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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3일 오후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민주당 제4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 당시 민주당 대의원들은 열린우리당과의 합당반대 결의안을 박수로 채택했다.
지난 2월 3일 오후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민주당 제4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 당시 민주당 대의원들은 열린우리당과의 합당반대 결의안을 박수로 채택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10ㆍ26재보선 선거결과가 열린우리당을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그들이 본 것이 무슨 파티마의 예언도 아니었을텐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사색이 되어 있을까? 나라의 앞날 때문일까 개인의 앞날 때문일까? 어렴풋이 짐작할 수밖에 없다. <세계일보>는 선거를 전후한 호남출신 한 열린우리당 중진의원의 충격을 이렇게 전언하고 있다.

"10·26 재선거 전날 부천에 내려갔다가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우리당 이상수 후보가 막판에 승리를 장담하고 다니자,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호남향우회 유력 인사가 '그렇다면 내일은 한나라당 찍으러 가야겠다'고 말하더라." (<인터넷 세계일보>, 2005. 11. 3.)

기이하지 않는가!? 열린우리당의 창당정신에 의하면 이제 우리 정치도 지역과 상관없이 어떤 정당이라도 계층적 이해관계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 꿈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이 '섬멸의 대상도 아니고 정책까지 열린우리당과 비슷한' 한나라당과 대연정 파트너가 되지 못해 안달을 했던 판국에 호남향우회의 한 '유력'인사가 보수적인 한나라당을 찍겠다는 게 뭐가 그렇게 충격적이었을까?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보다 더 보수적인 당인데 그 '유력'인사를 뺏겨서 충격이란 말인가?

그 열린우리당 중진의원이 정말 충격을 받았다면 그것은 현실과 가상(거짓) 세계가 구별되지 않는 매트릭스의 충격이다. 그 매트릭스의 구조는 이렇게 되어 있다. 열린우리당은 현실 정치의 생존기반은 거의 대부분을 호남에 기대면서 가상세계의 이념적 정당성은 '호남 없는 정책대결' 속에서만 찾자는 이데올로기를 표방한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이제 거꾸로 가상세계의 이념적 정당성을 영남에서의 현실로 바꾸기 위해 '영남 있는 정치개혁'에 온 정성을 기울인다.

한마디로 열린우리당의 매트릭스 속에서 모든 호남인들은 그저 운명처럼 현실 정치 속에서 어떤 상황이라도 열린우리당에게 몰표를 주어야 하지만(주지 않으면 '충격'이다!), 그 피 같은 표는 열린우리당의 가상 이데올로기 속에서는 비난받으며 사라져야 할 지역주의 몰표일 뿐이다. 당연히 이 현실과 가상세계의 매트릭스가 혼란스러울수록 매트릭스 바깥에서 부질없이 표만 공급하고 있는 현실의 호남은 상처받는다. 이것이 지금 호남이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미련 없이 떠나는 이유다.

현실 정치는 호남에 기대고, 가상 정치는 '호남없는 대결'서 찾는 여당

민주당 합당 찬성발언을 한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과 이낙연 민주당 원내대표가 3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민주당 합당 찬성발언을 한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과 이낙연 민주당 원내대표가 3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런데 이렇게 '거짓과 진실', '가상과 현실'을 혼동시키며 위선적인 지배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는 매트릭스의 역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리해보자. 지면관계상 노 대통령 이후만을 간단히 정리한다. (참고로 내가 지금 여기서 사용하는 '매트릭스'라는 용어는 강준만 교수가 나의 책 <김대중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평하면서 사용한 용어인데 영화적 이미지와 함께 의미를 함축시키는데 유용하므로 차용하기로 한다.)

매트릭스1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민주당 대선경선에서 만약 자신이 광주에서 1등을 한다면 광주시민에게 얼마나 큰 신세를 진 것이냐면서 이런 약속을 했었다. "제 한 목숨 다해서 그 신세 다 갚겠습니다!" 나는 지금 선거과정에서의 과장된 수사를 상기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발언이 현실정치 속에서 광주라는 지역단위의 역사적 의미를 어쩔 수 없이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만을 강조한다.

그런데 2003년 노 대통령은 "대구 출신 대통령이 무소불위 권력으로 국가의 자원을 주무를 때 진짜 호남을 소외시켰나? 인정할 수 있나?"라고 주장한다. 왜 이런 발언이 나왔을까? 그의 지역관념 없는 가상 이데올로기가 진실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지역모순이 존재하지 않아야만 한다. 즉 이념적으로 존재하지 않아야 하므로 실재로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이다. 현실 정치인으로서는 광주라는 지역단위의 의미를 절감하면서 가상 이데올로기 속에서는 지역단위가 없어야 하는 매트릭스!

