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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한 전나무 숲 속에 묘적사가 숨어있다. 사람들이 자꾸 고기를 구워먹어 어느날부터 나무와 나무 사이에 노끈을 매어 놓았다.
울창한 전나무 숲 속에 묘적사가 숨어있다. 사람들이 자꾸 고기를 구워먹어 어느날부터 나무와 나무 사이에 노끈을 매어 놓았다. ⓒ 이승열

절 마당 가장자리를 지나온 물길이 숲을 다시 지난다.
절 마당 가장자리를 지나온 물길이 숲을 다시 지난다. ⓒ 이승열
강산도 변한다는 십 년 동안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한결같았다. 십 년 동안 맨땅에 새겨진 선명한 싸리비질 자국을 보다보니, 어느 날을 문득 어쩌면 저것은 싸리비질 자국이 아니라 원래부터 흙에 새겨진 무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처음부터 묘적사 마당에는 꽃잎과 낙엽이 존재하지 않았다. 묘적사에 들어서는 길, 연못가, 산령각에 오르는 계단, 해우소 가는 길, 어디에도 싸리비질 자국이 없는 곳은 없었다. 묘적사를 찾은 지 오 년쯤 지났을 때 난 그곳 주지스님이 결벽증이 심하거나, 성격이 약간 이상한 사람일 거라고 거의 확신을 하게 되었다. 아무리 수도자여도 혼자 오랫동안 살다보니 성격이 왜곡됐을 거란 상상도 했었다.

솜씨 좋은 백정이 온 성의를 다해 발라도 채 한 근 살점을 떼어낼 수 없는, 김성동의 '만다라'에 나오는 비쩍 마른 스님을 상상하기도 했다. 아니면 세상사람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약간의 결핍 내지는 자폐 증세가 있어 마당에 무엇이 떨어진 꼴을 보지 못한다든지, 싸리비질 자국이 없으면 불안해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성격의 소유자라고 상상했다.

그리고 다시 5년쯤 지났을 때는 어쩌면 매일 이렇게 싸리비질 자국을 내면서 절 마당을 쓸 듯이 스님 자신을 정화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름처럼 절 전체를 감싸고 있는 묘하고 적적한 기운이 이제 스님의 기운이 되어 주변 환경을 모두 정화시키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울창한 전나무숲이 절 전체를 감싸고 사람들은 돗자리를 가지고 와서 숲 한가운데 펴 놓고 담소를 즐기고 누워서 하늘을 보곤 했었다. 묘적사 입구 계곡이 붐빌수록 묘적사의 한적함은 언제나 더 돋보였다.

툭툭 베어 낸 나무를 천연덕스럽게 기둥이라 우기며 그 위에 기와를 얹은 곳 묘적사
툭툭 베어 낸 나무를 천연덕스럽게 기둥이라 우기며 그 위에 기와를 얹은 곳 묘적사 ⓒ 이승열

흉내만 낸 사립문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묘적사 요사채 뒷모습.
흉내만 낸 사립문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묘적사 요사채 뒷모습. ⓒ 이승열
한 해에 다섯 번 이상, 십 년 동안 최소한 쉰 번쯤 묘적사에 간 동안 방문객의 수는 언제나 스무 명 이상을 넘지 않았다. 스님이나 공양주 보살의 모습도 본 적이 없었다. 울퉁불퉁한 요사채 기둥에 기대 앉아 하릴없이 풍경 속으로 스며들다 보면 방안에서는 이따금 전화벨이 혼자서 울리다 끊어지곤 했다.

가끔 공양간에서 된장찌개 끓는 냄새가 나기도 했지만 수선스런 사람들의 움직임은 한 번도 목격한 적이 없었다. 어느 날 밤이 이슥하도록 마루에 앉아 어둠이 오는 소리를 듣고 있다가 두런두런 요사채 안에서 들리는 말소리를 듣고 사람이 살긴 사는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십 년 동안 쌓여 있는 절 뒷편의 장작은 십 년 동안 그 위치에 그 높이만큼 변함없이 쌓여 있어, 그냥 폼으로 쌓아놓는 것인가 하고 생각한 적도 있다. 어느 겨울날 마하선실 아궁이 속에 장작 타는 모습을 본 적이 있으니 그 또한 아니었다. 불쏘시개로 쓰고 나면 없어지고 말 걸 뭐하나 저렇게 힘들게 정돈해 놓았을까 미욱한 중생으로서는 상상밖의 일이었다.

