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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라바엔 공원의 에스컬레이터. 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지만 장애인들이 관광하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 심은식
"우리나라도 배울 건 배워야 해요."

3박 4일의 여행기간 내내 장애인들과 그 가족들이 입을 모아 한 이야기다. 실제 일본의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은 놀라울 만큼 잘 갖추어져 있다. 여행 이틀째 오후에 방문한 그라바엔 공원, 높은 지대에 위치해 휠체어를 밀고 올라가기에 힘이 부칠 것이 염려됐지만 일행의 눈앞에 펼쳐진 건 정상까지 설치된 에스컬레이터와 장애인용 리프트였다.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멋진 전경, 모두들 그 곳에서 맞이하는 일몰을 마음껏 누렸다. 전망대에서 굽어 본 나가사키 지역은 고저의 편차가 심한 도시였다. 그러나 어디를 가나 발달되어 있는 각종 편의시설은 단순히 관광객을 위한 것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사지절단증을 앓고 있는 김세진(9)군의 어머니 양정숙씨는 "이런 시설은 꼭 장애인이 아니라도 노약자들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며 아쉽지만 우리나라와 비교를 할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의견을 내 놓았다.

▲ "일본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일본 홍보로고. 장애인 여행자를 위한 배려는 확실히 우리나라보다 한수 위였다.
중요한 건 시설에 앞선 마음가짐

"물론 과거 일본이 돈이 많으니까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점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우리나라엔 지금 새로 건설하는 건물에도 장애인 편의시설이 안 되어 있는 곳이 많아요. 그건 돈이 없어서가 아니거든요. 지하철의 경우만 봐도 알 수 있죠. 5~8호선까지 그 많은 돈을 들여 만들어 놓고 엘리베이터 공사를 다시 했거든요."

그간 많은 가이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주)여행박사의 이상필 팀장은 "일본의 경우는 오래전부터 모든 시설에 장애인이나 유모차가 다닐 수 있도록 고려를 해왔다"고 전하며 우리나라의 경우 입안단계에서부터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며 두 나라 장애인 시설의 가장 큰 차이점은 마음가짐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나가사키 하우스텐보스의 보도블럭에는 길의 가장자리임을 알 수 있도록 마무리 처리가 단계적으로 되어 있다. 저시력증으로 시각장애 1급인 신경호(38)씨 역시, "작은 것이지만 이런 것이 시각 장애인들에게는 말할 수 없이 큰 차이를 가져 온다"며 "큰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그런 것을 실천 못하는 것은 마음가짐의 문제"라며 아쉬워했다.

▲ '하우스텐보스'내의 길 가장자리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마무리 처리가 되어 있다. 국내의 경우, 상암동 '하늘공원'에서만 볼 수 있다고.
ⓒ 나영준
그런 편리한 장애인 관련 시설은 여행 사흘째의 나가사키 평화공원이나 후쿠오카 타워, 마지막 날의 마린월드 등을 돌아보아도 변함이 없었다. 관광 내내 14명의 장애인들은 이동과 관람에 있어 거의 제약을 받지 않았던 것.

"여행기간 내내 오히려 너무 편하게 다녀 고생 좀 안 한 것이 아쉽다"는 웃음을 전한 이재관(49.척수장애 1급)씨도 "곳곳의 섬세한 배려를 보면 솔직히 장애인에게는 천국 같아 부럽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그전보다 나아진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 장애인에 대한 배려에 있어선 철학의 부재가 느껴진다는 소감을 전했다.

▲ 후쿠오카 마린월드. 이동과 관람이 쉽도록 장애인을 위한 휠체어 좌석이 만들어져 있었다.
ⓒ 심은식
이번이 제1회 행사가 될 겁니다

그라바엔 공원 관광을 마친 이틀째 저녁 식사시간, 흥겨움을 가누지 못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노래 한 곡조가 흘러나왔다. 이곳저곳에서 평소 실력을 유감없이 뽐냈고, 그사이 창 밖에는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사흘째 오전, 원폭자료관과 나가사키 평화공원에서의 관광을 마치고 후쿠오카로 자리를 옮겼다. 나가사키를 떠나는 마지막 자리, 지난 3일간 일행을 따르며 보살펴주던 나가사키 관광연맹의 코사카 과장이 손을 흔들며 아쉬움을 표했다.

이번 여행에 있어선 많은 이들이 힘을 보탰다. 코사카 과장의 경우 단순히 '눈도장'에 그치지 않고 일행을 그림자처럼 따랐고, 나흘 간 안전운행을 책임졌던 우에노씨와 나카모토씨 역시 늘 사람 좋은 미소로 여행단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많은 감동을 전해 준 이들은 바로 여행의 주최가 된 (주)여행박사의 직원들이었다. 나흘 내내 직접 장애인들의 휠체어를 밀며 자상한 미소를 보여준 신창연(44) 사장은 전망 좋은 숙소를 잡았지만 휠체어 사용에 다소 불편한 점이 있자, 그 즉시 시내의 특급호텔로 바꿔 주는 등 단순히 홍보행사의 일환이라고 볼 수 없는 정성을 쏟아부었다.

