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합동결혼식을 마치고 기념촬영. 중앙이 주례를 맡은 한병인 정읍부시장
합동결혼식을 마치고 기념촬영. 중앙이 주례를 맡은 한병인 정읍부시장 ⓒ 정종인
사회복지법인 자애원에서 사랑을 키워가던 3쌍의 부부가 '백년가약'을 맺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정신지체장애도 이들의 사랑앞에선 장벽이 되지 않았다.

결혼식에 참석한 이들 부부의 가족들은 가슴의 큰 응어리로 남았던 '미완의 숙제'를 풀고 새로운 인생의 항해를 시작하는 이들의 행진을 지켜보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자애원 뒷켠에는 이들 3쌍의 부부를 위한 사랑의 보금자리도 마련됐다. 소꿉놀이하는 아이들보다 즐거운 시간을 보낸 자애원 3쌍의 신혼부부들은 이날 결혼행진곡에 맞춰 자신의 영원한 반쪽과 함께 희망의 포구를 향해 뱃고동을 울렸다.

종철씨의 큰누나가 서울에서 참석해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종철씨의 큰누나가 서울에서 참석해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정종인
정신지체라는 장애를 겪고 있으면서도 애뜻한 사랑을 만들어가던 이들이 지난 9일 장애인생활시설이자 그들의 보금자리인 자애원 잔디운동장에서 결혼에 골인했다.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며 사랑의 결실을 이룬 3쌍의 원앙새들은 시종일관 즐거움이 넘쳤다.

이날 사랑의 보금자리를 만든 신혼부부 3쌍은 충남 부여출신인 우종철(52·남)·윤영례(51·여·고창출신)커플, 서울출신 김윤석(41·남)· 명주미(27·여·경기도 부천출신)커플, 정읍시 감곡 출신 장기훈(28·남)·정은미(26·여)커플로 가을하늘 아래 '혼인서약'을 했다.

"행복이 터질 것 같아요."

신부입장을 앞둔 명주미씨는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한편의 아름다운 시(詩)를 썼다. 소문난 애처가인 윤석씨를 사랑의 포로로 만들어버린 주미씨는 감격에 겨운 듯 어눌한 말씨지만 '행복'의 정의를 그렇게 내렸다. 물레방앗간이 아닌 작업장에서 은미씨에게 한 눈에 반해버린 기훈씨는 신부의 순백색 웨딩드레스를 만져주며 애정을 표시하는 여유도 보였다.

최고 연장자로 만혼의 기쁨을 맞이한 종철씨와 영례씨도 친·인척들의 격려에 함박만한 미소로 화답했다. 사회복지법인 자애원에서 이들 정신지체장애인 3쌍의 커플이 '사랑의 밀어(?)'를 속삭인 것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꽃으로 장식된 종철씨의 방문
꽃으로 장식된 종철씨의 방문 ⓒ 정종인

윤석씨의 방
윤석씨의 방 ⓒ 정종인

자상한 기훈씨의 방
자상한 기훈씨의 방 ⓒ 정종인
우종철·윤영례 커플의 사랑만들기는 종철씨의 일방적인 '짝사랑'으로 시작됐다. 천진난만한 미소가 매력만점인 종철씨는 10남매에 달하는 가정에서 자라 의타심이 강하지만 영례씨를 향한 구애작전에는 모든 희생을 감수했다.

지금은 연애 시절에 비해 상황이 역전됐다. 종철씨는 영례씨에게 먼저 호감을 사려했지만 지금은 영례씨가 '현모양처'로 변해 모든 시중을 들 정도가 됐다. 이날 결혼식에 참석한 종철씨의 큰누나인 우순례(58·여·서울 상계동)씨는 연신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며 "결혼식을 앞두고 너무 기쁘고 감사해 며칠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새로 얻은 올케를 업고 춤이라도 추고 싶다"고 감격해 했다.

연애기간 동안 종철씨가 간혹 싫다고 하면 영례씨는 하루종일 울먹이며 '오빠를 달래주라'고 선생님들의 옷자락을 놓지 않을 정도로 '순정파'였다. 서울출신인 윤석씨는 주미씨의 변덕스러운 성격을 연애기간 동안 말끔히 고쳐놨다. 자애원 선생님들도 포기한 주미씨의 변덕을 고쳐 논 윤석씨의 비법은 아직도 '전설'로 남아있다. 이날도 윤석씨는 간혹 투정을 부리는 주미씨를 달래며 사나이다운 여유를 보이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새단장된 3쌍 부부의 보금자리가 자애원에 새로 마련됐다
새단장된 3쌍 부부의 보금자리가 자애원에 새로 마련됐다 ⓒ 정종인

축가를 부르는 자애원 선생님들
축가를 부르는 자애원 선생님들 ⓒ 정종인

예쁘게 꾸며진 결혼식장
예쁘게 꾸며진 결혼식장 ⓒ 정종인
그동안 자애원측은 3쌍의 신혼부부들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자애원측은 이들 부부들에게 피임법을 포함한 성교육과 부부에티켓 등 건강한 부부로 거듭 태어나기 위한 세심한 배려도 아끼지 않았다. 이와함께 사회생활의 원활함을 기하기 위해 대중교통, 대중목욕탕, 음식점 등을 이용하는 방법을 체험하는 것도 주요 프로그램이었다.

자애원 손정녀 원장은 "자애원에서 새로운 삶을 의욕적으로 살아가던 장애우들이 가정이라는 소중한 보금자리에 둥지를 틀어 기쁘다"며 "그동안 각종 후원을 아끼지 않으신 독지가들과 선생님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고 말했다.

선거법으로 인해 유성엽 정읍시장을 대신해 이날 결혼식에 주례를 맡은 한병인 정읍부시장은 "결혼생활 동안 '사랑해' '잘했어' '맛있어'라는 말만 아끼지 않으면 행복한 부부가 될 수 있다"며 "늘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 인정하고 배려하는 건강한 가정을 이루길 희망한다"고 격려했다.

한국방송(KBS)과 부산방송(PBS) 등 언론의 주목을 받은 이날 결혼식은 가족·친지들이 참석한 가운데 혼인서약, 정읍여성회관 가곡반과 자애원 선생님들로 구성된 축가, 결혼 반지 교환등의 순으로 진행됐으며 오색풍선이 가을하늘을 수놓으며 이들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했다.

종철씨가 영례씨에게 결혼반지를 끼워주며 사랑을 맹세하고 있다
종철씨가 영례씨에게 결혼반지를 끼워주며 사랑을 맹세하고 있다 ⓒ 정종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