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열대우림이 빼곡이 늘어선 강가.
열대우림이 빼곡이 늘어선 강가. ⓒ 배한수
굽이굽이 좁은 강을 따라 조심스레 배를 운전하며 들어가니 이제서야 정글 탐험이 시작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정돈이 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지만 황토색 흙탕물과 짙푸른색의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절경은 그 어떤 풍경보다도 아름답다.

이렇게 두 시간여를 달린 끝에 배는 한 로지의 입구에 도착했다. 아마존 강 유역에는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40여 개의 로지가 있는데, 내가 방문한 이곳은 인디오들의 집단 거주촌과 가깝고 각종 동식물을 보는 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로지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나를 반기는 것은 식당 앞 나무다리 난간에 앉아 있는 빨간 앵무새 한 쌍.

식당 앞 입구에 앉아 있는 아름다운 빛깔의 앵무새.
식당 앞 입구에 앉아 있는 아름다운 빛깔의 앵무새. ⓒ 배한수
동물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앵무새이지만, 아마존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앵무새라 그 감흥이 남달랐다. 바로 아마존 밀림 속을 누비는 새들 중에서도 으뜸으로 친다는 천연의 앵무새이기 때문이리라.

새장도 없이 자유로이 방치되어 있는 앵무새의 정체가 궁금해 산장 직원에게 물어 보니, 산장에서 키우는 앵무새는 아니라고 한다. 우연히 산장을 찾은 앵무새들이 관광객들이 던져 주는 과일을 받아 먹다가 거기에 타성이 젖어 이렇게 산장에 눌러앉게 된 것이라고... 그 말을 증명이나 하듯 가까이 다가가 한 번 만져 보려고 하니, 앵무새는 이내 산장 근처 높은 나무 꼭대기로 날아가 버린다.

점심 때가 다 되어 산장에 도착한 탓에, 식당 안은 나와 다른 관광객들을 위한 음식 준비로 분주했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한쪽 테이블 위에는 다양한 현지 음식과 과일들이 한상 가득 차려져 있었다. 생선찜 요리와 밥, 샐러드 등을 주메뉴로 한 뷔페는 나를 비롯한 다른 외국인들 입맛에도 잘 맞아 허기진 배를 가득 채울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식당 밖으로 나오니 아까 그 앵무새들이 어느새 다시 날아와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부부처럼 보이는 한 쌍의 앵무새들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 스스로 날아와 앉아 있으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런데 함께 식당에 있던 외국인 관광객이 수박 한 덩어리를 갖고 와 살금살금 다가가니, 앵무새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커다란 부리로 수박 덩이를 냉큼 낚아챈다.

수박 덩어리를 열심히 파먹고 있는 앵무새의 모습.
수박 덩어리를 열심히 파먹고 있는 앵무새의 모습. ⓒ 배한수
한쪽 발로는 기둥을 붙잡고 서 있으면서 나머지 한쪽 발로 수박덩이를 잡고 수박을 갉아 먹는 모습이 너무나 능숙한 앵무새. 이렇게 앵무새가 과일을 갉아 먹는 것을 가까이서 보고 있으니 그 모습이 정말 앙증맞기 그지없다. 이렇게 로지에 터를 잡고 사는 앵무새 한 쌍은 과일 중에서도 귤과 수박을 제일 좋아한다고 한다.

빨간 앵무새 한 쌍이 수박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잠시, 다른 외국 관광객이 어디선가 연두빛의 앵무새를 들고 나타났다. 산장 뒷편에서 발견했다고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앵무새의 입에는 귤 한 조각이 물려져 있었다. 놀고 있던 앵무새를 귤로 유혹한 모양이다.

귤을 먹고 있는 연두빛 앵무새의 모습.
귤을 먹고 있는 연두빛 앵무새의 모습. ⓒ 배한수
과일을 물려주자 서슴없이 관광객 팔로 올라탄 야생의 앵무새. 가까이서 앙증맞은 앵무새를 보고 있자니 귀엽고 신기하기도 했지만, 야생의 동물이 관광객이 던져주는 먹을 것에 쉽게 다가올 정도로 사람에게 적응된 모습을 보니 한편으로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이들이 먹이를 찾아 헤매야 할 곳은 바로 저 밀림 속인데.

