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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원
치악산 정상엔 벌써 잎이 진 나무들 세상입니다. 봄날의 따스한 햇살 듬뿍 받아 애지중지 키워온 나뭇잎들을 싸늘하게 식어가는 땅 위로 날려 보내고, 긴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에 걸맞게 부는 바람도 싸늘합니다.

정상에서 구룡사를 향해 내려가는 계곡 길은 돌무더기로 이어진 길입니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이 힘겨워 오르는 이들을 보면 내려간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 모릅니다.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는지를 묻는 힘겨운 이들에게 조금만 가면 된다고 조언까지 해주는 여유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여유가 오래 가지는 않습니다. 내리막길이라고 덤벙대고 방심하다가는 급경사 돌무더기 길에서 미끄러지거나 발을 헛디뎌 크게 다칠 수도 있습니다. 온몸의 신경을 발바닥에 집중시켜 돌무더기를 딛고 내려오다 보면 오르막처럼 숨이 찬 것은 아니지만 힘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 이기원

ⓒ 이기원
그래도 내리막길이 좋습니다. 앙상한 가지만 나부끼는 정상보다는 노란 잎 빨 간잎 주렁주렁 매달고 막바지 가을을 지키고 서 있는 단풍 숲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래로 흐르는 단풍을 따라 아래로 또 아래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 이기원

ⓒ 이기원
무어라 말씀하셨나.
돌아서 옆을 보면
화들짝 붉히는 낯익은 얼굴
무어라 말씀하셨나.
돌아서 뒤를 보면
또 노랗게 눈을 흘기는 그 고운 눈빛
가을산 어스름 숲 속을 간다.
- 오세영 '단풍 숲 속을 가며' 중에서


ⓒ 이기원
사람들은 단풍을 찾아 산으로 가고 단풍은 사람을 찾아 아래로 내려옵니다. 붉게 물든 단풍잎의 진한 빛깔에 취해 한참을 바라보다 문득 함께 간 아내를 돌아보니 그 얼굴도 붉게 물들었습니다. 단풍에 취한 게 나 혼자만은 아닌가봅니다.

계곡을 따라 두 시간 넘게 내려오니 구룡사에 도착했습니다. 일주문에서 구룡사를 지나 야영장까지 가는 길에는 단풍과 함께 또다른 볼거리가 있습니다. '숲 속의 시화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원주 문인협회에서 가을 단풍의 정취와 어울리는 시인들의 시를 그림과 함께 전시하고 있습니다.

ⓒ 이기원
단풍을 즐기려 산을 찾은 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서서 시를 읽고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시 앞에 서서 읽고 또 읽다가 문득 올려다 본 나뭇가지에서 빨간 단풍잎이 하늘하늘 손짓하며 흔들리고 있습니다. 느릅나무 꽃단풍이 가을 향 불사르는 숲 속의 시화전에 취해 오래오래 그 자리에 머물러 서 있었습니다.

ⓒ 이기원
꽤 오랜 시간을 단풍과 시에 취해 머물러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 일주문을 향했습니다. 해가 어느새 서산을 향해 기울고 있었습니다. 일주문을 지나다 문득 돌아본 길에서 그윽한 시 구절과 붉게 물든 단풍이 더 머물렀다 가라며 손짓하고 있었습니다.

머물지 못하고 떠나는 아쉬움에 시름 한 자락은 남겨두고 돌아서 다시 걸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10월 여행 이벤트 응모' 기사 

문인협회 원주지부에서는 치악산 구룡사 부근의 숲속에 시화를 전시하여 등산객및 탐방객등 가을철 문학과 자연의 만남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전시기간: 10월 01일 부터 ~ 11월 30일(60일간)
전시장소: 치악산 구룡사 부근 탐방로 숲속
전시 시화: 문인협회 원주지부,강원지회,기타 초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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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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