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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겉그림
책 겉그림 ⓒ 나무생각
시는 그림이요 인생이다. 시에 상상력을 품으면 멋진 그림을 떠 올릴 수 있다.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떠오르는 그림이 있기 마련이다. 시를 들여다보고 음미하면 그 속에 달고 쓴 인생이 깃들어 있음을 알게 된다. 사랑과 고통이 없는 인생과 역사는 시를 낳을 수 없는 법이다. 시는 그래서 한 사람의 인생과 한 사회의 역사가 담겨 있다.

그림도 또 하나의 시요 인생이다. 그림을 줄이면 한 줄 말이 되고 곧 시가 된다. 그림을 쳐다보는 아이에게는 노랫말이 자연스레 떠오르게 된다. 그림을 감상하는 어른들은 곧잘 자신의 인생을 그림 속에 투영해 보기도 한다. 기쁨도 슬픔도 그 그림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림도 그래서 한 사람의 인생과 한 사회의 역사를 보여주는 역사이기는 마찬가지이다.

황혜숙이 쓴 <시와 그림, 사랑의 빛깔로 다가왔습니다>(나무생각, 2005)는 그래서 시와 그림이 하나의 궤를 이루어 인생이 되고 역사가 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에게 시는 생명을 소생시키는 생명이요 그녀에게 그림은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된다. 생명과 빛, 시와 그림은 그녀에게 삶의 인생이요, 그녀가 살아온 역사이다.

“인간 사회의 법칙을 존중하며 산다는 것은 자신이 잊혀지는 외로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외로움 속에는 알 수 없는 어떤 진실이 깊이 숨어 있다고 느껴집니다. 이럴 때 그 진실, 혹은 본질적인 자아를 찾아 주는 시를 만나면 인식 세계의 변화가 생기게 됩니다. 그러니까 나는 시에서 잊혀진 자신을 찾으며, 어느 영혼과의 만남도 이루어집니다.”(22쪽)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무척이나 좋아했던 렘브란트 그림의 빛과 그림자는 나의 잠재 세계에 어떤 영향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세상의 모든 사물과 사람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빛을 받은 그의 모습만 보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존재는 나의 빛이 되어주었지만, 그가 보이지 않는 세상은 오랫동안 너무 어둡고 무서웠습니다.”(142쪽)

황혜숙은 사실 시와 그리고 그림과는 거리가 먼 일을 했다. 대학교 때 국제교환학생으로 미국에 유학을 갔지만 분단국가의 상황이라는 아픔을 국제 학생들과 토론하며 비애를 맛보게 된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 길이 세계 속에 한국을 드높일 일인지를 생각하게 되고, 당시 베트남이 둘로 쪼개지는 일이 없어야 된다며 종군기자가 되기를 자청한다.

하지만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그리고 한국 국적을 지닌 젊은 여자가 베트남에 가서 종군기자로 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베트남 전쟁터를 누빌 수 있는 길을 택하여, 미국 항공사의 여승무원이 된다. 그러나 애국심과 정의감 하나로 그 모든 일을 견디어 이겨내려던 그녀의 의지는 원치 않는 일로 꺾일 수밖에 없었고, 결국 1974년 뉴욕 시세이도 화장품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 후 1977년부터는 한국으로 건너와 한국산 화장품 개발과 세계인들의 신뢰를 얻는 일에 모든 열정을 쏟아 붓게 된다.

화장품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도 어떻게 그녀는 시와 그리고 그림과 두터운 교분을 쌓게 되었을까? 그것은 시와 그림이 그녀의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을 감싸는 따사로운 영양분이었으며, 화장품 개발과 관련된 일에 뛰어들었을 때에도 그것들은 그녀에게 새 힘을 공급하는 덧거름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이별의 슬픔과 죽을 병에 들어 자살하려는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에도 그 시와 그림은 그녀에게 한 줄기 빛이요 생명과 같았다.

그럼 그녀가 제일로 좋아하는 시는 어떤 시이며, 그녀가 제일로 좋아하는 화가는 누구일까. 사실 육십 평생을 넘어선 사람에게 어떤 시가 좋은지, 어떤 그림이 좋은지, 묻는 것은 어린 아이와 같은 물음일 것이다. 그녀가 살아 온 지난날에 이 땅의 모든 시와 모든 그림들은 그녀를 지탱하게 해 주는 버팀목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굳이 그녀가 줄곧 더 많이 읊조리고 더 많이 들여다보는 시와 그림이 없는 것은 아닌 듯 하다. 그녀가 더 많이 되뇌는 시는 마종기의 <밤 운전>과 <그림 그리기>이고, 그녀가 다른 화가들보다 더욱 좋아하는 화가로는 빛과 어두움을 드러내어 생명의 빛을 전하는 ‘렘브란트’가 아닐까 한다.

<밤 운전>은 외국 유학 생활 속에서 자신이 이방인이지만 그 속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발견케 해 준 시였고, <그림 그리기>는 자신에게 주어진 생을 무엇 때문에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알게 해 준 시였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마치 화장품을 만들어 내면서 느끼는 것으로서, 분명한 목적을 갖고 태어난 제품이라야 좋은 제품이요, 누군가에게 기쁨이 되는 존재일 때에만이 진정 사랑받는 제품이 될 수 있다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그녀는 시장 경쟁이 치열한 세계 속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높이고, 세계인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시와 그림의 본연의 임무인, 그 진실성의 목적과 참된 생명력에서 찾아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순수한 관심과 진정한 열정이 없는 얄팍한 상술로 제품을 만들어 낼 게 아니라, 그리하여 일시적인 기억 효과에 머무르게 할 게 아니라, 영원토록 기억되는 의미 있는 제품을 만들어 낼 것을 역설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물론 그 이야기들은 그녀가 읊조리고 있는 시와 그녀가 감상하고 있는 그림 속에 녹녹히 녹아 있다.

어쩌면 그녀에게 시와 그림은 화장품과 같은 제품의 목적과 진실성을 비추는 사실화면 같은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무수한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 제품 속에 시와 그림 같은 생명력과 진실을 드러내는 제품이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땅에 살아 남아 있는 시와 그림은 그녀의 생명을 건져내는 빛일 뿐만 아니라, 이 땅의 제품과 모든 만물이 어떤 목적과 진실성을 담아내야 하는지를 밝혀주는 참된 빛이 아닐 수 없을 것 같다.

"어떤 상품은 영업 능력이나 혹은 구매 충동을 일으키는 성공적인 광고 덕분으로 성공한 듯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용자에게 어떤 기쁨을 줄 수 있는지, 그 목적이 분명하지 않은 제품에는 생명력이 없으므로 결국 시장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나는 사물이나 자연이나 혹은 생명이 있거나 없거나, 세상의 모든 것은 창조의 선한 목적이 있음으로 존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와 그림, 사랑의 빛깔로 다가왔습니다

황혜숙 지음, 주성희 그림, 나무생각(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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