다. 지금 무엇을 보고 저리도 궁금한 표정을 지을까요?
요즘 태민이는 처음 보는 것이면 무조건 가던 발걸음도 멈추고 신기한 듯 바라봅니다. 지금 무엇을 보고 저리도 궁금한 표정을 지을까요? ⓒ 장희용
어, 이건 뭐지? 먹어도 되나?
어, 이건 뭐지? 먹어도 되나? ⓒ 장희용
일단 한 번 먹고 보자!
일단 한 번 먹고 보자! ⓒ 장희용
으, 좀 딱딱한데!
으, 좀 딱딱한데! ⓒ 장희용
뭘까? 처음 보는 것이니 도대체 알 수가 없네.
뭘까? 처음 보는 것이니 도대체 알 수가 없네. ⓒ 장희용
아휴 모르겠다. 딱딱하기는 해도 맛은 있는 것 같으니 먹기나 하자!
아휴 모르겠다. 딱딱하기는 해도 맛은 있는 것 같으니 먹기나 하자! ⓒ 장희용
"태민아 콩 맛있어?" 콩을 싫어하는 세린이. 동생이 계속해서 먹자 자기도 먹고 싶었던지.
"태민아 콩 맛있어?" 콩을 싫어하는 세린이. 동생이 계속해서 먹자 자기도 먹고 싶었던지. ⓒ 장희용
아! 배부르다. 가을 햇볕도 따사롭고, 잠 한 번 청해볼까?
아! 배부르다. 가을 햇볕도 따사롭고, 잠 한 번 청해볼까? ⓒ 장희용

덧붙이는 글 | 제 아이 뿐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아이들, 그 아이들만큼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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