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나무는 꼿꼿하게 자란다. 꼿꼿한 나무는 바람이 불면 그에 결연히 맞선다. 그러다 부러지기도 한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에게도 그런 강한 의지가 필요할 때가 있다.
어떤 나무는 바람이 부는 대로 자란다. 바람은 그 나무의 흥이다. 바람과 손잡고 허리를 휘며 몸을 맡긴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에게도 그런 흥이 필요할 때가 있다.
세월의 무게를 견뎌내면서 나무는 듬직함을 갖추기 시작한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도 나이 들면 그런 듬직함이 필요하다.
그러나 역시 나이 들어 가면서 얻게 되는 연륜의 가장 큰 미덕은 속을 비울 줄 알게 된다는 점인 듯하다. 오래된 고목은 거의 예외없이 속을 비운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도 그렇게 자신을 비워야할 때가 있다.
사람들은 하늘의 푸른빛이 원래부터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설악산을 오르다 보면 종종 나뭇잎을 떨군 가지가 실핏줄처럼 하늘로 번진 것을 볼 수 있다. 대지의 저 깊은 곳에서 푸른 물줄기를 길어 올리면 그것이 처음엔 초록 이파리가 되며, 그 이파리가 지상으로 돌아가고 나면 그때부터는 하늘의 푸른빛이 된다.
우리가 부모님의 푸른 젊음을 쪽쪽 빨아먹고 성장하여 젊은이가 되듯 나무도 제 푸름을 하늘에 주고 저는 회색빛 마른 둥치로 말라간다.
그러나 자식이 앗아간 젊음이 늙은 나무의 슬픔은 아니다. 잘 큰 자식은 늙은 나무의 무한한 기쁨이다. 그때면 나무는 춤을 춘다. 산지사방으로 팔을 벌리고 덩실덩실 춤을 춘다.
제 흥에 겨워 혼자만 춤을 추는 것은 아니다. 둘이 얽혀 트위스트를 추기도 한다.
춤 앞에 박수와 환호가 빠질 수 없다. 어떤 나무는 가지 끝의 이파리를 바람으로 요란하게 흔들어 나무들의 춤에 환호를 보낸다. 아울러 나무의 박수와 환호는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사실 산을 오르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 산이 설악산이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발이 무거워질 때쯤 하늘을 한번 올려보고, 그때 바람이 가지 끝의 이파리를 요란하게 흔들고 지나가면 그 순간 나뭇잎 소리를 그곳까지 올라온 자신에 대한 대대적인 환영 인사로 여기시라. 더더구나 가을에는 한여름 내내 초록 일색이던 그 환호가 노랗고 붉은 환호로 더욱 화려해진다. 분명 다리의 힘이 솟을 것이다.
어디 그 뿐이랴. 나무는 우리를 사랑으로 맞아준다. 나무가 분명 하트를 만들어 우리 앞에 내밀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설악을 오르면 나무의 사랑을 얻을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게재했습니다. 블로그-->김동원의 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