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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농업전람회 분재전시장
서귀포농업전람회 분재전시장 ⓒ 김동식
두 번째 찾아 간 분재전시장은 여전히 인기다. 지난 4일 농업전람회가 시작되면서 필수코스로 자리 잡았다. 전시된 분재들은 한국분재협회 서귀포시지부의 회원작품들이다. 이 곳에는 모과나무, 느릅나무, 소사나무, 해송, 당단풍, 조록나무, 화살나무, 명자나무 분재가 멋 내기에 한창이다. 분재를 만드는 사람들이 한 세월을 보내면서 인생을 통째로 맡긴 나무들이다.

향기가 좋으나 못생긴 과일의 대표선수인 모과나무가 전시장 앞의 문지기 노릇을 하고 있다. 세월의 연륜이 듬뿍 묻어 있어서일까. 몽골천막으로 둘러싸인 전시장 안으로 호객하는 모양이 대차 보인다.

명자나무
명자나무 ⓒ 김동식

모과나무
모과나무 ⓒ 김동식

시문학과 분재예술의 공통분모

분재는 한 편의 시(詩)와 같다고 한다. 길지 않은 글 속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세계와 분재에서 보여주는 세계가 서로 닮았다는 것이다. 시에는 생명이 있다. 시를 자신의 정신영역으로 받아들이지만 사람마다 섭취방식, 포만감이 다르다. 분재도 마찬가지다.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것도 같다. '인간과 자연이 만나면서 태어난 아름다운 산출물'에 가격표를 어찌 붙이랴.

느릅나무
느릅나무 ⓒ 김동식
생명을 다루는 예술이 그리 간단치 않은 것은 당연하지만 불문율이 많은 것도 특별하다. 분재인의 3대 수치라는 것이 있다. 모르면서 아는 체 뽐내는 것, 알면서 알려주지 않는 것, 알고 있는 지식을 실천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조선시대 화가 강희안도 이를 뒷받침 하는 명언을 남겼다. "화훼(花卉)를 재배하는 것은 키우는 사람의 심지(心志)를 굳게 하고 덕성(德性)을 기르는 것"이라고 했다.

분재를 감상하는 사람들도 지켜야 할 3대 예의가 있다. 사람의 손길과 체온은 나무를 괴롭히는 것이기 때문에 '만지지 않는 것'이 첫 번째 예의이다. 그리고 생명예술을 다듬어 온 세월과 사랑 앞에 '가격을 묻지 않는 것'이 그 두 번째이다. 마지막으로 만든 사람의 인격과 안목을 담은 분재작품을 '함부로 평가 하지 않는 것'이 세 번째 예의이다.

참으로 부끄럽다. 분재인들이 지켜보는 순간에도 관심의 표현으로 쓰다듬기도 하고, 가격도 물어 봤다.

느릅나무
느릅나무 ⓒ 김동식

모과나무
모과나무 ⓒ 김동식

나무가 겪는 고통이 주는 의미

분재 감상법이 서툴러 오래도록 분재 곁을 떠나 자연전시장인 들로 산으로 쏘다니는 걸 좋아했다. 흔들리는 이파리와 휘어진 가지에서 오랜 세월을 견딘 나무와 기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비로소 분재감상의 첫 단추를 매는 것이다. 심오하나 어렵다.

분재에 대한 편견도 관심을 딴 곳으로 돌리는 데 한 몫 했다. 자연 그대로의 나무를 비틀고 꾸부리고 짓누르는 학대예술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닌 모양이다.

소사나무
소사나무 ⓒ 김동식
분재는 자연상태에서 인간의 기술과 정성을 더하여 자연보다 더 아름답게 만드는 생명예술이라 한다. 자연을 소재로 삼아 자연의 순리에 거스르지 않으면서 기르는 사람의 사랑과 개성을 발휘하여 처음의 자연보다 더 아름다운 자연을 만든다. 그 속에 인생을 심는다. 구도행위(求道行爲)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무가 겪는 고통의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생명의 신비를 키워가는 아름다운 창조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기나 긴 고통과 싸워 이긴 나무일수록 많은 사람을 감동시킨다. 오랜 세월 풍상을 이겨내며 또 하나의 분재나무로 태어나기까지 인간과 자연이 만나 질긴 인연을 만드는 과정이라면 이 또한 '축소된 우주'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화살나무
화살나무 ⓒ 김동식

겸허와 사랑, 아름다운 분재예술의 길

꽃과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 없이는 분재를 이해할 수도, 다가갈 수도 없다고 한다. 자신을 낮추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겸허한 자세야말로 제대로 분재를 배우고 실천하는 길이다. 잔인하게 관리한 분재는 자연을 파괴하는 반면, 은혜를 알고 사랑스럽게 관리한 분재는 우리 인간에게 자연이 보답을 하며, 축복을 준다.

부주의하게 관리한 분재는 싸움의 불씨가 되고
잔인하게 관리한 분재는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고
씁쓸하게 관리한 분재는 증오감을 불러 일으키고
무례하게 관리한 분재는 배풂이 없어지고
은혜스럽게 관리한 분재는 곱고 아름답게 보답을 하고
즐거웁게 관리한 분재는 하루를 빛나게 하고
때에 맞게 관리한 분재는 편안함을 주고
사랑스럽게 관리한 분재는 축복을 준다.

- 한국분재협회의 '분재 관리의 8칙(八則)'


느릅나무
느릅나무 ⓒ 김동식

덧붙이는 글 | 김동식 기자는 제주 서귀포시청에 근무하고 있으며 서귀포감귤박물관에서 마케팅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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