매트릭스2 열린우리당의 염동연, 임종석 의원 등은 지금까지 간헐적으로 제기됐던 민주당 등과의 대통합을 공공연하게 주장하기 시작했다. 무엇 때문일까? 무슨 구국충정이 아니다. 임종석 의원의 표현대로 "지방선거에서 완패하면 당은 그대로 깨진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의 가상 이데올로기 속에서 민주당은 반드시 '지역주의 부패세력'이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가상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민주당과의 분당을 결행하여 지역관념 없는 새로운 정치를 선도하고자 했던 열린우리당의 존재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 가상 이데올로기는 민주당과의 통합에 격렬하게 거부감을 표시하는 유시민 의원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민주당은 임종석 의원의 현실 정치 속에서는 "중도개혁에 입각한 민주평화세력"이지만 열린우리당의 가상 이데올로기 속에서는 '지역주의 부패세력'이어야만 하는 매트릭스!

매트릭스3 애초에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의 가상 이데올로기 속에서 있어야 할 정치집단이었을까 사라져야 할 정치집단이었을까? 사라져야 할 정치집단이었다. 열린우리당은 가상의 세계 속에서 민주당과 단절을 선언하고, 의식 있는(?) 한나라당의 독수리 오형제를 받아들여 형식적으로 모든 지역주의로부터 단절적으로 새출발함으로써 100년 갈 정통성을 확립한 전혀 새로운 정당이었다. 그럼으로써 당연히 가상의 세계 속에서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에게 영남지역을 내주고 몰락해야만 하는 정당이었다.

이 가상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많은 이들을 흥분시켰으면 민주노동당의 노회찬 의원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꿈의 리그'를 머릿속에 미리 그려보며 마냥 행복해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한나라당은 흔들림 없이 자신들을 지킴으로써 노 대통령을 기진맥진케 했다. 이제 열린우리당에 의한 한나라당의 몰락이라는 가상은 현실 속에서 실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를 놀라게 한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이 현실 정치 속에서 등장한다. 가상의 이데올로기를 전제로 호남을 주된 지지기반으로 삼던 민주당을 철저히 몰락시켰지만 현실 정치를 핑계로 영남을 주된 지지기반으로 삼던 한나라당의 역사적 정통성을 이제는 인정하자는 수치스런 매트릭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이러고도 호남이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떠나지 않고 맹목적 충성을 다해주기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혹 바보가 아닌데도 누군가 여전히 호남이 그래주기를 기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출구 없는 매트릭스를 앞으로도 영원히 헤매고 있을 사람이다.

민주당과의 통합론?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라"

민주당과의 통합을 위해 삼보일배라도 하고 싶다며 통합론을 강력히 제기하고 있는 염동연 열린우리당 의원.
민주당과의 통합을 위해 삼보일배라도 하고 싶다며 통합론을 강력히 제기하고 있는 염동연 열린우리당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렇다면 이제 모두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각자의 길을 모두 열심히 가야 한다. 염동연 의원처럼 "민주당과의 통합 위해 삼보일배라도 하고픈 심정"이라는 식의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각자의 길을 한 눈 팔지 말고 열심히 가야 한다. 누구라도 이런 현실적인 정치꾼 같은 소리 자꾸 하면 가상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유시민 의원에게 혼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양심적으로 한 번 생각해보기 바란다. 설령 염 의원의 소원이 이루어져 '정치공학적 표!'가 통합돼 열린우리당, 그리고 통합된 정치집단의 많은 정치인들이 다시 한번 승승장구했다고 하자. 그 매트릭스의 세계는 어떻게 되었는가?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말을 바꾸면 매트릭스가 만들어내는 논리필연적인 분열과 호남모욕은 지칠 줄 모르고 반복될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끝장을 봐야 한다. 당신들의 길을 홀로 걸어 당신들이 옳았음을 입증하고 존경받아야만 한다.

입증하지 못하면? 그거야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다시는 당신들의 방식으로 지역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정치인들, 언론인들, 학자들, 민중들이 역사 속에서 두 번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것 아닌가!?

매트릭스 바깥에 서 있는 내말이 좀 '거시기'하게 들린다면 같은 당내의 유시민 의원을 참고하기 바란다. 유 의원의 경우 자신의 가상 이데올로기 속에서 민주당의 현실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지만 거꾸로 자신의 현실 정치 속에서는 대단히 관대하게도 한나라당은 정상적인 집권정당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그의 매트릭스의 세계를 주의 깊게 감상해 보기 바란다.

"앞으로 남은 2, 3년 동안 노대통령 임기, 17대국회 임기 동안 이렇게 버거운 상태가 지속된다면 한나라당으로 다시 정권이 넘어갈 수도 있다. 만약 우리가 정말 고민해서 다시 집권할 수 없다면 그것도 합리적인 일"이다.(<오마이뉴스, 2005. 5. 26.)

"합리적인 일"!!! 염동연, 임종석 의원 등도 눈앞의 정치적 이익에 급급하지 말고 이 놀라운 기백과 기상을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지역문제는 생각하지 않으면 없다'는 가상의 이데올로기로 현실을 재단하면서도 다시 지역적 득표기반이라는 냉엄한 정치 현실을 그 가상 이데올로기의 튼튼한 기초로 삼고 있는 대한민국은 영락없는 매트릭스의 세계다. 가상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하고 정치를 퇴행시키고 있는 이 몽환적인 매트릭스의 역사는 언제나 어떻게 끝날까? 잿빛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날, 그때 다시 천천히 생각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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