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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아버지께서 학교에 오실 때면 이제 갓 부임한 언니 같은 선생님에게나, 오빠 같은 선생님에게나 모두, 경어뿐 아니라 온 몸에서 흘러나오는 공경의 몸짓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자주 보았다. 그리고 돌아오셔서 꼬옥 잊지 않고 하신 말씀이 있으셨다.

"너희 선생님, 정말 훌륭하신 선생님이시더라. 학교 가면 수업 시간에 선생님 얼굴 똑바로 보고, 선생님 목소리 새겨 듣거라."

한 번도 아버지 입에서 우리 선생님 타박하거나 욕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었다. 당연히 우리 선생님은 훌륭하신 존재이므로 선생님 모습과 선생님 말씀을 새겨들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내가 두 아이의 학부모가 되어서 아이 선생님들을 만날 때면 꼭 훌륭하다고까지 말할 수 없는, 아니 내 맘에 들지 않는, 즉 나의 성향과 맞지 않는 선생님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난 유년시절의 내 아버지처럼 행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님에게는 정말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공경의 몸짓을 나 또한 했고, 선생님을 뵙고 온 후에는 아이들에게 아버지께서 내게 하셨던 말씀을 똑같이 아니 할 수 없었다.

"애야, 너희 선생님, 정말 훌륭하신 분이더라"라고 말이다. 설령 내 생각과 맞지 않는 선생님일지라도 나는 내 아이들을 위해서 그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아버지께서도 그러셨을 거다. 아이들이 보고 배우게 될 선생님이니까. 내 아이들이 선생님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미워하게 된다면 내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없을 테니까.

다행히 나도 그런 대로 잘 자랐고, 내 아이들도 아직까지는 잘 자라 주었다. 나도 사회에서 열심히 일하며 행복해 하는 존재이고, 내 아이들도 요즘 사회에서 취업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이만하면 잘 자란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나도, 아이들도 커서 "아하, 어떤 선생님이 보다 더 훌륭하신 선생님이었다"고 판단할 수 있게 되었으니 선생님 비난하는 소리 듣지 않고 컸어도 좋은 선생님 알아보는 안목을 지닐 수 있게 되었다고 하겠다.

얼마 전 모처럼 SBS '8시 뉴스'를 보다가 '위기의 선생님'이란 부분을 보게 되었는데 어찌나 답답한 마음이 드는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위기의 선생님'이라는 제목부터 선생님들이 편안하지 않다거나, 또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를 풍기는데, 내용을 들어보니 '역시나'였다.

얼굴을 가린 학부모 두 분이 나와서 "선생님께서 우리 아이를 만날 미워하고 귀찮게 굴어서 촌지를 갖다 주었더니 바로 선생님 말씀이 '매우 리더십 있는 아이'라고 하시더라", "선생님 때문에 왕따가 되었다"라는 등.

촌지 문제는 이미 몇 년 전에 부각되어 써먹을 대로 다 써먹은 새롭지도 않은 내용이거니와 공정한 기사가 되려면 양쪽 당사자를 모두 취재하여 보여주고, 시청자가 그 모습을 보고 판단하게 해야 함에도 일방적으로 한 쪽의 인터뷰만 내 보낸 SBS에 대단히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촌지 문제도 그렇다. 학부모의 굳센 의지만 있다면 촌지 그런 것 안 하고 얼마든지 선생님과 상담할 수 있다. 사실 나도 내 아이 선생님을 만나러 가게 된 날, 빈손으로 갔을 때나 내 선물이 좀 작아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을 때면 안절부절하기도 했지만 몇 번만 넘기면 잘하게 된다. 초보 엄마에서 점점 중견 엄마로 되면서 자신의 관점을 정확히 세운 덕분이었다.

난 선물에 대한 관점은 크리스천은 아니지만 예수의 말씀을 인용하고 싶다.

'네 아는 가족이나 친지들, 그리고 잘 사는 이들에게 선물하지 말라, 그들은 너를 알므로 다시 너에게 주려고 할 것이다. 네가 그들에게 받게 된다면 너는 하늘나라에서 받을 것이 없을 것이니 너를 모르는 어려운 이들에게 주어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강 이런 뜻의 말씀이 있으셨다. 그렇다고 부모 형제나 이웃을 모르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은 아닐 게다. 내 아이만을 잘 돌봐 주기를 바라고 선물하지 말라는 것이다. 꼬옥 선물하고 싶다면 학년이 끝났을 때나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자신의 아이더러 선생님을 찾아가게 만든다면 더 좋은 선물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교사도 학부모의 촌지나 선물을 몇 번만 간곡하게 사양한다면 이미 소문이 나서 잘 들어오지 않게 될 것이다.

나는 선생님이 된 지 23년 차인 교사이다. 23년 동안 선물은 무지 많이 받았다. 부적격 교사냐구요? 천만에, 뭔 데이나 스승의 날, 각종 기념일에 종이로 만든 상자 안의 사탕이라든가 초콜릿을 무지 많이 받을 뿐이다. 학생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게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아이들이 손수 만든 다양한 선물들을 소중히 간직한다.