▲ 나가시카 원폭 기념관에 전시된 시계. 원폭이 터진 11시 2분에 시계가 멈춰있다.
ⓒ 심은식
그 외, 혹시라도 일행이 지루해 할까 강호동부터 조용필의 흉내를 내며 목이 쉬도록 여행단을 즐겁게 해 준 김대정 가이드와 어머니 같은 푸근한 웃음을 보여주던 정명숙 가이드,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일정을 챙겨주던 정희연 대리, 차가 멈추면 가장 먼저 달려 나가 휠체어를 내려주던 이상필 팀장 등의 정성은 참가한 이들의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다.

사연 신청을 한 모든 분들을 모시지 못해 정말 안타깝고 죄송하다는 정희연(여.31) 대리는 "이번 행사는 그간 직원들의 봉급에서 1%를 적립한 정성으로 마련하게 되었다"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어질 행사이기 때문에 '제1회'로 생각하고 있다"는 소감을 전해오기도.

이어 지상 123m 후쿠오카 타워에서 굽어보던 그림 같은 풍경과 마지막 날, 마린월드에서의 유쾌했던 돌고래와 물개들과의 만남을 뒤로 하자 어느덧 헤어짐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마지막, 후쿠오카 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 약속이나 한 듯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제는 우리가 기회를 만들어 주었으면

어색한 적막을 깬 이는 세진(9.사지절단증)군의 어머니 양정숙씨였다. "아이의 친구들이 일본에 간다니까 배신자라고 놀리더랍니다"라고 입을 연 그녀는 "장애인들의 해외여행이 10년 20년 후에나 가능한 일인 줄로만 알았다"며 울먹였다.

"이런 일을(무료여행) 두 번 세 번 만들어 달라는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이번에 함께 한 우리가 돈을 내서라도 비행기 한 번 못 타본 장애인들에게 여행의 기회를 만들어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끝까지 함께 하는 1기가 될 거라 믿습니다. 여행박사 그리고 <오마이뉴스>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 여행기간 내내 헌신적으로 일행들을 돌봤던 가이드 김대정씨. 이번 행사가 성공적으로 끝난 것은 여행박사 직원들의 노력 덕분이다.
ⓒ 심은식
그사이 차 안은 눈시울을 붉히는 이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김대정 가이드는 "울지 않으려 했는데…"라며 목이 메는 듯 말을 잇지 못했고, 필자의 곁에 있던 이상필 팀장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좋은 날이잖아요"라며 어깨를 주물러 주었지만 어느새 눈물은 일행 모두의 뺨으로 옮겨 흘렀다.

그렇게 여행의 모든 일정이 저물고 있었다. 인천공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 참가한 모든 이들은 서로의 연락처를 나누며 좀 더 나은 방향을 위한 발전적 모임을 약속했고, 밖으로는 어느덧 착륙기어를 넣은 항공기 아래로 고국의 불빛이 이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공항에 도착해 입국수속을 마친 것은 밤 10시쯤, 그러나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인사는 한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까치발을 하고 서로의 체온을 느끼는 사람들, 약속이나 한 듯 서로를 부둥켜안고 놓으려 하지 않는 이들 덕에 "오늘 집에 못 가니 자리 깔아라"라는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 헤어짐의 순간. 비록 여행은 끝났지만 새로운 세계와의 소통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심감을 불어넣었다.
ⓒ 심은식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고, 외국도 나가 본 사람이 잘 나간다'

흔히 하는 시중의 농담거리다. 지난 4일간, 장애인 여행단이 얻은 것은 희망이었다. '비장애인도 못 가는 외국을 우리가 어떻게 라며…'라며 실의에 빠져 있던 이들에게, 새로운 세계와의 소통은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불어 넣었다.

웃음과 희망은 쉽게 전파된다고 한다. 여행을 함께 한 이들의 작은 약속과 다짐대로 '나만이 아닌' 타인을 위한 시험대에 섰던 그들에게, 장애인의 외국여행은 더 이상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될 수 없다.

어느 사이엔가,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분리되어 있던 우리사회. 그들은 '장애인도 할 수 있고, 하면 된다'는 희망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제 앞으로 남겨진 숙제는 '얼마나 자주, 얼마나 마음먹은 대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인사를 마치고 공항버스에 몸을 실은 시간, 지난 4일 간의 취재수첩을 뒤적이다 여행단 누군가가 힘주어 외치던 한 마디가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장애는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정상인이 아닙니다. 단지 비장애인 일 뿐입니다."

덧붙이는 글 | 여행을 함께 하신 모든 분 수고하셨습니다.
특히 노고를 아끼지 않은 (주)여행박사의 가족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일본여행, 여행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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