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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억이라는 거금을 들여 만든 MBC 드라마 <신돈>이 10% 내외라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KBS의 외화 <칭기즈칸>에도 밀리며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제작비에 역행하는 시청률이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 신돈 역을 맡은 손창민의 연기력이 미흡해서라고 원인을 분석하는 쪽도 있고, 도술이나 보여 주며 괜히 호방한 척하는 캐릭터에 대한 거부감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또 외적 요인인 '정치 사극의 실종'을 원인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기자도 <신돈>의 부진 이유를 나름대로 짚어 봤다.

첫 방송이 나가기 전에 한껏 기대를 모았다가 막상 뚜껑이 열리자 9.9%라는 한 자리대 시청률을 보인 <신돈>. 바로 이어진 작가 인터뷰에서 정하연 작가는 "신돈에 대한 이미지가 워낙 부정적이기 때문"이라고, 시청률 부진의 원인을 나름대로 분석했다. 나 또한 작가와 생각이 일치한다.

사람들의 인식에 뿌리 박힌 신돈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워낙 견고해 드라마에서 그리고자 하는 개혁가의 이미지와 충돌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드라마의 이미지가 역사적 인물에 대한 이미지를 뛰어넘지를 못하고 있는 경우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인 인물 신돈은 '요승'의 이미지가 강하다. 허나 드라마 <신돈>에서는 가진 자를 징벌하고 가난한 백성을 구제하고자 하는 개혁가의 이미지를 그리고자 한다. 어느 쪽이 더 센가에 의해 드라마의 진로가 결정되는데 아직까지는 요승의 이미지가 강하기에 드라마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과연 신돈은 요승일까, 실패한 개혁가일까?

▲ 신돈 역을 맡은 손창민씨.
ⓒ mbc
역사적으로도 신돈에 대한 평가는 두 가지로 나뉜다. '요승'이라는 쪽은 주로 권력을 획득한 분류의 평가다. 공민왕의 총애를 받으며 신돈이 권력의 핵심부로 등장할 때 이미 권력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은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맨 주먹으로 나타난 신돈에게서 자신들의 부를 빼앗길까 노심초사했을 것이다. 신돈의 등장은 그들에게는 마이너스 효과만 불러왔기에 그들에게 신돈은 적일 수밖에 없었다.

잃는 쪽이 있으면 얻는 쪽이 있듯 신돈의 출현으로 인해 권문세족이 권력을 잃고 재산 또한 손실을 봤다면 별로 가진 것 없는 백성들은 신돈으로 인해 이익을 얻은 쪽이었다. 신돈은 부나 권력은 많은 쪽에서 작은 쪽으로 흘러가 균형을 이뤄져야 한다는, 다소 평등주의적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자신이 미천한 출신이었기에 가질 법한 사고였다. 없는 사람이 없는 사람 사정 안다고, 없는 사람의 입장을 대변해 주는 신돈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성인' '문수의 화신'일 수가 있었다.

가진 자에게서는 '요승'으로, 없는 사람들한테서는 '구세주'인 신돈의 정체는? 정치인으로서의 신돈에 대한 평가가 이렇다면, 신돈 개인에 대한 묘사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가?

신돈이 공민왕에게 총애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남루한 옷을 걸치고 다니면서 "자신의 뜻은 오직 개혁이지 권력이 아니다. 개혁이 원만히 성취되면 다시 모든 걸 놓고 산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해서였다고 한다. 허나 공민왕에게 보인 초기의 모습과 달리 그는 승려의 신분으로 고기와 여색을 탐했으며 권력에 집착하다가 자신의 주구 공민왕에게 숙청 당했다.

법호 '청한거사(淸閑居士)'에 어울리지 않게 정말 방탕했기에 그의 이미지는 '성인'보다는 요승에 머물고 있다. 개혁가의 이미지를 가장한 요승의 느낌이 강한 편이다. 지금까지 신돈에 대해 다뤄왔던 드라마나 영화는 주로 이 요승의 이미지를 재생산해 왔다.

역사를 통해서는 기울어져 가는 고려의 패망에 일조한 타락한 승려로 교육 받았고, 기존의 영상매체를 통해서는 '반야'라는 여성을 통해 공민왕의 혼을 빼놓고 권력을 탐하는 요승으로 이미지화됐기에 우리의 기억 속에 있는 신돈은 결국 요승이다. 그래서 신돈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다 거짓으로 보이는 것이다.

드라마 <신돈>에서 신돈이 고려에서 공녀로 잡혀간 고려 여인들에 대한 연민을 느끼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별로 와 닿지가 않았다. 어떤 의로운 모습을 보여주더라도 지금까지 신돈에 대해 학습해 온 '요승' 이미지가 버티고 있는 이상 그의 행동이나 생각은 거짓으로 비쳐진다.

역사적 인물이 드라마 캐릭터의 발목을 잡는 경우라고 볼 수가 있겠다. 드라마 <신돈>은 현재까지의 진행 과정이나 기획 의도를 미루어 보아 개혁가로서의 신돈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역사적 인물 신돈에 대한 학습이 워낙 견고하게 돼 있어 이를 뒤집기가 쉽지가 않다. 그가 어떤 행동을 보이더라도 나중에 본색을 드러내겠지, 하는 생각이 깔린 이상 그의 행동이 마음으로 다가오지를 못한다.

우리 역사상 대표적 요승으로 꼽히고 있는 '궁예'의 경우와 비교해 봐도 신돈의 부진 이유를 알 수가 있다. KBS 드라마 <왕건>에서 궁예는 긍정적 이미지 대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철저하게 부정적 이미지로 묘사됐다. 자신을 미륵으로 칭하며 노란 왕의를 걸치고 다니는 모습에서는 광인의 모습이 보이고, 자신의 두 아들과 아내까지 죽이는 모습이나 철퇴를 내리치는 모습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함이 엿보인다.

이런 궁예의 모습은 우리의 기억 속에 내장된 이미지를 좀 더 화려하고 구체화 시켰기에 충분한 공감을 일으켜 <왕건>이라는 드라마 흥행의 일등공신으로 '궁예'를 들 수가 있었다. 한때 궁예 신드롬이 일어날 정도로 궁예의 인기는 드높았고, 궁예 역을 맡은 김영철씨의 인기도 엄청났다.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자 연기력까지 도마 위에 오른 신돈 역의 손창민씨와 대조되는 모습이다.

같은 요승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궁예와 신돈. 궁예는 먹혀 들었는데 신돈은 왜 안 될까? 궁예가 우리의 인식에 철저하게 부합했다면 신돈은 인식에 역행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람이 갖고 있는 인식을 바꾸기는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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