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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제(11. 10) 퇴근 무렵, 갑자기 몸이 찌뿌드드 하더니 집에서 저녁을 먹고 누웠는데 열이 오르기 시작합니다. 고열에 편도선이 붓더니 침을 삼키기도 힘이 듭니다. 목감기에 걸리면 왜 그리 침을 자주 삼키는 것인지, 참말로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평소에도 자주 넘기던 침이 그때서야 비로소 자기의 존재를 알리는 듯도 합니다.

아내는 불덩이 같은 내 몸 전체를 얼음을 싼 수건으로 부지런히 닦습니다. 싸늘한 기운이 지나가고 나면 금방 몸은 다시 달아오릅니다. 아들은 내 몸을 만져보더니 '아버지 몸에 계란 후라이를 얹어서 해먹어도 되겠다'고 너스레를 떨어서 우리는 잠시 웃습니다. 그러나 조금 있으니 열과 함께 머리를 좌우로 가르며 지나가는 지끈지끈한 통증에 마침내 나는 끙끙 앓는 소리까지 냅니다. 진통해열제를 먹어보지만 열과 통증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얗게 밤을 새운 다음날(11. 11) 아침, 아내는 같은 아파트에 있는 처제 집에서 유자차를 가져와서는 '목감기에는 유자차가 특효'라며 차를 끓여서 내어오지만 겨우 한모금만 마시고 내려놓습니다. 헐은 목구멍이 따뜻한 액체를 위까지 넘겨주지는 않을 작정인 모양입니다. 그러나 아내는 식혀가며 기어이 몇 모금을 더 넘기게 만듭니다.

▲ 목감기에 좋다는 노란 유자차
ⓒ 한성수
나는 결국 출근을 못하고 병원을 찾았습니다. 동네병원인데 의사선생님과 간호사들이 반갑게 맞아줍니다. 젊은 간호사 앞에서 엉덩이 주사를 맞기 위해 팬티를 내리는 일은 언제나 난처합니다. 링거를 꽂고 집에 왔는데, 링거주사를 맞는 것도 옴짝달싹을 못하고 두 시간을 견뎌야 하는 고역입니다. 아내는 다시 유자차를 내어옵니다.

유자차 덕인지 주사 덕인지 어쨌든 오전을 지나고 나니 침 삼키기는 조금 수월합니다. 나는 급히 옷을 챙겨 입고 출근을 했습니다. 그러나 직장에서도 열은 계속 나고 오한은 멈추지를 않습니다. 그렇게 이틀을 지내니 오늘(11. 12)은 제법 견딜만합니다.

"유자는 비타민C가 풍부하여 감기의 예방에도 좋고 치료에도 효과가 커서 가래가 끓는 오래 된 기침을 삭여준대요. 또한 식욕을 증진시켜주고 숙취를 풀어주며 산후복통과 풍(風)에도 좋대요. 동생은 유자차를 많이 담가 계속 먹여서 조카들이 목감기에는 걸리지 않았대요. 우리 집도 작년 겨울에 모두 큰 감기 안하고 넘어간 게 유자차 덕분이 아니겠어요?"

▲ 소금물로 씻은 유자
ⓒ 한성수
아내는 오늘 점심 때 시장에 가더니 유자를 한 아름 사왔습니다. 무게를 달아보니 7킬로그램이 넘습니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유자차 만들기' 작업에 돌입합니다. 아내는 먼저 소금물로 유자를 깨끗이 씻습니다. 노란 유자가 참 먹음직스럽습니다. 그런 후에 유자의 물기를 제거한 후 껍질을 벗겨야 합니다.

▲ 4등분한 유자
ⓒ 한성수
유자의 껍질부위에 4등분으로 칼집을 내어서 벗겨 냅니다. 이 때 칼을 깊이 넣으면 과육의 즙이 흘러 손에 끈적끈적하게 묻으니, 살짝 표시만 해 준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과육과 껍질을 모두 분리한 후 과육에서 씨를 분리해 내야 합니다. 씨는 과육의 앞부분을 갈라서 살짝 눌러주면 톡 튀어나옵니다.

▲ 화장수의 재료-유자씨
ⓒ 한성수
아들은 먹음직스럽게 보였는지 말릴 틈도 없이 과육을 집어서는 입에 쏙 집어넣어서 씹습니다. 그러고는 차마 뱉지도, 삼키지도 못하는 표정이 예술입니다. 결국 삼키고 나서도 그 신맛이 남아있는지 몇 번을 물로 입을 헹구면서 '오렌지로 알았다'고 볼멘소리를 합니다.

"과육을 시다고 유자차 만드는데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으나 과육에도 비타민이 많고 설탕으로 조절하면 먹기도 괜찮고 새콤한 맛이 살아나서 오히려 입맛이 개운해요. 또 더러 꿀이나 검은 설탕을 쓰기도 하지만 저는 선명한 색깔을 내기위해 흰 설탕을 쓰려고 해요. 유자는 버릴 게 없어요. 씨는 소주를 부어 스킨으로 만들어 쓰면 건조한 피부에 좋대요."

▲ 가는체 썰기한 유자껍질
ⓒ 한성수
아내는 부지런히 유자를 나무도마에 놓고 칼로 썰어냅니다. 아내는 '가늘게 채썰기'라고 설명을 해 주는데, 흡사 오이채를 썰듯이 아주 가늘고 굵기가 일정합니다. 아내가 껍질을 써는 동안 나는 과육을 네모진 그릇에 담아서 분쇄기로 갈았습니다. 아내는 썰어놓은 귤껍질과 과육을 큰 함지박에 담아서 설탕으로 버무립니다.

▲ 분쇄기로 간 유자과육
ⓒ 한성수
"설탕과 유자는 3:2로 섞어야 맛도 좋고 오래 보관해도 비타민이 덜 파괴되고 그 향을 유지할 수 있대요. 그런데 오늘은 설탕이 모자라서 1:1정도로 담그겠어요. 오늘 담근 것은 1~2주 후에 먹을 수 있어요. 유자에서 나오는 맑은 물을 '유자청(柚子淸)'이라고 하는데, 옛날부터 감기에 잘 듣는 민간상비약으로 알려져 있어요. 시골어머님께도 드려야 하는데, 모자라지나 않을지 모르겠어요."

▲ 설탕과 버무린 유자껍질과 과육
ⓒ 한성수
보름 후에는 아내의 정성이 가득담긴 달콤새콤한 유자차를 맛볼 수 있겠습니다. 그 때쯤이면 지금의 내 몸살감기는 저 멀리 달아나 있을 테지만 오늘 만든 유자차는 이번 겨울, 연로하신 어머님과 우리가족이 겨울을 나는데 든든한 건강지킴이가 될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도 지금 바로 우리의 전통차인 유자차를 담가 보십시오. 지금이 유자의 출하철이라 남해와 거제에서 올라온 싱싱하고 향긋한 유자를 가장 싼 값에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랍니다. 그 유자차가 올 겨울 여러분에게 감기라는 놈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지키는 수호천사가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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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 있는 소시민의 세상사는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싶어서 가입을 원합니다. 또 가족간의 아프고 시리고 따뜻한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글공부를 정식으로 하지 않아 가능할 지 모르겠으나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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