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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립학교법 개정을 염원하며 산을 오르는 전교조 순천 사립지회 교사들.
ⓒ 안준철

추기경님, 안녕하세요?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계절의 순환이라지만 때가 되면 깊어가는 이 가을이 참 미쁘네요. 가을의 아름다움. 가을의 쓸쓸함. 추기경님께서도 이 세속의 가을이 좋으신지요? 천국이 있다면 이 스산하면서도 눈부신 가을 같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답니다. 얼마나 가을을 좋아하면 이런 엉뚱한 생각을 했겠어요.

저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어제 토요휴무일을 맞이하여 전교조 순천 사립지회 소속 선생님들과 함께 가을산에 다녀왔습니다. 사실은 추기경님께서 다섯분의 대주교님들과 함께 연기해줄 것을 요청하신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어떻게든 일단락되려니 싶어서 산에 올라가 환호성이라도 내지르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추기경님께서는 지난 18일 아직 여야합의가 되지 않았으니 사학법 개정을 일정기간 동안 연기해달라고 국회의장께 청원을 하셨더군요. 평소 추기경님을 존경해온 저로서는 뜻밖의 소식이었지요. 어쨌거나 추기경님의 바람대로 김원기 국회의장의 10월 19일 사립학교법 직권상정 대국민 약속은 지켜지지 않아 좀 쓸쓸한 산행이 되고 말았지요. 실망과 분노를 희망의 함성으로 승화시키자고 다짐을 하며 환한 웃음으로 산행을 끝마치긴 했지만요.

어제 산을 오르내리면서 자연스레 추기경님에 대한 말들이 오고 갔답니다. 천주교 신자이기도 한 선생님 한분이 이렇게 먼저 말을 꺼냈지요.

"추기경님이 왜 사학법 개정을 연기해달라고 그러셨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가요. 추기경님은 천주교인들 뿐만 아니라 온 국민들에게 존경을 받는 분이 아니십니까?"

그렇게 말문을 여신 선생님의 표정을 보니 정말 추기경님을 존경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찌 그 선생님뿐이었을까요? 추기경님께서 그동안 '실천하는 신앙인'으로서, 혹은 '소외된 자의 벗'으로서 살아오신 행적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같은 심정이었을 테지요.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사학법 개정을 반대하고 있는 정치인들의 마음의 향방이 가진 자의 권익에만 쏠려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그리 많지않을 테니까요.

저는 산을 오르면서 추기경님께서 사학법 개정 연기를 요청한 진의가 무엇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함께 산을 오르던 선생님들도 저와 마찬가지로 그것이 궁금했나 봅니다.

▲ 김수환 추기경
ⓒ 연합뉴스 전수영
"추기경님도 사학과 무관하신 분은 아니지요. 종교 재단에서 세운 학교들이 많잖아요."
"그래도 그렇지요. 추기경님이 사학재단의 비리와 횡포를 모를 리가 없잖아요."

"종교재단에서 세운 학교들은 비교적 비리 사학과는 거리가 멀거든요."
"그래도 한 나라의 종교 지도자를 넘어서 세계적인 지도자이신데 전체 사학을 보는 눈은 있어야지요."

"개방형 이사제가 도입되면 종교재단으로서의 건학이념을 실천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요."
"개방형 이사제가 도입되더라도 3분의 1 선인데 한두명의 개방이사로 무슨 의결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것도 그렇지만 요즘 종교재단이라고 건학이념을 실천하는 그런 학교가 솔직히 어디 있어요? 서울대학교에 한명이라도 더 보내는 것이 지상최대 목표지요."

추기경님, 죄송합니다. 미래의 꿈나무들을 키우는 선생님들이 이렇게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보면 안되는데 우리를 에워싼 교육현실이 참담하니 어쩔 수가 없지 않겠어요. 이른바 입시지옥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참담한 우리의 교육현실에 대해서는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시겠지요. 하지만 말이라는 것도 자꾸만 듣다보면 면역성이 생기기 마련이지요. 그래도 한번 더 들어 보시겠어요? 가로등도 없는 겨울날의 긴 골목길만큼이나 어둡고 막막한 학교 이야기를.

"야자(야간자율학습)를 앞두고 우리 반만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옵니다. 몸이 아프다, 집에 일이 있다, 이유도 가지각색이에요. 다른 반은 아예 강압적으로 해버리니까 아이들이 꼼짝도 못하는데 우리반 아이들은 담임 간을 본 거지요. 그렇다고 사정이 있는 아이들마저 모른체 할 수도 없고요. 요즘 자꾸만 무능 교사가 되어가는 느낌입니다. 학년부장도 왜 아이들을 장악하지 못하느냐고 난리에요. 아이들에게 인간적으로 잘 해주고 싶어도 그럴수록 길이 안보입니다."

"전 지난 여름방학 때 자율학습 때문에 학년부장하고 사이가 나빠져 버렸어요. 요즘 심장이 안좋아 병원에 다니는데 꼭 저 때문인 것 같아서 참 괴롭더라고요. 아이들하고 약속을 했거든요 방학 때는 자율학습을 강제로 하지 않겠다고요. 그러면서 약속을 또 받았지요. 방학이 끝나면 이유 없이 자율학습에 참여하기로요. 그렇게 해서 열명 정도 방학계획서를 받고 자율학습을 빼주었는데 그것 때문에 학년부장하고 사이가 나빠진 거지요. 아무리 알아듣게 설명해주어도 소용이 없어요. 자기에게 인간적으로 그럴 수 없다는 거지요."

