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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자 안에 담아온 낙엽들
ⓒ 안준철
달력이 달랑 두 장밖에 남지 않은 11월의 첫 날, 저는 수업이 없는 시간을 이용하여 잠깐 학교 뒷산에 다녀왔습니다. 동산을 오르는 제 손에는 조그마한 상자가 하나 들려 있었는데 그곳에 낙엽을 가득 담아가지고 내려왔습니다.

아이들과 가을 수업을 하기 위해 그런 수고를 한 것인데, 예년 같으면 아이들더러 동산에 가서 직접 낙엽을 주워오라고 했을 텐데 올해는 제가 대신 주워온 것입니다.

어느 핸가 동산에 가서 낙엽을 주워오라고 했더니 땅에 떨어진 낙엽을 줍지 않고 나무에 달린 다섯 손가락 단풍잎을 가지째 꺾어온 아이들이 있어서 올해도 그럴까 염려가 되어 그렇게 한 것이지요.

아니, 그보다는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들이 밖에 나가 낙엽을 주워오라는 말에 행여 싫어하는 눈치라도 보이면 어쩌나 싶어 미리부터 조심을 떨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답답한 교실에 앉아 있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밖에 나가 바람을 쐬는 것도 썩 내켜 하지 않는 것이 요즘 아이들의 특성이기도 합니다. 하긴, 휴대폰에 달린 작은 창 하나로 세상과 소통하는 아이들이니 지금도 아날로그 시대를 살고 있는 아버지뻘 되는 늙은 선생의 고리타분한 말들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겠지요.

그래도 그렇게 속단할 일만은 아닙니다. 낙엽을 한두 장 붙이고 난 여백을 깨알 같은 글씨로 메워가는 아이들도 있으니 말입니다. 어쨌거나, 오늘 가을 수업을 시작하는 제 목소리를 사뭇 떨리고 있었습니다.

"동산에서 예쁜 낙엽을 주우면서 좀 덜 예쁜 낙엽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또 이런 생각을 했어요. 예쁘고 안 예쁘고 그 기준이 무얼까? 여기 이 낙엽을 보세요.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잖아요. 그럼 이것은 안 예쁜 낙엽인가요? 이 구멍을 통해 이렇게 여러분을 바라볼 수도 있고 세상을 볼 수도 있는데요.

그리고 이 구멍은 벌레들이 먹은 흔적일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이 이파리는 벌레들에게 좋은 먹이가 되어준 거잖아요. 그럼 참 마음이 예쁜 낙엽 아닌가요? 그러니까 예쁜 낙엽을 고르려하지 말고 그냥 한 장이나 두 장씩 손에 잡히는 대로 정을 붙여보세요."

이런 말을 잘 했다 싶게 상자에서 낙엽을 골라내는 아이들의 손길은 그리 까다롭지가 않았습니다. 물론 기어이 상자를 뒤적여 예쁜 낙엽을 골라가는 아이도 있긴 했지만 말입니다. 낙엽이 다 돌아가자 이번에는 하얀 종이를 한 장씩 나누어주며 이렇게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오늘 가을 수업의 주제는 '나에게 쓰는 가을 편지'입니다. 나에게 편지를 쓰라니 좀 이상한 생각이 들기도 할 거에요. 하지만 이 세상에 가장 사랑스런 존재가 바로 나 자신 아닐까요? 고독을 즐긴다는 말이 있지요. 그 말은 곧 내 자신과 사랑을 나눈다는 말과 같은 뜻이에요. 친구도 소중하지만 그 친구는 언제든지 나를 떠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내 안의 나는 언제나 나와 함께 있지요. 그리고 나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어요. 이렇게 소중한데도 그동안 너무 소홀히 해온 나 자신에게 사과하는 뜻에서라도 가을 편지를 한 번 써 보세요."

요즘 들어 이런 말에 귀를 쫑긋하고 듣는 아이들이 많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조금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다 보면 하나 둘 팔을 턱에 괴고 사색에 잠겨 있는 아이들이 눈에 띄기 마련입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아이들에 대하여 너무 쉽게 절망하는 것은 교사로서 절대금물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교사로서 자격미달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완전하다면 우리 교사가 존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요.

다음은 그런 미완성의 존재인 한 아이가 쓴 글입니다. 한 시간 동안 고작 다섯 줄. 하지만 저는 실망하기는커녕, 내일 학교에서 만나면 이 녀석을 한 번 꼭 안아주고 싶습니다.

'내가 나한테 할 말이 없다니…
너무 아쉽다…
난 왜 이럴까?
왜 아무 말이나 생각이 안 나지?
정말 화가 난다….'


