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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free lancer)'라고 하면 왠지 프로페셔널하고 세련된 이미지, 거기에다 그럴싸한 자유분방함이 연상된다.

사실 '프리랜서'라는 말은 다름 아닌 중세 시대 유럽의 '용병단'에서 유래했다. 어떤 영주에게도 소속되지 않은 자유로운(free) 창기병(槍騎兵, lance)이라는 뜻으로 중세의 프리랜서들은 고귀한 대의나 영주의 됨됨이와는 상관없이 오로지 '돈'을 위해 몸을 팔았다.

선조들에 비하면 현대의 용병단들은 꽤 세련된 이미지로 치장된 셈이다. 잘나가는 월급쟁이도 하루아침에 잘리는 무한경쟁 시대, 무국적 계약노동자인 프리랜서들의 밥벌이는 과연 얼마나 고상하고 세련될까.

6년 경력 벗어던지고 프리랜서 선언, 하지만...

▲ "얼굴 안 나오게 찍어 주세요." 찍히는 일은 늘 어색하다는 프리랜서 사진가 김현희씨.
ⓒ 심은식
6년 동안 일하던 스튜디오의 '월급쟁이' 사진가 생활을 접고 프리랜서 길에 접어든 지 이제 3년이 된 김현희(28)씨.

"뭔가 정체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좀 더 발전하고 싶었고 내가 찍고 싶은 분야의 사진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싶었어요. 한 곳에 소속돼 있으면 안정적이긴 하지만 원치 않는 일도 해야 하고 자유롭지도 않잖아요. 할 일이 없어도 출근해서 멍청하게 시간 보내는 일은 정말 괴롭죠."

현희씨가 스물여섯 나이에 프리랜서를 선언했을 때 신기하게도 뜯어 말리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다들 "네 이름 걸고 한 번 멋지게 찍어 보라"며 '적극 찬성' 기류를 만들면서 현희씨를 북돋아 줬다. 하지만 그 '선언 이후'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일단 혼자잖아요. 사진 찍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는데 막상 독립하고 보니 온갖 잡다한 일이 정말 많더라구요. 소득 신고도 해야 하고, 영수증 처리도 해야 하고…. 거기에 스튜디오 운영비도 충당해야죠, 장비도 갖춰야죠. 말 그대로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다 알아서 해야 하는 게 힘들었어요. 통장에 들어오는 돈은 독립하기 전보다 많았지만 도로 나가는 돈이 거의 다였어요. 아~ 생각해보니 정말 힘들게 살았네."

그래도 현희씨는 그나마 기반을 잡은 축에 속한다. 얼마 전에는 모 잡지사와 전속 계약을 맺기도 했다. 하지만 초기 자본이 넉넉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기반을 탄탄하게 다지려면 좀 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게 현희씨 생각이다.

영화판 프리랜서, 너무 멋지다고?

작년 말 영국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진경희(31)씨. 영화계에서 미술감독으로 일하는 그녀는 올 3월 서울 성수동에 '빨간 작업실'이라는 이름의 작업실을 냈다. 대학에서 영화 미술 강의도 하고 내년 초에 들어갈 장편영화와 지금 진행하고 있는 단편영화 일로 분주하지만 그녀 역시 어느 한 곳에 적을 두지 않은 프리랜서다.

국내에서 의상을 전공한 경희씨는 영국으로 건너가 대학에서는 건축을, 다시 석사과정에서 영화미술을 공부했다. 가방 끈이 꽤 긴데 공부를 마치고 영화판에서 몸으로 부딪혀야 하는 미술감독 일을, 그것도 프리랜서로 하겠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뭐라고 했을까?

▲ 작업실에서 세트를 손보는 데 필요한 물품을 챙기는 진경희씨.
ⓒ 심은식
"그동안 공부한 게 아깝지 않냐는 사람도 더러 있었지만 다들 응원해 줬어요. 저 스스로도 건축에서 자기 이름으로 성과를 보려면 오래 걸린다는 걸 잘 알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영화는 바로 바로 자기 이름으로 세상과 만나고 또 기록으로 남죠. 그런 점도 마음에 들었어요."

자기 일에 대한 경희씨의 자부심과 열정은 대단했다.

"미술 감독을 흔히 소품 준비 등 세트를 꾸미는 정도로 알지만 그렇지 않아요. 영화 미술이 단순히 인테리어는 아니에요. 일단 영화의 화면은 2차원이죠. 거기에 공간감을 불어 넣어 3차원을 재현하죠. 그리고 캐릭터를 분석해서 거기에 어울리는 배경과 세계를 창조해 내야 하는 거예요."

프리랜서들의 안부 인사 "밥은 먹고 다니냐~"

▲ 스튜디오 오토바이 위에서 포즈를 취한 김현희씨. "이거 비싸게 주고 산 소품인데 이럴 때라도 써 먹어야죠."
ⓒ 심은식
프리랜서 초기, 현희씨는 같은 질문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야 했다.

"처음 프리랜서 일을 시작했을 때 안부 인사가 '요즘 밥은 먹고 다니냐'였어요. 누가 돈 하나 없이 프리랜서 사진가가 된다고 하면 전 말리고 싶어요. 사진은 장비가 필요하고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돈 벌어서 장비 갖추고 밥벌이 한다는 게 참 힘들어요. 내가 겪어 보니까 정말 그래요."

월급쟁이들이 그렇듯이 현희씨도 월급봉투 받을 줄만 알았지 돈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 사진만 잘 찍으면 모든 게 잘 될 거라는 생각이 정말 순진했음을 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예전에는 사진만 잘 찍으면 됐는데 독립하니까 영업도 해야 하고 경리 일도 해야 했어요. 특히 돈 달라는 말을 해 본 적이 없어서 보수가 들어오지 않아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쑥스럽기도 하고…."

