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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와 들깨를 말리는 시골 풍경
대추와 들깨를 말리는 시골 풍경 ⓒ 김규환
추석 대목부터 대추 맛이 들어간다. 풋풋하지만 갈색 물이 조금 들기 시작하면 대여섯 개 따서 씹어보면 달콤한 향기가 침을 고이게 한다. 어느 시골마을에 한가한 가을볕에 말리면 본격 가을이다.

더 깊어갈수록 들깨 향이 고향마을에 진하게도 퍼졌지 “탈탈탈” 씨앗 주머니에서 4개씩 작은 알갱이가 쏟아지면 커피 볶을 때보다 강해 코피가 날 듯하다. 얼마나 나올까 궁금하지만 털고 나면 제법 쌓여 이렇게 널어 말려 놓으면 토란국에 갈아 넣고 들깨강정 만들고 싶은 생각 간절하다.

호박덩이
호박덩이 ⓒ 김규환
아이고나 호박이 잘 늙었네. 저리 곱게 말년을 보내면 얼마나 좋을까. 둥근 호박 지지리도 따먹었건만 풀숲에 숨어 주인 눈에 발견되지 않고 서리 온 날까지 버텨야 겨울철 궁금한 입을 달래지. 찹쌀에 동부콩, 팥 집어넣고 팥죽을 쑤리라. 푸욱 고면 달달해서 설탕마저 필요 없다. 절반은 말렸다가 호박떡이나 해먹어야지.

함박꽃, 산목련을 북한에 김일성주석이 목란이라 했다. 씨가 참 아름답다. 주목 열매가 이번 바람에 다 떨어졌을려나.
함박꽃, 산목련을 북한에 김일성주석이 목란이라 했다. 씨가 참 아름답다. 주목 열매가 이번 바람에 다 떨어졌을려나. ⓒ 김규환
요놈 이리 붉은 놈은 쌩판 처음 본 작자지만 내 발목을 꼭 잡고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봄엔 그리 수줍게 함박 터지더니 이런 열매를 매달았구나. 목란이라 부른들 산목련이라 한들 함박꽃만큼 예쁘지 않아. 한 줌 따서 내년에 심어 볼까나.

또 아랫것은 뭐람? 주목하여 보세. 그래, 입에 물고 굴려봤으면 좋겠구만! 몇 나무 심어 교자상으로 써볼까. 암 치료에 그리 좋다는 주목(朱木)이야. 속살이 어찌나 붉고 단단하면 붉은 나무라 했을까 보냐. 더디 자라니 수목장(樹木葬) 감으로 최골세.

흰 아욱과 사뭇 다른 자주색꽃을 피우는 아욱꽃
흰 아욱과 사뭇 다른 자주색꽃을 피우는 아욱꽃 ⓒ 김규환
아우~ 이보다 가을을 더 시리게 하는 꽃이 있을까. 찬바람에도 죽지 않고 태백산 자락 밭가에서 보았지. 여태 그대를 모르고 있었던 건 색깔이 흔치 않아서야. 그래, 자네도 아욱이란 말이지? 내 눈에 쏙 박아뒀네.

동물 뇌같다. 꾸지뽕 열매 꾸지는 달면서도 약간 어색한 맛이 난다.
동물 뇌같다. 꾸지뽕 열매 꾸지는 달면서도 약간 어색한 맛이 난다. ⓒ 김규환
자네 쓰임새도 참 많았어. 그게 말야 뽕잎 부족할 때 얼마나 요긴했던가. 닥나무 팽이채 부족하면 초리 만들 때 이녁도 썼던 기억이 새롭구만. 가시는 또 얼마나 드센가. 왜지? 그토록 무서운 가시를 달고 있는 걸 탱자에게 물어봐야 하는가? 고만두게나. 가지 간신히 따서 꾸지 입에 넣기도 전에 하얀 뜨물 똑똑 떨어뜨리는 건 이차돈 피 같아.

껌을 씹기 전에는 꽈리를 입에 굴려 심심함을 달랬다.
껌을 씹기 전에는 꽈리를 입에 굴려 심심함을 달랬다. ⓒ 김규환
똬리는 짚으로 물동이 이라고 만든 게고 그대는 약으로 쓰지. 을씨년스런 가을 밭 가상에 붉게 서서 가는 세월을 아쉬워했네. 우리 누이 입에 넣고 요리조리 굴리며 어릴 적 심심풀이 노리개로 안성맞춤이었네.