"나는 너희들이 만들어 주는 것이 제일 좋더라"하며 함께 사탕을 나눠 먹으면 이미 아이들은 선물의 의미를 알리라 생각한다. 학생들이 가진 소중한 것을 나에게 주는 것이 중요하지 부모들이 가진 재물 받는 것을 나는 즐겨하지 않는다.

'선물' 하면 생각나는 교사가 있다.

"아주 어려운 학부모 한 분이 계셨어. 그런데 어느 날 비싼 샤워 코롱과 김치 한 통을 보내 오셨지 뭐니? 부업으로 매일 구슬 몇 개씩 궤서 사는 집인 줄 아는데, 부득불 교실에 밀어 넣고 도망치듯이 가 버리시는 거야. 엄마 자신도 써 보지 못했을 화장품일 것인데, 이미 사 버린 것이라면 그 화장품을 그 어머니가 쓰게 하고 싶었어. 곰곰 생각 끝에 빈 김치 통에 화장품을 다시 넣고 간곡한 편지를 써넣었어.

'OO 어머니, 저에게 주신 고마운 마음이 정말 고맙게 느껴집니다. 어머니께서 밭에 나가 손수 따서 담그신 이 김치만으로도 제게는 정말 훌륭한 선물인데 화장품까지 보내시다니요, 그런데 어쩌지요? 저는 똑같은 화장품이 있네요. 그래서 한 번만 제 청을 들어주실래요? 이 화장품 그냥 어머니께서 쓰시면 제 맘이 정말 뿌듯할 것이에요.'

그 후, 그 어머니께서는 나와 더 친해졌고, 스스럼없이 전화도 걸게 되셨단다."


이렇게 말하던 내 친구. 내 주변에는 모두 이처럼 촌지 받아온 교사도, 촌지 받는 교사도 없는데, 어찌하여 교직 사회가 촌지 받는 교사들이 득시글한 것처럼 보도가 된다는 말인가?

대다수 선량한 교사들이 교단을 지키고 있는데, 촌지교사들이 득시글하는 것으로 짐작하게 하는 SBS 보도에 나는 열 받지 않을 수 없다.

며칠이 흐른 후 다시 만나게 된 '위기의 선생님' 편은 아이들이 거의 자는 것처럼 보이는 교실 풍경을 보여주며 전직 교사였던 학원 선생님이 나와서 우리는 이러저러하게 아이들을 세밀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인터뷰를 보여주었는데 다분히 학교 선생님은 학업에도 또 다른 면에서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뉘앙스를 포함하고 있었다고 보여진다.

학교생활기록부의 포괄적인 평가 내용과 학원 선생님의 구체적인 평가 내용을 보여 주며 평가도 제대로 받을 수 없음을 시사해 주었다.

60년 이상 보관하게 되는 학교생활부와 학원의 영리를 위해서 단 몇 개월, 또는 몇 년을 거개가 학생들의 학업만을 위해서 써먹게 될 평가를 어찌 같은 잣대에 놓을 수 있는가?

오락 프로의 스타들이 초등학교 학교생활기록부를 확인하러 가는 모습을 대부분 사람들은 보셨을 게다. 그런데 성적은 그대로 기록되어 있지만 -물론 성적이 좋은 경우는 보여주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는 잘한 과목만 쓰윽 비쳐주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을 거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공부는 잘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대스타로서 잘 자랐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일 때도 많았다- 행동 발달 평가 등에서는 두루뭉술하게 성실하고, 명랑하고, 유머가 있고, 리더십이 있고, 다른 사람을 잘 도와주며, 등등 거개가 이렇게 기재되어 있을 것이다.

60년이나 보관하게 될 학교생활기록부에 부정적이며 단정적이며 세밀한 평가 사항을 차마 적을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아이들이 커서 무어가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학교에서는 학교생활기록부를 기재하게 될 전 단계들을 통하여, 자세한 지도 사항을 기록하게 되어 있다.

처음과 끝을 잘 알아보지도 않고, 섣부르게 학교와 학원의 평가를 비교하여 학교 불신을 더 심어 준 SBS의 보도는 정말 정말 열 받게 만든다.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시는 선생님들을 집단으로 매도하는 매스컴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어찌 웃어른을 존경할 수 있겠는가?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시는 선생님들을 집단으로 매도하는 매스컴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어찌 잘 자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 아이들이, 자신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을 촌지나 받고, 대충 하루를 보내 버리는 사람으로 의심의 눈으로 보는 뉴스를 본다면 어찌 되겠는가?

자존심을 잃어버린 아이들이 많은 갈등을 겪어 제 갈 길을 못 가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자신이 배우는 선생님들에 대한 자부심과 신뢰감을 잃어버린 아이들이 어찌 될는지는 불을 보듯이 뻔한 일이다.

다시는, SBS의 평형을 잃은 보도가 온 가족이 밥상을 대하는 시간에 보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위기의 SBS'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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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각장애 특수학교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동료 선생님의 소개로 간간이 오마이 뉴스를 애독하고 있습니다. 바쁜 일과 중 저의 미숙하고 소박한 글이나마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습니다. 제가 글을 올리면 전국의 네티즌들이 모두 본다는 것을 생각하면 무서운 생각도 듭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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