초기에는 돈을 떼이거나 몇 개월이 지난 후에야 겨우 받아내기도 했다. 그런 일을 당해도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이라서, 다음 작업이 맞물려 있어서 등등의 '같은 바닥 일을 한다'는 이유로 끙끙 앓기만 할 때도 많았다.

"요즘에는 당당히 제 값을 불러요. 그게 내 능력의 가치니까. 물론 연락이 두절되는 사람도 생기더라구요. 후후."

반면 새내기 프리랜서인 진경희씨의 재정 상황은 좋지 않다. 작년 말 귀국 후 영화 일로 벌어들인 수입은 150만 원에 불과하다. 대학에서 하는 강의료로 작업실 유지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

▲ 양수리에서 현재 제작 중인 영화 세트 감리중인 진경희씨. 그녀는 "감리라는 말이 거창하지만 사실은 아저씨들에게 잘 지어달라고 부탁하는 거예요"라며 웃었다.
ⓒ 심은식
"작년 귀국해서 장진 감독의 <소나기는 그쳤나요>라는 영화하고 받은 150만 원이 전부예요. 나머지는 진행비만 받았고 보수로 받은 건 0원이죠."

영화나 제작사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상업영화에는 당연히 보수가 있다. 하지만 몇 달씩 얘기가 오가고 준비하다가도 일순간 진행이 중단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일을 한다고 해서 모두 돈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반면 단편영화는 워낙 예산이 빠듯해 보수를 받기는커녕 욕심을 내다보면 개인 주머니를 터는 경우도 생긴다. 적은 진행비로 어떻게 작업을 하냐고 묻자 그녀는 주로 수집(?)을 한다고 했다.

"일단 아파트에서 재활용품 내놓는 날마다 눈에 불을 켜고 모아요. 장롱, 냉장고, 세탁기 등등. 이불이랑 TV는 다른 스태프 집에서 가져오기도 하구요, 학교에서 세면대를 떼다 잠시 빌려 쓰기도 해요. 그렇게 해도 결과물은 오히려 더 좋아요. 최근 이채윤이라는 감독의 <참 잘했어요>라는 단편을 했는데 사람들이 다 놀랐어요. 집 한 채를 지은 셈이었는데 사람들이 세트인지 모를 정도로 잘 만들어졌죠. 그걸 겨우 72만원으로 지었거든요."

수요 불안정한 밥줄... 휴가도 달콤하지 않아

▲ 김현희씨가 작업했던 사진들. 낯익은 연예인들이 보인다.
ⓒ 심은식
불규칙한 수입도 문제지만 일정하지 않은 수요도 프리랜서들을 괴롭히는 요소다. 프리랜서는 일이 없으면 말 그대로 한없이 프리(?)하다. 그러다가 한꺼번에 일이 몰리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일과의 한판 전쟁을 벌여야 한다(물론 두 가지 일이 겹치는 경우에는 눈물을 머금고 하나를 선택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선택한 작업이 결국에는 무산되는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일 많으면 좋죠.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니까요. 다만 예전에는 필름이나 데이터만 넘기면 끝이었는데 이제는 낮에 촬영하고 밤에 또 쉬지 못하고 후반 작업도 해야 하니까 좀 피곤하죠."

워낙 수요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모처럼 휴식을 맞아도 달콤함을 즐길 수 없다.

"일이 없으면 모처럼 한가하게 쉬어도 좋겠다 싶으면서도 어딘지 마음이 불안해요. 지난 번 작업이 혹시 클라이언트 마음에 들지 않았나, 이러다 일이 끊기는 건 아닌가, 뭐 이런 생각 때문에요. 사실 좀 과장된 걱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런 조급증이 들 때가 있어요. 그래서 더 노력하고 치열해지기도 하죠." (김현희)

▲ 작업실 진경희씨의 책상 앞에 붙어 있는 메모들. 영화에 대한 열정과 견해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 심은식
진경희씨가 발 담고 있는 영화 쪽은 특히 변수가 많다. 캐스팅이나 제작비 투자 문제로 중간에 영화를 엎는 일도 빈번하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이리저리 재면서 일할 수는 없다. 경희씨는 인터뷰 전날에도 새벽까지 촬영을 하고 당일에도 양수리에서 제작 중인 영화의 세트 감리를 위해 이른 아침부터 작업실에 나와 물품을 챙기고 있었다.

"당장 눈앞의 이익보다는 더 가치 있다고 여기니까 (이런 생활을) 감수할 수 있는 거 같아요. 생존을 위해 자존심을 접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얘기, 보여 주고 싶은 것에 충실하고 싶어요."

그래도 100만원 더 준대도 내 선택은 '용병'

지금 버는 것보다 100만 원을 더 주겠다는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면 응하겠냐는 질문에 김현희씨는 바로 "아니"라고 답한다. 남에게 시간이 조정되는 게 싫다는 것. 멍하니 스튜디오 지키는 시간에 지금은 사람도 만나고 책도 읽으면서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고민한다고.

진경희씨에게 프리랜서로서의 어려움에 대해 묻자 "경제적인 것은 당연하구요"라고 농담을 던지고 실제로는 돈보다는 좋은 작업을 선택해서 자신의 경력을 쌓아가는 것이라고 답했다.

"프리랜서는 자기가 곧 상품이에요. 어느 분야든 만만한 일은 없다고 봐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면 그만큼 더 힘들고 고생이죠. 그러나 확신이 있다면 죽을 각오로 파고들라고 말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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