이 로지 안에는 이렇게 자연스레 날아든 앵무새 이외에도 산장 주인이 직접 사육하는 앵무새들, 뚜깐(Tucan)이라는 긴 부리를 가진 새 등이 살고 있었다.

노란색과 연두색, 하늘색이 예쁘게 섞인 앵무새의 모습.
노란색과 연두색, 하늘색이 예쁘게 섞인 앵무새의 모습. ⓒ 배한수
수박 덩어리를 물고 있는 뚜깐(Tucan)의 모습.
수박 덩어리를 물고 있는 뚜깐(Tucan)의 모습. ⓒ 배한수
이 중 뚜깐은 남아메리카가 주서식지인 새인데, 그리 크지 않은 몸집에 몸통과 비슷한 크기의 거대한 부리를 가져 그 모습이 너무나 앙증맞은 새였다. 게다가 몸통과 부리의 색깔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마치 누군가가 예쁜 색의 물감으로 칠해놓은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뚜깐은 몸집의 크기에 비해 부리가 너무 길어서인지 행동도 둔하고, 수박을 던져 줘도 먹지는 못하고 물고 있다가 떨어뜨리기만을 반복한다. 산장 주인은 "뚜깐은 주로 과일을 먹고 살지만 큰 과일을 던져 주면 큰부리 때문에 제대로 갉아 먹을 수가 없어, 과일은 항상 작게 쪼개서 던져주거나 작은 과일만 줘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앵무새와 뚜깐의 매력에 푹 빠져 있을 때 즈음, 산장 직원 아저씨는 참새만해 보이는 작은 새 한 마리를 들고 왔다.

산장 아저씨가 들고온 참새 크기만한 새의 모습.
산장 아저씨가 들고온 참새 크기만한 새의 모습. ⓒ 배한수
숲속을 돌아다니다 다리가 부러진 채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을 데려와 고쳐준 뒤로 아저씨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는 이 새는 굉장히 작은 몸집에 쌀알만한 눈이 너무 앙증맞았다.

아저씨께 "우리 나라 옛날 이야기에 다리를 고쳐준 새가 금은보화가 열리는 박씨를 물어 주는 이야기가 있으니 놓아 주는 게 어떠냐"고 이야기했더니, "나도 돌려보내려고 숲 속에 돌아가 몇 번을 놓아 줬는데 귀신 같이 나를 찾아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아저씨와 떨어지기 싫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아마존 사람들은 새와 짐승에 얽힌 에피소드를 하나쯤은 다 갖고 있다고 한다. 밀림 속을 누비다 보면 어렵지 않게 수많은 종류의 동물들을 만날 수 있고, 종종 숲속의 약육강식 세계에서 밀려난 동물들이 먹이를 찾아 인가로 출몰하기 때문에 굳이 밀림 속을 거닐지 않더라도 쉽게 동물들과 맞이할 수 있는 것.

덕분에 나 같은 이방인도 산장에 도착하자마자 쉽게 아름다운 새들을 만나볼 수 있었지만, 스스로 자신이 살 터전에서 벗어나 쉽게 먹이를 구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로 날아온 새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밀림 속을 찾아든 사람들에 의해 아마존의 동물들이 길들여지고, 무분별한 밀렵으로 그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산장 근처 나무 꼭대기에서 열매를 열심히 파먹고 있는 파란 앵무새의 모습.
산장 근처 나무 꼭대기에서 열매를 열심히 파먹고 있는 파란 앵무새의 모습. ⓒ 배한수
산장 근처 나무에서 열심히 주위의 경계를 열심히 살피며 나무 열매를 따먹는 파란 앵무새의 모습을 보면서, 이들의 삶이 더 이상 인간의 소유욕에 간섭 받지 않고 자유로이 밀림 속을 누비며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끼또스 여행기는 총 11부로 연재됩니다. 

본 기사는 중남미 동호회 "아미고스(http://www.amigos.co.kr)",
"싸이월드 페이퍼(http://paper.cyworld.com/vivalatin)" 에 칼럼으로도 게재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