두 교사 사이에 오고간 대화가 구체적으로 무슨 내용인지 얼른 이해가 되시는지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학교에는 '야간자율학습'이라는 게 있답니다. 줄여서 '야자'라고 하지요. 야자는 학교 정규수업과 보충수업이 끝나면 공부하고 싶은 학생이 학교에 남아서 스스로 공부하는 것을 말하지요. 물론 희망하는 학생에 한해서 하도록 되어 있지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고발조치를 당할 수도 있게 되어 있고요. 그런데 실제 사정은 그렇지가 않아서 두 교사의 대화에서 엿볼 수 있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생기는 것이지요.

양심과 지성의 상징이신 추기경님이니 당연히 공감하시겠지만, 두 교사의 대화에 등장하는 학년부장이라는 분의 머리에는 학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교육자로서의 일말의 양심과 양식을 갖춘 담임교사가 제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방학만큼은 본인 스스로 계획한대로 공부도 하고 여행도 하면서 유익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을 두고 학년부장은 "자기에게 인간적으로 그럴 수 없다"는 말만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지요. 거기에 본인도 병원 신세를 질 만큼 심히 괴로워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학교 사회에서 이런 학년부장(들)의 '해괴한' 정신적 증상이 아무 이상할 것도 없는 '보편적'인 현상이라는데 있습니다. 오히려 학년부장을 힘들게 한 두 교사가 학교에서는 문제교사 취급을 받지요. 학생을 위해 학교가 있고, 학생을 위해 교육과정이 마련되어 있는데도, 학교에는 학생이 없지요. 교장과 교사, 교사와 교사 사이의 의리만이 존재할 뿐이지요.

물론 학교에는 아직도 학생들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훌륭한 교사도 많습니다. 문제는 그런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교사일수록 학교에서는 무능한 교사로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지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격이랄까요. 이것이 입시위주 교육의 참상이랍니다. 종교재단에서 운영하는 학교라고 예외는 아니지요. 그런 학교 분위기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영혼이 어떻게 되겠어요?

저도 예수의 제자가 되기로 신앙고백을 한 사람으로서 종교재단에서 운영하는 사학을 비난하고자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사학의 자율'이라든지 '건학이념'이라는 하는 말이 갖는 허구성에 대해서 진지하게 따져보자는 뜻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허울 좋은 말보다는 방법을 찾아야지요. 지금의 입시교육에 문제가 있다면 다른 방도를 찾아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요.

그렇다면 학교다운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먼저 충족되어야 할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겠지요. 학생들에게 유익하고 행복한 학교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새롭고 신선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학교에 들어와야지요. 학생들이 명문고를 만들어주는 수단으로 존재하지 않고 자신의 행복과 미래를 가꾸어갈 수 있도록 학교의 문을 활짝 열어놓아야지요. 열린 사고의 총아이신 예수의 가르침을 받은 종교재단에서 먼저 실천해야할 일이 아닐까요?

▲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을 위하여
ⓒ 안준철
사립학교법 개정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개방이사제가 도입되면 사학의 자율이 훼손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사학의 자율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형식논리로만 따진다면 사학의 자율이란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고 사학 스스로 학교를 운영하는 것이겠지요. 거기에 신자유주의 신봉자들은 시장경제니 자유경쟁이니 하는 그럴 듯한 용어들을 써가며 교육개방을 원하고 있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가진 자들의 무한한 이기심의 충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논리가 아니라 그 실제적인 결과입니다. 현재 사학의 국가 의존도가 거의 절대적이라는 사실은 잠시 접어두더라도, 사학의 자율이 결과적으로 학교의 주인인 학생들을 이롭게 하지 못한다면 허무한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지요. 지금 종교재단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조차 숭고한 건학이념과는 달리 입시교육에만 힘이 실려 인간교육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만약 사학에 자율이 주어지면 앞서 두 교사의 대화에서 엿볼 수 있었던 학교사회의 비인간화가 종교재단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만이라도 사라지게 될까요? 서울대를 많이 보내는 학교가 최고의 명문고가 된다는데 아무런 이의를 달지 않는 이런 천박한 상식이 진리처럼 통용되는 사회에서 사람이 바뀌지 않고도 학교가 과연 변화될까요? 입시위주 교육을 심화시키고 있는 망국의 학벌주의가 온존하고 보수 언론에 의해 오히려 심화되는 상황에서 국가적인 처방이 없이도 사학에만 자율이 주어지면 만사가 형통할까요?

추기경님, 용서하세요. 저도 가끔은 어린 제자들로부터 따끔한 충고의 소리를 듣곤 합니다. 그렇게 넉넉한 마음으로 빙그레 웃으시면 이 글을 읽으셨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이 부족한 편지가 귀하신 분의 눈길에 닿을지 심히 의심스럽지만, 그래도 인터넷의 영향력을 믿고 용기를 내어 감히 글을 올립니다. 이 부족한 글을 쓰면서도 그 동안 부패사학의 횡포로 인해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수많은 사람들이 떠올라 잠시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습니다.

이제 학교는 누구나 들여다 볼 수 있는 투명한 열린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성숙하고 아름다운 사회를 이해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자라나는 꿈나무들을 위해서라도 스스로 교육계를 떠나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예수의 제자이신 추기경께서 염원하시는 평등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라도 사학법 개정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부디, 이 시대의 존경받는 아름다운 어른으로 끝까지 남아주시길 빌면서 이만 글을 줄일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보이네요. 지금 이 자리에서는 아득한 그리움일 뿐이지만 언젠가는 발길 닿을 날이 오겠지요. 마땅히 가야할 길을 당당히 걸어가다보면...
ⓒ 안준철

#김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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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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