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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성폐기물처리장(방폐장) 유치를 신청한 4개 후보지역의 주민투표가 11월 2일로 다가온 가운데 투표를 둘러싼 관권개입, 불법행위 의혹이 잇달아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지역내 찬반대립도 격해져 투표 이후 후유증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은 상황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정확한 현지 분위기와 지역민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군산 포항 영덕 경주 등 4개 후보지역을 차례로 순회하는 르포취재를 기획했습니다. <편집자주>
서민의 발인 시내버스가 멈춘지 20일이 넘었는데도 포항시는 이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방폐장 유치찬성운동에 '올인'하고 있어서다. 급기야는 방폐장 유치해서 얻은 비용으로 버스문제를 해결하자는 찬성측의 펼침막까지 등장하는 촌극이 빚어지고 있다.
서민의 발인 시내버스가 멈춘지 20일이 넘었는데도 포항시는 이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방폐장 유치찬성운동에 '올인'하고 있어서다. 급기야는 방폐장 유치해서 얻은 비용으로 버스문제를 해결하자는 찬성측의 펼침막까지 등장하는 촌극이 빚어지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주빈
시내버스 파업 21일째인 지난 10월 28일 포항. 개인택시를 모는 정상현씨는 "(시내버스가 멈춰서) 벌이가 늘었긴 하지만 포항시 공무원들 대체 제 정신인교?"라고 말했다. "시가 나서서 중재노력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방폐장 유치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것.

정씨는 "주민투표가 내일 모레지만 참여하는 시민이 얼마나 되겠나"고 반문했다. 유치열기가 과열되며 불미스런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는 다른 신청지역과는 다른 분위기다. 타 지역에 비해 현저히 적은 찬반 홍보용 펼침막 수도 이런 분위기를 반증했다.

조용하고 차분했다. 그러나 물밑대결은 여느 지역 못지 않게 뜨거웠다.

"누가 봐도 방폐장 들어서선 안될 곳에 유치신청했다"

포항 핵폐기장 반대 대책위 사무실은 한 지방 일간지 사옥 옆에 있었다. 방폐장 유치와 관련 이 일간지의 편파보도를 항의하기 위해 밤샘농성을 벌이던 곳이 대책위의 천막 사무실이 된 것이다.

송애경 대책위 본부장은 "다른 유치신청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용하게 진행돼서 더 걱정"이라고. "공무원을 동원한 관권개입의 정도가 결코 다른 지역에 못지 않다"는 송 본부장은 "현재까지 5건의 부정사례를 공식적으로 접수받았지만 익명 제보는 숱하게 받았다"고 한다. 모두 부재자 투표와 관련된 부정사례들이다.

송 본부장은 포항시민들이 방폐장 유치에 크게 호응하지 않는 이유를 "누가 봐도 들어서선 안될 곳에 시가 유치신청을 했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다른 대책위 관계자는 "도지사 선거를 준비하는 포항시장의 그릇된 욕심 때문에 황당한 방폐장 유치전에 휘말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포항시는 경상북도 수목원 옆 내연산 계곡(죽장면 상옥)에 방폐장 유치를 신청했다.

포항 내연산 자락에 위치한 상옥계곡. 포항시는 시민의 여름휴양지로 사랑받는 이곳을 방폐장 유치지역으로 결정했다.
포항 내연산 자락에 위치한 상옥계곡. 포항시는 시민의 여름휴양지로 사랑받는 이곳을 방폐장 유치지역으로 결정했다. ⓒ 오마이뉴스 이주빈
박용학(50)씨는 "상옥 계곡은 그나마 하나 남아있는 포항의 숨구멍"이라며 유치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박씨는 "어딘가 묻긴 묻어야겠지만 어떻게 그곳에 방폐장을 유치할 생각을 했나 모르겠다"며 포항시의 결정을 비판했다.

박씨는 또 "경제성 때문에 방폐장 유치한다고 하는데 포항은 포항제철까지 있지 않나"며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 (포철 없는) 안동시민들은 다 굶어죽었겠네"하고 비꼬았다.

포항시가 방폐장 위치로 시추한 상옥 마을에 사는 이인혁(45)씨도 "(방폐장 유치에 따른) 경제파급 효과가 그렇게 크다면 낙후지역으로 유치시키는 게 상식"이라며 유치반대 의사를 피력했다.

포항시, 31일 대규모 결의대회... 막판 세몰이 노려

반면 포항시 국책사업유치위 관계자들은 "주민들의 84% 정도는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치위의 한 관계자는 "다른 지역에 비해 차분히 활동하고 있지만 결과는 두고 볼 일"이라며 "31일 3만 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결의대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막판 세몰이를 통해 뒤집기를 시도하겠다는 계산이다.

유치위 관계자는 "주민투표에서 90% 이상 찬성이 나와야 유치가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면서 "조금만 더 노력하면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아울러 이 관계자는 반대 대책위가 제기하고 있는 관의 부정선거 문제에 대해서 "근거 없이 하는 말"이라고 부인했다. "투표를 독려하는 일만 열심히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전북 군산이나 경북 경주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차분한 분위기 속에 11월 2일 주민투표일을 기다리고 있는 포항. 곰탕집을 운영하고 있는 윤모씨의 말이 지금의 포항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다.

"집에서 나오는 쓰레기도 안 좋다고 분리수거 하는 마당에 하물며 핵이 좋겠나. 경상도든 전라도든 묻긴 묻어야지만 어디든 좋다고 나설 일은 아니다. 근데 포항시민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다. 아마 투표율도 제일 낮을 것이다. 왜냐면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을 시가 벌였기 때문이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이 중요한 사안에 100분 토론· 심야토론 한번 없었다"
[길거리 인터뷰] 강호철 포항환경운동연합 상임의장

강호철 포항환경운동연합 상임의장은 28일 초저녁에도 '반핵' 펼침막을 들고 포항 오거리에 있었다. 방폐장 유치찬성을 의결하는 의회에 개구리를 풀어 일약 '전국스타'가 된 그지만 아직도 '사고'칠 일이 많은 듯했다.

강 의장은 "11월 2일 주민투표가 끝나 4곳 중 어느 곳이 방폐장으로 선정되어도 그때부터 싸움은 새롭게 시작된다"고 못박았다. "지역간 감정적 경쟁을 유발시키고, 주민들간에 반목을 부채질해 어디든 장담 못하게 됐다"는 것.

강 의장은 "지질조사, 환경조사만 하는데도 10년이 걸릴 사안을 몇 개월만에 주민투표로 결론짓겠다는 것이 말이나 되나"며 강하게 정부를 성토했다. 이 때문에 제일 중요한 안전성 문제가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전북 대 경북의 대결로 왜곡되고 있다는 것이다.

강 의장은 "투표를 공정하게 관리해야할 관이 스스로 이해당사자가 되어 돈을 뿌리고 공무원을 동원하는 해괴한 부정선거가 이뤄지고 있다"고 규탄했다. "3·15부정선거는 방폐장 주민투표에 비하면 부정선거 축에도 못 낄 정도"라고.

그는 또 "이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 '100분 토론' '심야토론' 한번 없었다"고 지적했다.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중요한 사안이, 이렇게 철저히 토론의 장으로부터 외면받은 일은 일찌기 없었다"고 강 의장은 씁쓸하게 웃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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