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가면 우리는 헉헉 숨을 몰아쉬며 길을 오르지만 단풍은 그 길에서 우리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길은 그것이 산에 있어도 가야할 걸음을 바쁘게 하는 경향이 있지만 설악의 단풍 앞에선 모두가 그 분주한 걸음을 멈추고 주저없이 단풍에 시선을 내준다.
나무는 아득하다. 왜냐하면 때로 나무는 자라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향하여 날아오르기 때문이다. 세상에 제자리 걸음이 있고, 제자리 뛰기가 있다면 나무에겐 제자리 날기가 있다.
설악은 어디로 오르나 만만한 곳이 없다고 한다. 한계령에서 시작한 길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약간의 높이를 확보하자 봉우리 하나가 손끝에 걸릴 듯하다.
조금 더 높이를 확보하니 봉우리가 저만치 밀려간다. 내가 오르는 것인지 봉우리가 내려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높이를 확보할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아래쪽으로 밀려가는 산의 풍경이 바로 산을 오를 때의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면 산을 오를 때 우리는 항상 아득하던 저 높은 곳의 산에게 낮은 곳으로 임할 좋은 기회를 선물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산이 우리에게 높이를 내주고 저는 주저 없이 낮은 곳으로 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설악산 다람쥐. 나무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긴 것일까. 헤, 그래도 꼬리는 다 보이는데.
바위는 육중하다. 구름은 가볍다. 바위는 변함이 없다. 구름은 시시각각 변한다. 그러나 그 둘이 엮는 풍경은 조화롭고 아름답다.
저 아래쪽에 있을 때는 구름이 햇볕을 가릴 때, 항상 그늘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득한 높이를 가지자 그것은 그늘이 아니라 구름의 그림자가 되었다. 하늘에선 구름이 흘러가고 저만치 설악의 봉우리 사이에서 그들의 그림자가 흐른다.
한계령으로 오르는 길의 가장 좋은 점은 어느 순간부터 대청봉이 저만치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눈에 들면 그 순간부터 없던 힘도 솟기 시작한다.
단풍은 설악의 정상에서 시작하여 점점 아래쪽으로 내려간다. 바로 우리네 사는 곳으로. 단풍의 본래 뜻은 높은 곳에 고고하게 살다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그 아름다움으로 물들이며 내년에 그 아름다운 만남을 다시 기약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게재했습니다. 블로그-->김동원의 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