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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유씨가 부모님과 잘익은 부사 사과를 앞에두고 함께 자리했다. 어려운 도전만큼이나 무농약사과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 이우성
김신유(36)씨는 참 할 말이 많다. 한번 입을 열면 그칠 줄 모른다. "한 알의 사과가 자연의 생명을 전하는 진실의 편지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무농약사과에 대한 그의 사랑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든 도전하기를 망설이는 무농약 과수재배, 다양한 사회 경험을 바탕으로 자연에 순응하면서 50년 사과농사를 지은 아버지의 한을 품은 그의 무농약 사과 도전기는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영주부석사 가는 길, 풍기 소백산 언저리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을 모시고 고향 땅에 내려와 사과농사를 농약 한 방울 치지 않고 짓는 그에게서 든든한 우리나라 농업의 앞날이 그려진다.

이곳 7000평 과수원은 해발 650m 되는 중산간 지역이라 일교차가 심해 사과농사에 적합하다. 풍기읍과는 기온이 2도 이상 차이가 난다. 소백산 줄기 장군봉, 옥녀봉 옆 계곡으로 흐르는 자연수를 이용해 농사짓고 다른 오염원이 없으니 친환경농사 짓기에는 입지조건이 참 좋다. 더군다나 20년 전 묵었던 땅에 사과나무를 심었고 그동안 농약, 비료도 많이 주지 않았으니 무농약이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 김동진(64)씨는 15살 때부터 농사를 지었다. 예천이 고향인 아버지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고모가 살고 있는 이곳으로 와서 남의 집살이를 했다. 풍기에 처음 사과를 심은 금성현 선생 집에 들어가 몸으로 고스란히 사과 농사를 익혔다. 밭에 나무를 심으니까 모두 미친 사람 취급을 했다. 밤낮으로 관찰하고 공부했다. 18살 때부터는 전지 가위를 들고 남의 나무에 전지를 하러 다녔다. 경북능금조합에서 실시한 전정자격증시험에 35대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이후로 전국을 다니며 사과나무 전정을 숱하게 했다.

과실 과(果)의 파자는 목(木)자에 일(日)자가 위로 올라간 형국

아버지의 전정기술은 스스로 나무의 속성을 터득한 데 있었다. 과실 과(果)의 파자가 목(木)자에 일(日)자가 위로 올라간 형국이라 나무는 햇볕이 잘 드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태양이 돌아가는 것에 따라, 작업이 용이하게 전지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깊이 있게 생각하여 스스로 철학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사과 농사가 잘된 공은 모두 주인의 공이고 전정을 한 사람의 공은 하나도 없었다. 자신 소유의 농장을 갖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래서 찾은 곳이 오래 묵은 땅인 이곳이었다.

이 밭을 구입해 정리하면서 더덕이나 산삼을 수없이 캤다. 6300평 땅을 부부와 어린 아이들이 손으로 일궈 밭으로 만들었다. 새벽 기도 갔다가 이곳으로 올라와 기다렸다가 날이 새면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전지, 전정을 하러 전국으로 다니다 보니 자신의 나무는 방치하다시피 했다. 1년에 1~2번 농약 치고도 나무들은 잘 자랐다. 풀이 나무 전체를 다 덮기도 했다. 그런데 이것이 자연 땅을 살린 결과가 되었다. 사과의 향이 그대로 살아있는 자연의 맛을 닮아갔다. 그러니 아버지는 초창기부터 저농약을 한 셈이었다. 본격적인 저농약은 99년부터. 2003년에 흙살림을 통해 저농약 인증을 받았다.

올해는 무농약 첫해이고 냉해 피해까지 있어서 열매가 많이 달리지 않고 알도 굵지 않지만 이만한 성과는 기대 이상이다. 화학농약의 성과를 잘 아는 사람들은 쉽사리 무농약으로 가지 못한다. 그나마 농약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무농약을 한 것을 이들은 다행으로 생각한다. 무농약의 전제 조건은 화학농약, 특히 살균제, 살충제를 잊어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대신 이곳은 목초액과 석회보르도액을 적절히 잘 사용하고 있다. 아직 굴나방 피해가 심한데 자연환경과 공기가 살아있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다. 이곳은 지렁이, 두더지, 메뚜기, 개구리가 연신 뛰어다니며 옆 산과 별 차이없이 생명체들이 노닐고 있다. 김신유씨는 자신의 사과밭을 구들로 비유한다. 유기질 퇴비가 장작이고 잡초가 굴뚝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알기 쉽게 설명한다.