산령각 계단에서 내려다 본 연못가 풍경. 봄에는 벚꽃잎이 가득했었다.
산령각 계단에서 내려다 본 연못가 풍경. 봄에는 벚꽃잎이 가득했었다. ⓒ 이승열

봄, 낙화한 벚꽃잎이 가득했던 연못에 가을빛이 가득하다. 정자 처마에 곶감이 익어가고 있었다.
봄, 낙화한 벚꽃잎이 가득했던 연못에 가을빛이 가득하다. 정자 처마에 곶감이 익어가고 있었다. ⓒ 이승열
지난 주 누군가가 <오마이뉴스>에 썼던 기사를 보고 쪽지를 보내왔다. 묘적사 초입에 살고 있는데, 묘적사의 단풍과 연못이 무척 예쁘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먹고 싶은 것은 참아도,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면 절대 못 참는 역마살이 낀 팔자인지라 시월의 마지막 토요일 묘적사를 찾았다.

가을은 깊은 채로 숲가장 자리까지 내려와 있었다. 여전히 싸리비질 자국이 선명히 새겨져 있었고 숲은 낙엽으로 융단을 깔아 놓은 듯했다. 묘적사에서는 무엇이고 전염이 되나 보다. 한 여행객이 낙엽을 건져 내며 숲 속 물길을 터주고 있다. 스님의 싸리비질 자국이 그에게도 이미 새겨져 버렸나보다.

절 마당 가득 떨어진 알 굵은 은행을 꽃자주색 스웨터를 입은 공양주 보살이 열심히 바구니에 주워담고 있다. 유일하게 옛 모습을 간직한 산령각 주위를 형형색색의 가을빛이 감싸고 있다. 오래 된 보리수나무 아래 돌 위에, 가을햇살에 가득하다.

싸리비질 자국 선명한 절마당에 앉아 보살님이 바구니에 가을을 담고 있다.
싸리비질 자국 선명한 절마당에 앉아 보살님이 바구니에 가을을 담고 있다. ⓒ 이승열

십년만의 결실.2005년 10월 마지막 토요일 그 현장을 잡다.
십년만의 결실.2005년 10월 마지막 토요일 그 현장을 잡다. ⓒ 이승열
스님이 절 마당 가장자리 개울가에서 싸리비질을 하고 있었다. 십년 동안의 상상과 달리 스님은 동글동글한 성격 좋은 얼굴에 안경을 끼고 모자를 쓰고 있었다. 스님의 손목에는 아주 옛날 우리 아버지가 차고 있던 오래된 시계가 가을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방금 전 떨어진 은행잎을 쓸고, 절 입구를 쓸고, 연못가를 쓸고, 감로수가 나오는 우물가도 꼼꼼히 쓸었다. '싸그락, 싸그락' 싸리비질 소리가 꿈결처럼 들린다.

까실까실하고 비쩍 마른 선병질적 외모를 가졌을 것이란 내 추측이 여지없이 빗나가고 말았다. 내 오래된 추측이 빗나간 기분 좋은 가을 오후, 묘적사에는 가을이 깊어 가고 있었다. 스님의 등 뒤로 오래된 부부가 다정히 손을 잡고 스님이 방금 전 쓸어 놓은 싸리비질 자국 선명한 길을 걷고 있다.

산령각 가는 길.
산령각 가는 길. ⓒ 이승열

석굴암도 있고, 산령각에 신령님도 있고, 돌탑도 있다.
석굴암도 있고, 산령각에 신령님도 있고, 돌탑도 있다. ⓒ 이승열
삶을 견디어 내는 일이 녹녹치 않음을 경험할 때,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세상을 향한 절망이 나를 엄습할 때, 벗어나려고 발버둥칠수록 그 절망이 더욱 나를 옥죄일 때 나는 묘적사에 간다. 그리고 십 년 동안 한결같이 새겨진 절 마당의 싸리비질 자국을 본다.

그 위치에 그만한 높이로 쌓여 있는 장작들을 만져보기도 한다. 툭툭 나무를 분질러 기둥을 세우고 돌과 흙으로 지붕을 얹은 묘적사를 가슴에 담고 속세로 돌아온다. 그러면 생이 조금은 견딜만하고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는 위로가 스멀스멀 내 몸을 감싼다.

덧붙이는 글 | - 남양주시 와부읍에 있습니다. 

- 팔당대교-덕소방향으로 좌회전-덕소 굴다리 아래서 우회전-마석 가는 고개 바로 전 다리에서 좌회전-묘적사 계곡-묘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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