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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지만 운동코스로 딱인 모락산에 오르면 나무냄새가 상큼하다. 동네 가까운 데 이런 곳이 있어서 잉걸아빠는 축복이라고 생각하며 산다(사진은 모락산에 흔한 신갈나무).
낮지만 운동코스로 딱인 모락산에 오르면 나무냄새가 상큼하다. 동네 가까운 데 이런 곳이 있어서 잉걸아빠는 축복이라고 생각하며 산다(사진은 모락산에 흔한 신갈나무). ⓒ 이동환
"모락산은 385m밖에 안 돼. 그리고 의왕시 고천동에서 올라가는 길은 등산로라기보다 산책로에 가까워. 너희 잰 걸음으로 왕복 1시간 반이면 너끈하고도 남아. 지난번에 선생님이 얘기한 '테르펜'과 '피톤치드'를 기억해라. 그게 바로 '산냄새'야. 또, 사람 냄새 맡기가 뭐 어때서? 함께 올라간 친구들 땀 냄새를 참으며 손 잡아주고 밀어주는 것도 공부야. 호연지기란 특별한 게 아니다."

지난주에 얘기했던 테르펜(terpene)과 피톤치드(phytoncide)에 대해 정확하게 기억하는 친구가 있다면 산행 끝나고 맛있는 점심을 사주겠다고 했더니 한 친구가 손을 번쩍 든다.

"식물이 해충이나 유해균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내뿜는 방향성 물질을 테르펜이라고 합니다. 그 속에 들어있는 피톤치드는 특히 사람에게 이롭습니다. 우리 몸에 들어오면 피부를 자극해서 신체의 활성을 높이고 피를 잘 돌게 하며, 심리가 안정되는 것은 물론이고 살균작용도 합니다. 우리가 삼림욕을 하는 이유가 바로 피톤치드를 몸으로 마시기 위해서입니다."

거의 만점 대답을 시(?)처럼 읊어낸 친구를 잔뜩 격려하고 아이들 모두를 달래 결국 모락산에 오르기로 했다.

산이 오라고도 안 했는데 왜 올라가요?

약속한 아침. 많이 늦을 줄 알았던 녀석들이 10시 10분께 모두 모였다. 잉걸아빠가 사는 동네에서 올라가는 모락산 등산로는 정말 산책로에 가깝다. 완만하게 오르막과 내리막이 교차되는, 적당히 땀 흘리기 좋게끔 딱 들어맞는 운동 코스다. 그런데 처음부터 아이들이 힘들다고 엄살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냥 가만히 있는 산에 왜 올라가요? 언제 우릴 부르기나 했나요? 선생님, 힘들어서 못 올라가겠어요, 하며 앙탈을 부리는 녀석.
그냥 가만히 있는 산에 왜 올라가요? 언제 우릴 부르기나 했나요? 선생님, 힘들어서 못 올라가겠어요, 하며 앙탈을 부리는 녀석. ⓒ 이동환
특히 한 녀석이 자꾸 뒤에 처진다. 힘들어 죽겠다는 낯빛이다. 너는 미모(?) 말고 보여줄 게 그리도 없느냐고, 이 정도를 가지고 다 큰 녀석이 웬 엄살이냐고 닦달했더니 숨을 몰아쉬며 외려 앙탈을 부린다.

"산은 그냥 가만히 있는데…, 헉헉! 우릴 부르지도 않았는데 올라가려니까 힘들잖아요. 헉헉! 선생님…, 저만 여기서 쉬고 있으면 안 돼요?"

"어림없는 소리 마라. 관악산 올라가자고 했으면 아예 선생님과 의절했겠네? 꼭대기에 올라보면 오히려 기분이 괜찮아질 거야. 그나저나 너희들, 통 운동 안 하냐?"

운동할 시간이 어디 있냐며 오히려 눈을 흘긴다. 학교에서 밤 10시까지 자율학습 해야지, 학원 가야지, 주말도 만날 과외다 뭐다, 학교와 학원 아니면 '방콕'이 자기들 인생의 전부인데 운동은 무슨 운동이냐고, 오히려 내게 따진다. 솔직히 말해, 사교육 덕분(?)에 밥이나 먹는 잉걸아빠로서는 할 말이 없다.

"너희 잘못은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침대에 눕기 전과 일어나기 직전에 단 5분만이라도 몸을 움직일 수는 없니? 누워서 윗몸 일으키기, 다리 들어올리기 같은 운동이라도 좀 하면 되잖아."

아직 꼭대기에 오르려면 멀었는데 녀석들 눈치가 영, 이만 내려갔으면 하는 빛이다.

"그래도 꼭대기를 밟으니 좋지?" 하자 "그냥 빨리 밥 먹으로 내려가요"하는 녀석들. 그래도 따라와 줘서 대견하다. 사진에 안 찍히겠다고 숨은 녀석들도 있다.
"그래도 꼭대기를 밟으니 좋지?" 하자 "그냥 빨리 밥 먹으로 내려가요"하는 녀석들. 그래도 따라와 줘서 대견하다. 사진에 안 찍히겠다고 숨은 녀석들도 있다. ⓒ 이동환
처진 녀석은 물병으로 등짝을 찔러대며 다그친 끝에 드디어 모두 꼭대기에 올랐다. 이제는 배고파 죽겠다며 빨리 내려가자고 또 엄살들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 녀석들 데리고 관악산이나 올라가자고 했으면 큰일 날 뻔 했다. 이렇게 약해빠져서야, 저렇게 참을성이 없어서야…, 자식이나 다름없는 녀석들이 요깟 산행에 숨을 몰아쉬는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잉걸아빠는 답답하다.

어쨌거나, 두 시간 반여의 사투(?) 끝에 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밥집에 동그랗게 모여 앉았다. 평소에는 간식 좀 사주면 볼이 미어져라 잘 먹던 녀석들이 힘들어서인지 숟가락 잡은 손들이 무겁다. 밥 먹고 아이스크림 입에 물고 헤어지기 직전, 그래도 산꼭대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올랐다는 작은 성취감이 눈곱만큼이나마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밝게 인사하는 녀석들을 보며 어쨌든 대견했다.

입시교육에 내몰려 운동할 시간조차 빼앗긴 아이들. 그렇다고 그냥 방치할 수는 없다. 이제는 부모님들이 좀 더 신경을 써야하지 않을까 싶다. 내 자식, 누가 챙기겠는가?

"부모님들! 맞벌이다 뭐다 힘드신 거 다 압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우리 아이들 운동 좀 시켜주세요. 이대로는 아이들이 너무 약해져서 큰일입니다. 아무리 시간이 없으시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온 가족이 손잡고 동네 뒷동산이라도 올라가세요. 아침에 아이들 잠 깨울 때, 그냥 엉덩짝만 두들기지 마시고 단 5분만이라도 지켜보시며 다리 들어올리기라도 시켜주세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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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커서 '얼큰샘'으로 통하는 이동환은 논술강사로, 현재 안양시 평촌 <씨알논술학당> 대표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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