올해 저희반 아이들과 함께 지내온 시간들을 돌아보니 행복한 시간도 많았지만 다시는 그 자리에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징그러운 고통의 시간들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왜 아이들은 갈수록 자기 생각만 하는지, 왜 그렇게 이기적인 아이들이 되어 가는지, 왜 교사의 인격적인 지도를 낯설어 하는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고 책상 앞에 앉아 있었던 시간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그것도 제 중심적인 생각입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할 말이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꼬박 책상에 앉아 교사나 부모로부터 일방적으로 명령을 받아야하는 처지다보니 어쩔 수 없이 방어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으로 변모되어 가고 있는 지도 모를 일입니다. 자기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을 하는 억지로 하는 사람처럼 말이지요.

우리 어른들은 자기 생각이 없는 아이들이라고 요즘 아이들을 나무라면서도 자기 생각이 있는 아이들로 키우기 위한 구체적인 고민이나 노력을 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저라고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아이들의 생각을 키워주기는커녕 오히려 자유로운 상상력을 억압하는 위치에 있지 않았나 하는 반성마저 듭니다. 요 며칠 전에 우연한 기회에 불쑥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그때의 감상을 어쭙잖은 시로 한 번 적어보았습니다.

가을 햇살이 하도 좋아
선생 몇이서
돗자리 들고 언덕에 오르다.

무덤가 무성한 풀밭에 앉아
시간 반쯤 잘 놀다가
돗자리를 걷어내고 보니

다리미로 눌러 다린 듯
엉덩이들 깔고 앉은 자리만
고스란히 풀밭이 납작하다.

선생 몇이서
십수 년을 깔고 앉은 자리는
얼마나 납작해졌을까?

풀 한 포기 돋아 있을까?

-시, <선생 몇이서> 모두


워낙 재능이 부족하다보니 그때의 충격적인 느낌을 제대로 표현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시를 다시 읽다보니 조금 전에 소개한 제자가 쓴 다섯 줄의 글귀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는 듯도 합니다. 그것은 바로 '나'에 대한 깨달음이지요.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한 것은 다름 아닌 '무지'에 대한 깨달음이라지요. 자신의 무지를 아는 그 순간이 참된 인식의 출발점이기도 하니까요.

▲ 가을 수업
ⓒ 안준철
교사에게 절망은 금물이라고 했으니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잘못인 줄 알지만, 저도 가끔은 우리 교육에 대해서 절망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무지에 대한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는 우리 교육의 까마득한 현실 때문이지요.

입시교육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이 인정되어야 온 국민이 머리를 맛 대고 참된 교육의 틀을 만들어 갈 터인데 그것이 안 되니 문제이지요. 그러고 보면 사색과는 거리가 먼 요즘 아이들의 원뿌리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아이들이 쓴 이런 저런 글귀에서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물론 분위기에 휩쓸려 토로한 감상적인 말일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스쳐가듯 짧은 시간이지만 자신과의 진지한 만남의 순간을 가진 아이들은 언젠가는 흐트러진 자신을 다시 세울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싶습니다.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 나는 내가 누군지 알고 싶다. 내가 누군지 빨리 알았으면. 그럼 그땐 어떨까? 빨리 그날이 왔으면….'

'나는 지금 이곳에 있다. 그럼 난 이곳에 와서 무엇을 했지? 무엇을 했을까? 그렇다. 난 이곳에 와서 보람 있고, 하고 싶은 것 그런 게 없이 2년이란 시간이 지나갔다.'

'이건 내 손이다. 지금은 이렇게 상처 하나 없지만 한 10년 후쯤에는 지금의 손이 어떻게 변해 있을까? 굳은살이 박일까? 아님 상처투성이거나 그대로 일까? 나는 생각한다. 이 손으로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그건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오늘부터 생각이 날 것이다.'

'그동안 수업시간에 수업을 열심히 듣지 않아서 선생님께 죄송합니다. 항상 자고 눈 떠 있으면 핸드폰이나 만지고… 오늘로서 그런 저의 행동은 졸업하겠습니다. 그동안 제가 어떻게 했든 모든 것을 지우고 앞으로의 저의 행동을 눈여겨 봐 주십시오.'

'벌써 너에게 18번째 가을이 찾아오는구나. 가을이라서 그런지 좀 외롭지? 그래도 난 계절 중에 가을을 좋아해. 이별, 그리움.. 이렇게 나에게 찾아왔던 감정들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절이기 때문이야. 너의 가을은 아픔이 없었으면 좋겠다.'

'시간은 지날수록 아름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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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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