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시골 집 텃밭. 모종했을 때만 해도 비가 많이 와서 걱정했는데 엉덩이를 깔고 앉아도 될 만큼 튼튼하게 잘 자랐습니다.
시골 집 텃밭. 모종했을 때만 해도 비가 많이 와서 걱정했는데 엉덩이를 깔고 앉아도 될 만큼 튼튼하게 잘 자랐습니다. ⓒ 장희용
텃밭의 배추와 무가 잘 자랐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햇살이 참 좋습니다. 비가 오거나 추웠던 여느 주말과 달리 날도 푸근합니다. 아이들에게 시골의 밝은 햇살과 맑은 공기를 보여 주고 싶어 옷을 입히고는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텃밭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아침 이슬 머금은 배추와 무, 파가 싱싱합니다. 막 모종했을 때만 해도 비가 많이 와 걱정했던 배추는 속이 꽉 차 튼튼하게 자랐습니다.

"어머니, 걱정하시더니 속도 꽉 차고 잘 컸네요."
"응. 다행히 잘 컸다. 얼마나 튼실한지 깔고 앉아도 암시렁 안헌다."
"무슨? 다 부서지지 그게 그대로 있나?"
"앉아 봐라! 그게 부서지나?"

반신반의 하면서 배추에 살짝 앉아 봅니다. 어라~ 진짜 암시렁 않네요. 다리에 힘을 빼고는 무게를 실어 앉아 보았습니다. 그래도 끄떡없습니다. 일어서서는 양 손으로 배추를 꾹 눌러보니 거짓말 좀 보태 돌처럼 단단합니다.

갑작스런 주문 "어머니 김치 담가 주세요"

무가 심어져 있는 고랑으로 가 봅니다. 잎을 제치고 보니 무도 어른 팔뚝만큼이나 컸습니다. 욕심이 생깁니다. '이 놈들로 김치 담가 먹으면 정말 맛있겠다.' 허리를 펴고 어머니를 향해 소리칩니다.

"지금 이걸로 김치 담가도 맛있어요?"
"그럼! 지금 깍두기 담그면 맛있지."
"그러면 저 쪼금만 담가 주세요."
"그려, 담가 줄게. 그리고 쪼금하지 말고 거기 있는 무 다 해가라. 깍두기만 하지 말고 저기 산 밑에 가면 총각무도 있응께 그것도 뽑아다 총각김치도 담가 주마."

"와, 크다!." 세린이가 무를 뽑더니 신기한 듯 바라봅니다.
"와, 크다!." 세린이가 무를 뽑더니 신기한 듯 바라봅니다. ⓒ 장희용
"어, 이건 작은 무네?." 아이들은 집 앞 텃밭에서 본 무보다 작은 무를 보더니 이것 또한 신기해 합니다. 아이들에게 이만한 자연학습과 소중한 추억이 있을까 생각합니다.
"어, 이건 작은 무네?." 아이들은 집 앞 텃밭에서 본 무보다 작은 무를 보더니 이것 또한 신기해 합니다. 아이들에게 이만한 자연학습과 소중한 추억이 있을까 생각합니다. ⓒ 장희용
집 앞 텃밭과 산 밑에서 뽑아 온 무를 마당 수돗가에 내려놓으니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고 배가 부릅니다. 이것이야말로 100% 신토불이 자연산 김치 아니겠습니까. 방금 밭에서 뽑은 무와 파, 직접 농사 지어 수확한 마늘과 태양에 말린 태양초 고춧가루에 어머니의 손맛이 들어간 김치, 세상 어디 가서 이 맛을 볼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와 아내가 앉아 김치를 다듬으며 고부간 정겨운 이야기를 나눕니다. 세린이도 자기 딴에는 무척 재미있는 듯 매운 파도 다듬고 무잎도 떼어내는 등 한 몫 거듭니다. 저와 아버지는 햇살 좋은 마루에 앉아 조금 후에 있을 농협 수매 등 농사일과 이런저런 집안일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태민이는 아버지가 주신 사탕 먹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고부 사이, 부자 사이에 웃음꽃이 피는 동안 김치가 다 다듬어졌습니다. 이제부터는 온전히 어머니의 몫입니다. 먹기 좋을 정도의 크기로 썰은 깍두기를 커다란 통에 쏟아 붓고 고춧가루 등 양념을 넣고는 쓱쓱 버무립니다. 하얗기만 했던 무가 먹음직스러운 깍두기로 변신했습니다.

자 다음은 총각김치입니다. 역시 어머니의 손길이 닿자마자 서서히 총각무에 단풍이 들어갑니다. 잎이 있어서 그런지 깍두기보다는 버무리는 시간이 좀 더 걸립니다. 어머니의 빨간 손을 보면서 고무장갑 끼시라고 했더니 이렇게 해야 더 맛있는 것이라며 맨 손으로 쓱쓱 버무립니다. 군침이 돕니다. 빨리 익어서 아삭아삭 먹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이 듭니다.

아이들 '위문 공연'에 웃음꽃이 활짝

어머니가 다소 힘드신 듯 앉은 상태에서 허리를 피십니다. 저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갑자기 어머니한테 송구한 마음이 듭니다. 그렇다고 도와드릴 방법은 없고. 순간 장독대에서 놀고 있는 세린이와 태민이가 눈에 들어옵니다.

"세린아! 할머니 지금 힘드시단다. 세린이가 멋진 춤 한번 추면 할머니 하나도 안 힘들 텐데."
"춤? 아이~."
"우리 세린이 춤 잘 추잖아. 할머니가 세린이 주려고 이렇게 맛있는 김치 담가 주시는데 춤 한번 보여 주면 안 될까? 착하지 우리 세린이!"
"알았어. 그럼 아빠가 노래 불러."

세린이가 선뜻 '알았다'니. '방안통수'라고 집에서만 까불고 장난칠 줄 알았지 밖에만 나오면 공주병 걸린 듯 얌전하고 숫기 없는 세린이가 이렇게 선뜻 춤을 추겠다니 제가 다 놀랐습니다.

할머니가 김치를 담는 동안 장독대 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 세린이와 태민이. 어머니는 손자손녀들의 위문 공연을 보면서 "오늘 참 행복하구나!" 하셨습니다.
할머니가 김치를 담는 동안 장독대 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 세린이와 태민이. 어머니는 손자손녀들의 위문 공연을 보면서 "오늘 참 행복하구나!" 하셨습니다. ⓒ 장희용
어머니는 손주들의 위문공연을 한참 바라보시더니 "우리 강아지들 진짜 춤 잘 추네. 할머니 힘 하나도 안 든다"하시면서 오늘이 무척이나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세린이와 태민이의 위문 공연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저와 아내, 할아버지의 계속되는 칭찬에 우쭐했나 봅니다.

ⓒ 장희용
ⓒ 장희용
어머니가 담가 주신 깍두기와 총각김치 그리고 고구마, 배추, 무, 파, 감, 고춧가루, 참기름 등이 차 트렁크에 가득 실렸습니다. "어머니 잘 먹겠습니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셔서 오늘처럼 맛있는 김치 오래 오래오래 담가 주세요."
어머니가 담가 주신 깍두기와 총각김치 그리고 고구마, 배추, 무, 파, 감, 고춧가루, 참기름 등이 차 트렁크에 가득 실렸습니다. "어머니 잘 먹겠습니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셔서 오늘처럼 맛있는 김치 오래 오래오래 담가 주세요." ⓒ 장희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입니다. 아름다운 세상, 누군가 그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오지 않을 세상입니다. 오마이 뉴스를 통해 아주 작고도 작은 힘이지만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땀을 흘리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