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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영
이날 회사 동료들과 점심을 함께 먹던 중 무슨 얘기 끝엔가 마침 아이 키우는 얘기가 나왔다. 그러자 한 동료가 기다렸다는 듯 아들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자랑에 겨운 나머지 딸만 둘씩 가진 나와 또 다른 동료는 그런 재미 모를 거라는 둥 쓸데없는 소리까지 곁들여가며 말이다.

다른 건 몰라도 아들이 딸보다 낫다는 투의 발언만큼은 용서할 수 없었던 나는 조용히 주머니 속 색종이 편지를 꺼내 그에게 보여줬다. 아들들도 혹시 그런 짓(?) 하더냐는 평소 궁금증을 곁들여서 말이다.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하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기분 좋게 집에 돌아와 딸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혹시 몰라 아빠 요즘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말해줬다. 특별히 무슨 의미가 있다기보다 그저 하나의 애정 표현일 것이라 짐작되긴 했지만, 혹시 아빠가 많이 힘들어 보여서 어린 마음에도 걱정이 돼 그런 건 아닌가 싶어서였다.

ⓒ 이우영
그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됐다고 생각했는데, 다음날 아침 출근을 위해 구두를 신다 보니 또 왼쪽 구두에서 이물감이 느껴졌다. 이번엔 발을 넣는 순간 바로 느낌이 올 정도로 이물감이 컸다. 이번엔 뭘까 싶어 꺼내 보니 수첩을 찢은 종이에 서툰 글씨로 쓴 '아빠 힘내세요. 아빨 사랑하는 하늘'이라 적힌 글이 눈에 들어왔다.

그걸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부터 나왔다. 과연 샘 많은 우리 큰딸 하늘이다운 편지였기 때문이다. 전날 둘째 바다는 자기 이름도 쓰지 않고 아빠에게 편지를 써 보냈는데, 이를 안 큰딸 하늘이는 뒤질세라 즉각 아빠 힘내라고 애정을 표현하는 동시에 한술 더 떠 '사랑하는 큰딸 하늘이'가 보내는 편지임을 명백히 했던 것이다.

이를 본 아내는 대뜸 눈꼴시어 못 봐 주겠다며 짐짓 딸들을 째려봤다. 왜 아빠한테만 편지 써주고 엄마에게는 편지를 안 써주느냐는 툴툴거림과 함께.

그러더니 다음날 아침이 되자 대뜸 내 구두를 집어 들고 열심히 구두솔질을 하기 시작했다. 딸들 보란 듯이 요란을 떠는 모습이 아빠 구두는 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일종의 시위 같다. 이럴 때 보면 아내는 애들 엄마라기보다 큰딸 같다는 느낌을 주곤 한다. 누구 말마따나 내가 딸 셋과 함께 사는 느낌이다.

어쨌거나 이들 세(?) 딸 덕분에 요즘 내 구두가 때 아닌 호강이다. 이 호강이 가능한 한 오래 지속되었으면 하는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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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순간 입술가로 따뜻한 웃음이 배어나는 사는이야기류의 글을 좋아합니다. 주로 이런 따뜻한 웃음이 배어나는 글에 주력할 계획입니다. 시각을 조금만 바꾸면 좀 더 낫게 고칠 수 있는 일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이런 쪽에도 관심이 많구요, 능력이 닿는데까지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글들을 써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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