만추를 화려하게 하는 두가지 국화.
만추를 화려하게 하는 두가지 국화. ⓒ 김규환
들국화는 서리에 영하로 똑 떨어진 날씨를 이기지 못하고 폭삭 주저앉아서 아쉬웠어. 두 친구 눈부시게 집 앞 뜰에 놓여 있더구나. 흩날리는 낙엽에 마음 추스르기 힘겹지만 상상도 할 수 없는 강인함에 어찌 그토록 상기된 얼굴로 서있는가. 아이 “호호” 손 불며 난로 찾아 떠나가니 너희들 할 몫 다 했으니 어여 집으로 가자스라.

처음 본 옥수수 종자는 보통 찰옥수수보다 크기가 1/3밖에 안 된다. 곶감은 곶감꽂이로 좋은 싸리나무에 끼워야 제맛이 난다.
처음 본 옥수수 종자는 보통 찰옥수수보다 크기가 1/3밖에 안 된다. 곶감은 곶감꽂이로 좋은 싸리나무에 끼워야 제맛이 난다. ⓒ 김규환
해도 짧아져 곧 동짓달이군. 동지팥죽보다 제발 아홉수에 걸린 내 처참한 인생에게서 떠나가라. 노란 옥수수로 부족하거든 이토록 빼어난 자줏빛 옥수수를 차릴 테니 뻥 튀기기 전에 물러가라.

곶감인가 꽃감인가? 꽃감은 가을 시골집 추녀 끝에서 처마 밑을 따스하게 해줬다. 꽃만큼 아름다우니 꽃감이 아니라면 꽂감이라 하자. 싸리나무 꼬챙이에 꽂았으니 꽂감 아닌가 말이다.

가느다란 나무에 쭉쭉 끼워 실바람 스치게 걸어두면 겉은 마르고 속은 더디니 안쪽은 곯듯 말듯 홍시가 되어 주르륵 흘러내렸지. 그런 곶감이라야 더 구미가 당기는 법인데 실로 매달아 볼품마저 없어라. 마을을 떠나지 않던 까치는 감나무에서 제들 밥이라고 서너 개 남은 홍시를 쪽쪽 빨아대며 나를 놀려대곤 했다. 나도 곶감 빼먹을 게 있으니 그만 둘란다. 맘껏 놀다 가거라.

솜 타던 집들은 이제 무엇을 하고 살까?
솜 타던 집들은 이제 무엇을 하고 살까? ⓒ 김규환
흥부집이 아니어도 사내아이 잿빛 내복은 앞쪽이 터져있고 무르팍은 빡빡 기어서 기운 흔적이 또렷했다. 솜다래 따먹고 풍성한 가을을 즐기면 산골짜기 밭은 하얀 꽃이 피어서 곧 눈(雪) 설설 마주친다. 외풍 심한 흙집엔 무거운 솜이불 몇 해나 덮었던가. 포근히 엄마 품에 안긴 듯 잠이 폴폴 쏟아졌던 그리움을 어찌 잊을까보냐.

고욤 따먹으러 삼남지방으로 다시 떠나야겠다.
고욤 따먹으러 삼남지방으로 다시 떠나야겠다. ⓒ 김규환
아이고, 또 먹는 것 타령인가. 아리랑 부르며 고향마을 찾아가면 감도 아닌 것이 쪼글쪼글 말라 비틀어져가겠네. 그래, 뭐니 뭐니 해도 고욤은 말이야 서리를 날밤을 새가며 맞아도 부족하지. 흰눈 두어 번 맞으면 씨 반 알갱이 반으로 나뉘어 곶감 저리가라 달달해. 나무하다 말고 미치고 환장하도록 따먹다가 속이 아리고 뒷간 며칠 못 가던 우리네 ‘굠’ 한번 먹어볼 날이 멀지 않았다.

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질 않는 이런 풍경, 고마운 친구들 덕에 살을 파고드는 차가운 만추가 하염없이 을씨년스럽지만은 않은 게다. 머물다 맴돌다 불혹(不惑)에 접어들면 잔잔해지려나.

덧붙이는 글 | 김규환 기자는 인터넷고향신문을 준비하고 있다. 겨울이 되기 전에 선보일 계획이다. 이 기사 원고료는 신문제작 비용으로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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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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