"90%는 하늘이 농사짓는 것이지요. 사람이 하는 건 10%도 안돼요."

아버지는 희방골작목회 회장을 맡고 있고 풍기읍에서 환경농자재 판매도 겸하고 있다. 석회보르도액으로 농사짓는 사람들의 모임인 '석사모' 영주지역 책임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김신유씨는 3남2여의 셋째로 나서 짧은 시간에 많은 경험을 했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가 건축일을 하면서 7년, 철도공무원으로 2년, 내양선 배 탄 것이 1년, 남성복 정장 유통 일에 2년, 프로그래머로 3년 등 여러 일을 했다. 처음엔 이곳에 형님이 먼저 내려와 아버지와 함께 농사를 지었는데 후계자로 지정받아 열심히 농사지어도 먹고 살기 힘들자 형님은 양돈회사에 취직해 나가고 말았다.

"사람이 하는 건 10%도 안돼요"

힘들게 농사짓던 아버지는 김신유씨가 작년에 내려오자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았다. 또 농사짓는 것만 알지 파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아버지 대신 유난히 친화력이 있는 김신유씨가 유통쪽을 활발히 연결해 나가자 큰 시름을 덜었다. 특히 올해 아들이 다 팔겠다고 하고 무농약에 도전하자고 했을 때도 아버지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허락했다.

1년이 지난 지금 아버지는 큰 수입이 난 것은 아니지만 자존심도 회복하고 자연에 가깝게 더불어 사는 기쁨까지 안겨주어 더할 나위 없이 아들이 고맙기만 하다. 김신유씨 가족은 서울에 있고 자신만 먼저 내려왔다. 집이 마련되면 아내와 딸 둘(3살, 12살) 모두 내려올 생각이다.

수량이 많이 나오지 않아 올해는 3500만 원 정도 조수입이 될 것으로 예측한다. 내년에는 올해의 2~3배는 더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김신유씨는 올해 직거래 비율을 높여 최대한 사과 값을 낮추었다. 슈퍼 가서 사먹는 가격으로 직거래를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금은 직거래 비율이 80% 정도. 홈페이지(www
.무농약.com) 와 자연몰을 통해 직거래를 하고 있고 다른 유통은 올가홀푸드를 통해 한다. 그는 품질과 가격대에 자신이 있으므로 조만간 100% 직거래를 성사시키겠다고 힘주어 말한다.

▲ 50년 사과농사 지은 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린 것같아 신유씨의 무농약 사과 재배 성공은 기쁨이 더욱 크다.
ⓒ 이우성
김신유씨는 처음 농사짓기 위해 내려올 때는 돈을 좀 모을 생각으로 내려왔는데 들어와 환경에 눈을 뜨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보다 다른 인생을 살 것 같아 가슴이 벅차오른다고 말한다. 농촌에 살면서 마음이 살찌고 얻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유기농사를 통해 사람 사는 모습, 땅이 주는 교훈을 알아나가고 제대로 농사짓는 마음가짐을 갖출 수 있는 것을 가장 큰 소득으로 친다.

"상업적 개념보다는 자연과 공생하면서 땅이 가르쳐주는 것을 겸허하게 수용해 자연이 주는 느낌을 잘 가져갈 수만 있다면 더 큰 보람은 없을 것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농사를 통해 돈을 좀 모으게 되면 사회 환원 쪽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지금 어렴풋이 생각하는 것은 석유와 전기에 의존하지 않고 대체에너지를 개발, 연구하는 쪽으로 사업을 하고 싶단다.

사과는 휴면기 관리를 잘 해야 한다. 전정을 잘 하는 것이 관리의 기본이다. 품종에 따라 나무 습성을 알고 전정을 해야 한다. 부사 같은 경우는 하기 전정을 하는데 아오리는 하기전정을 하면 탈색된다. 전정의 기본은 빛이 잘 들도록 하는 것. 나무 뼈대인 주간을 주춧돌처럼 생각하고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 항상 예비지를 남겼다가 주간을 교체해 주어야 나무의 수령이 오래 간다. 이곳은 3~4가지 밖에 남겨 두지 않았다.

