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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겉그림
책 겉그림 ⓒ yes24
어린 시절은 가난해서 먹을 것도 못 먹고 컸다. 엄마 뱃속에서도 그랬고 세상에 나왔을 때도 그랬다. 당시 쌀밥은 명절 같은 날에만 먹을 수 있었고 우유 같은 것은 꿈도 못 꾸었다. 배는 비쩍 들어갔고 몸무게는 보통 치보다 훨씬 밑돌았다. 그래도 소만큼은 배불리 먹여야 했다. 농사철에 논밭을 갈아야 했고 달구지도 힘차게 끌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갑자기 세상이 바뀌었고 너도나도 살 만하게 되었다. 쌀밥도 실컷 먹을 수 있었고 우유도 사 먹을 여유가 생겼다. 처음 우유를 마실 때만 해도 속이 받지 않아 고생했는데 차츰 익숙해졌다. 서서히 살도 불었고 몸무게도 부쩍 늘었다. 소가 끌던 달구지 시절도 사라지고 경운기와 트랙터가 세상을 갈아엎었다. 과학기술이 그 모든 공헌을 한 셈이었다.

세상이 갑작스레 변하면 없던 걱정거리도 생겨나는 법일까? 못 먹던 시절에 비해 먹을 게 넘쳐나는 요즘은 소화불량 때문에 걱정하고 있다. 최근에는 또 다이어트 하는 것 때문에 고심하고 있다. 트랙터와 농약기술과 유전자변형 식물로 한때 농업이 큰 혜택을 누렸는데 지금은 다른 걱정들을 하는 처지다. 땅을 어떻게 살려내야 할지 그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과학기술은 그렇듯 인간과 세상에 이로움을 주는 동시에 해로움도 낳고 있다. 물론 그것 때문에 그 발전이 주춤거리거나 뒤로 물러선 적은 없다. 다만 그 발전에는 행복과 불행이, 빛과 그림자가 겹칠 뿐이다. 최근 그것을 지적하면서 더욱 폭넓은 성찰을 이끌고 있는 책이 나왔다. 이은희 님이 쓴 <하리하라의 과학블로그>(살림·2005)가 그것이다.

"항생제의 발달은 오랫동안 괴롭혀왔던 세균성 질환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했고, 인류의 삶의 질을 높여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이 유능한 칼을 너무 함부로 휘두른 나머지 스스로의 몸을 베는 우를 범하고야 말았습니다. 과학은 이처럼 잘 쓰는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유용한 도구가 되어주지만, 잘못 사용하면 오히려 스스로를 베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습니다."(29쪽)


이는 페니실린을 두고 한 말이다. 페니실린을 처음 개발할 때만 해도 그것은 기적이 되는 치료제로 알려졌다. 2차 세계대전만 해도 그것 때문에 수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아프리카에서는 그때 당시 사용했던 페니실린들이 치료제로 쓰일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선진국에서는 점차 그것이 쓸모가 없다고 한다. 선진국에서 성장촉진과 질병예방을 위해 사용했던 음식물들과 의약품들 속에 그만큼의 내성이 농축돼 있기 때문이고 한다. 그러니 2단계를 넘어 3단계와 4단계 같이 레벨이 강한 항생제를 쓰지 않으면 질병이 듣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인간의 지나친 항생제 맹신에 미생물들이 서서히 반격을 가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는 단순히 식물에 대한 조작이 아니라, 물고기와 육류에 대해서도 유전자 조작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모든 물질들이 유전자 조작의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지요. 외계인의 식탁에 오를 것 같은 괴상한 작물이 아니라, 우리가 먹는 쌀과 고기와 김치가 유전자가 조작된 채 오를 수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과연 여러분들은 어떤 선택을 하실 건가요?"(49쪽)


이는 유전자 재조합 기술 발전으로 인한 유전자 조작식물을 만들어 내는 일을 두고 하는 이야기이다. 옛날에는 단지 품종개발에만 열을 올렸을 뿐 그 같은 일은 꿈도 못 꾼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왔고, 세계 곳곳에서는 유전자 조작식물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물론 웰빙 바람 탓에 유기농 식품이 유행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그것은 다시금 고개를 내밀고 덤빌 것이다.

그것을 둘러싸고 찬반이 팽팽한 것도 사실이다. 한쪽에서는 원래 없던 특성이나 성분을 갖게 하기 때문에, 그리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지구 인구를 먹여 살리는 방법으로 그밖에 달리 대안이 없기 때문에 찬성한다. 다른 쪽에서는 유전자 조작이 인체나 환경에 해롭기 때문에, 그리고 외부에서 들어 온 DNA가 새로운 환경 속에 적응하지 못하면 치명적인 해를 가할 수 있기 때문에 반대한다.

그렇게 찬반이 팽팽해도 결국은 개발 쪽에 힘을 싣게 된다. 과학기술이 부작용도 없지 않지만 새로운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도전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줄기세포를 이용하면 복제 인간이나 신종 바이러스 생산공장 같은 쪽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비난을 받지만, 불치병 치료라는 쪽에 더 큰 희망을 안고 힘차게 개발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원자력 발전소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만들어 가동하면 자칫 핵 폭탄을 만들 가능성과 핵 붕괴 시 방사능 누출로 인한 극심한 재앙을 가져온다는 비판도 받지만, 그것만한 에너지원도 없고 X-레이나 방사선 같은 의료분야에도 탁월하기 때문에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은희님은 과학기술에 맹신한 채 고속 질주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것을 비판만 한 채 연구 자체를 가로막는 것도 문제임을 지적한다. 그 때문에 항생제 논란에서부터 석유에너지의 개발에 이르기까지 10가지 주제를 놓고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그녀는 과학기술에 매진하고 있는 과학자들을 향해 열린 자세를 갖기를 바라며, 모든 사람들이 장독지기가 되어 합리적이며 효율적인 잣대를 지니고 있기를 바라고 있다.

"그 결과가 자칫 잘못 쓰일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연구 자체를 막아서는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합니다. 우리는 장독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과학자들이 장을 담가 신경 써서 돌보는지 아닌지를 감시해 때로는 칭찬도 하고, 때로는 질타고 하며, 뚜껑도 씌우고 햇빛도 쬐어주어 맛있는 장이 되도록 도와 주는 것이죠. 과학의 양면성이란 늘 그렇듯 과학 자체의 잘못이 아니라, 그것을 쓰는 사람의 손에 달린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173쪽)

하리하라의 과학블로그 - 현대과학의 양면성, 그 뜨거운 10가지 이슈

이은희 지음, 류기정 그림, 살림(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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