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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복원된 청계천엔 한 남자의 흉상이 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면서 한창 피어올라도 모자랄 22살이란 나이에 서울 평화시장에서 분신한 전태일이다. 2005년 11월 13일. 이날은 그가 죽은 지 35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 돌베개
<전태일 평전>(돌베개). 이 책은 고 조영래 변호사가 수배생활 중 집필한 것으로 고통에 가슴 아파하며 시들어가던 평화시장의 어린 영혼들을 위해 자신을 불길 속에 내 던졌던 전태일의 삶과 죽음을 담았다.

1948년 대구에서 태어난 전태일은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초등학교 4학년 때 중퇴하고 밑바닥 인생을 경험한다.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이 다시 모이자 부양의 책임을 느낀 전태일은 평화시장의 노동자가 된다.

그가 그곳에서 경험한 실상은 너무 열악했다. 자신보다 어린 노동자들이 저임금과 중노동에 시달리며 잠 안 오는 주사까지 맞아가며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숨쉬기조차 힘든 평화시장의 다락방에서 쓰러져가는 어린 아이들을 보며 열악한 작업환경 개선을 위해 백방으로 뛴다.

전태일은 혼자의 힘으로 조직과 법을 공부한다. 근로기준법이 있음에도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지 못하는 평화시장의 모든 노동자들이 바보로 생각되어 그는 '바보회'를 조직하게 된다. 그러나 생계를 걱정한 다른 노동자들의 미온적인 태도와 기업주와 경찰들의 공작으로 바보회는 와해되고 전태일은 쫓겨난다.

다시 '삼동친목회'를 설립한 전태일은 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언론과 연대하여 그들의 희망을 실현시키려 하지만 역시 물거품으로 끝난다. 절망한 그는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근로기준법 책과 함께 분신을 택한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 전태일의 일기 중에서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부자였던 22살 청년 전태일. 그는 자신을 버림으로서 사회를 썩지 않게 하는 소금이 되었다.

청계피복노동조합을 시작으로 1970년대에만 2500여 개에 달하는 노동조합이 전태일의 죽음으로 인해 결성되었다고 한다. 그의 희생으로 촉발된 수많은 사람의 문제의식과 개혁의 의지로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지키기 위한 많은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요즘 비정규직 문제가 도마위로 올랐다. 더구나 귀족노조니 뭐니 하는 서글픈 뉴스도 들린다. 텔레비전에서 딸을 데리고 전태일 동상 앞에 선 한 남자의 말이 귓가에 남아있다.

"나도 그 책을 읽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듯 내 아이도 꼭 그 책을 읽고 살아가는데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지은이 조영래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1971년 사법연수원에서 연수 중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되어 1년 반 동안 투옥되었고, 19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6년 동안 수배생활을 겪었다. 복권 후 1983년 변호사 사무실을 열고 사회개혁가이자 인권변호사로서 헌신적으로 활동하다가 1990년 12월 폐암으로 타계했다.


전태일 평전 - 신판

조영래 지음, 아름다운전태일(전태일기념사업회)(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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