무농약 사과하면 영주를 떠올릴 수 있도록

석회보르드액은 수산화칼슘과 유산동이 재료이다. 유산동은 병원균을 살균하며 균의 증식을 억제한다. 수산화칼슘은 고순도의 생석회를 물에 희석하여 만들며 나무를 건강하게 자라게 한다. 보르도액은 근접 살포를 하면 안 된다. 제조방법은 석사모 카페에 다 공개되어 있다고 한다. 진딧물, 응애는 순 트기 전에 식물성기계유제(유채기름)로 방제를 한다. 꽃 피고 하지 전까지 목초액을 2~3번 정도 친다. 정제한 석회유황합제를 그 사이에 두 번 정도 친다. 그러면 자연 꽃이 떨어져 자연적과가 된다.

하지 전후 방제가 매우 중요하다. 하지 즈음에는 살균이 필요한 시기. 하지 전 3일이나 하지 후 3일은 보르도액을 친다. 되도록이면 석회유황합제는 하지 전에 마친다. 저온성균은 석회유황합제로, 고온성 균은 석회보르도액으로 잡는다. 석회유황합제는 탄저, 부패, 갈반에도 효과적이다.

식물성 충에는 목초액과 담배 우린물을 살포해 해충기피제로 쓴다. 올해는 탄저방제를 위해 이비에스를 한번 정도 쳤다. 목초액은 잎과 나무의 상태를 살펴가면서 열흘 간격으로 쳐준다. 정제가 잘된 목초액을 사용해야지 고온에서 받은 목초액은 독소가 나온다. 목초액을 한번 치면 작은 벌레들은 다 떨어진다. 충은 방제시기를 잘 맞춰야지 때를 놓치면 방제가 힘들다.

한약재와 생선, 게껍질로 각각 액비를 담아 관주해주기도 한다. 아카시아꽃, 쑥, 미나리, 감초, 당귀, 계피로도 액비를 담아 관주할 때 튼튼칼, 활인산, 뿌리살림을 함께 넣어주기도 한다. 당밀액비와 사과식초, 바닷물은 따로따로 나무에 친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준다. 옆으로 흐르는 계곡물에 호스를 연결해 큰 통에 받아서 관주호스를 연결했고 액비통을 중간에 연결해 자동으로 흘러들어가게 만들었다. 액비는 관주 위주로 하는 것이 좋다. 잎에 살포하면 충이 모두 잎으로 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전체 밭의 밀도를 같게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이제 이들 부자는 앞으로 무농약 사과하면 영주를 떠올릴 수 있을 정도까지를 농사짓는 것을 목표로 동지들을 모으고 있다. 무농약에 그치지 않고 유기농까지 도전하고 싶단다. 전국 사과 생산량의 13%를 담당하고 있는 영주. 여기서 양적인 성장에 버금가게 환경농사에도 일익을 담당하고 싶은 것이 이들 부자의 한 목소리다. 소외된 계층이 갔던 길, 이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즐거움과 환희를 맛볼 준비를 이들은 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오래된 나무를 키우고 싶은 이들, 이들 농사 역사와 함께 하는 나무를 곁에 두고 싶은 두 부자의 소망은 나무가 자라 가지를 뻗어 쉴 그늘을 드리우듯 넓고 고르게 퍼져 현실이 될 날이 머지않음을 본다. 두 부자의 웃음이 장군봉 꼭대기까지 전해져 든든한 이 땅의 지킴이 역할을 다할 것으로 믿는다.

덧붙이는 글 |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나올 수 있는 무농약 과수재배에 성공한 농부 부자, 이제 힘들고 어려웠던 과정만큼이나 수확의 기쁨을 제대로 누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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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한그루 심는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얼마나 큰 축복일까요? 세월이 지날수록 자신의 품을 넓혀 넓게 드리워진 그늘로 세상을 안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낌없이 자신을 다 드러내 보여주는 나무의 철학을 닮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또 세상은 얼마나 따뜻해 질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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