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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상무.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 ⓒ 오마이뉴스 권우성
13일 검찰의 이재용씨 남매에 대한 계좌추적 착수는 예견된 행보였다. 하지만 파장은 컸다. 검찰의 칼 끝이 삼성 경영권 승계구도의 핵심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좌추적 결과에 따라 이건희 삼성 회장 등 이씨일가의 불법 등이 드러날 경우, 삼성 지배구조는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사건에 대한 검찰 행보 하나하나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게다가 이날 참여연대가 이재용 상무를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나섰다. 이 상무와 삼성 계열사 임원들을 배임혐의로 검찰에 또 고발한 것. 이유는 이 상무가 손댄 인터넷사업의 부실을 계열사들이 그대로 떠안았다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이 상무와 회사 임원들이 배임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삼성 국감'을 넘긴 삼성은 또 다시 혼돈에 빠졌다. 총수 일가에 대한 검찰의 계좌추적 사실이 알려지자, 공식적인 대응은 삼가하면서도 당혹한 기색이 역력하다. 일부에선 검찰의 여론몰이에 불쾌한 심기를 내비치기도 했다.

예견된 검찰의 계좌추적... '이건희-이재용' 승계구도 정조준

검찰의 이번 계좌추적은 이미 예견돼 있었다. 지난 4일 법원은 에버랜드 전환사채 배정에 대해, 허태학 전 사장 등 경영진이 증여 목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법원은 당시 판결문을 통해 당시 경영진들이 주주 배정을 가장했을 뿐, 실제로는 이재용씨 등에 대한 증여 목적으로 CB를 발행했다고 판단했다.

결국 이건희 회장을 비롯해 삼성 계열사들이 재용씨 후계 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CB 저가 발행'이라는 편법을 동원했고, 이는 법적으로도 잘못된 것임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이후 검찰의 행보도 빨라졌다. 판결 이후, 검찰은 에버랜드 CB와 관련된 수사를 전면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허태학 전 사장 등이 비록 1심이지만 유죄 판결을 받은 이상, 함께 고발된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상무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 방향도 그룹 승계 과정에서 이씨 일가의 사전 공모 여부 등에 초점이 맞춰졌다. 검찰은 당시에도 "삼성그룹의 불법적인 경영권 승계를 수사하는 것은 이제 시작"이라면서 "에버랜드 CB 발행의 공모 관계와 배후를 들춰내겠다"는 단호한 입장을 밝혔었다. 검찰은 현재 계좌추적을 통해 CB 저가발행 과정에서의 자금 출처와 함께 이건희 회장과 계열사 등의 공모 혐의도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경영권의 핵심고리, 불법 단서 드러나면 삼성 지배구조 '치명타'

이번 계좌 추적이 세간의 관심을 끄는 것은 에버랜드 CB의 인수과정 자체가 '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지는 삼성 경영권 승계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검찰의 칼 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삼성은 이재용씨가 최대주주로 있는 에버랜드를 중심으로, 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로 유지되고 있다. 에버랜드는 사실상 삼성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면서,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회사다. 이씨는 96년 12월 에버랜드 CB를 인수한 이후 다음해인 97년 3월 곧바로 주식으로 전환했다. 당시 확보한 25.1%의 에버랜드 지분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또 재용씨 지분 등 이건희 회장의 4남매가 가지고 있는 에버랜드 지분은 50.2%로 절반을 넘고 있다.

결국 법원으로부터 '저가 발행'이라는 판단을 받은 CB 발행으로 이씨 일가는 그룹 지주회사격인 에버랜드 지분을 50% 넘게 확보했다. 검찰이 이에 대한 자금 출처와 함께, 저가발행 과정에서의 공모 혐의 등을 조사하는 것은, 경영 승계 과정의 핵심을 곧바로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 쪽에서 보면 최대의 '위기'인 셈이다.

따라서 검찰의 계좌추적을 통해 에버랜드 CB의 인수 과정의 불법이나 탈세 등의 혐의가 나타날 경우, 삼성에 미치는 파장은 클 것으로 보인다. 그룹의 경영권을 물려주기 위해 최고 경영층이 개입돼 불법과 탈세가 진행됐다는 혐의 자체가 그동안 '도덕성'을 강조해 온 이씨 일가의 정체성을 뿌리째 흔들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상무에 대한 검찰 소환조사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에 소환될 경우 삼성 그룹 이미지도 크게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 또 재용씨가 보유한 에버랜드 지분의 정당성도 더욱 약화될 수밖에 없고, 무엇보다 삼성 지배구조의 도덕성이나, 정당성에 대한 국민적 비판을 다시 불러올 수도 있다.

또 하나의 부담, 참여연대의 'e-삼성' 관련 고발

참여연대도 삼성에 대한 압박 강도를 계속 높이고 있다. 이미 에버랜드 1심 판결로 자신감을 얻은 참여연대가 이번에 이재용 상무를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나섰다. 지난 2001년 당시 삼성그룹 계열사가 이 상무의 인터넷 회사 지분을 매입한 것을 두고, 이 상무를 업무상 배임혐의로 서울 중앙지검에 고발했기 때문이다.

참여연대가 이재용 상무를 검찰에 직접 고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참여연대는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판결 후 참여연대의 후속대응'이라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삼성구조조정본부가 계열사 전체 역량을 동원해 2000년 5월부터 2개월 동안 인터넷기업 14개를 설립했다"면서 "1년 뒤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삼성그룹의 인터넷 부문이 급격히 부실화되자 2001년 7월 당시 삼성그룹 9개 계열사가 이재용씨 소유의 인터넷 회사 지분을 사들였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이어 "당시 삼성 계열사들이 (인터넷 회사 지분을 사들인 것은) 정상적인 투자를 한 것이 아니다"면서 "이씨의 경영권 승계과정의 하나로 추진된 인터넷 사업이 실패할 경우 초래되는 경제적 손실과 (이 상무의) 사회적 명성의 훼손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참여연대는 당시 지분을 인수한 삼성계열사들은 불과 3년만에 380억원 이상의 손실을 봤으며 "이재용씨가 삼성구조조정본부에서 주도한 인터넷 사업의 전 과정을 교사하거나 공모했으며, 이는 업무상 배임죄의 교사 혹은 공동정범의 책임을 져야한다"고 지적했다.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은 "삼성의 인터넷 사업 진출은 이재용씨의 신화를 만들기 위해 진행한 사업"이라며 "에버랜드 (전환사채의) 편법 증여와는 달리 이씨가 직접 개입했기 때문에 관련성을 직접 입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의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후 '삼성 판도라의 상자'에서 과연 어떤 것이 튀어나올지 모두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

"국감 끝나자마자..." 당혹해하는 삼성

▲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그룹 본관건물앞에 내걸린 삼성그릅 깃발.
ⓒ오마이뉴스 권우성

삼성은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삼성국감'이 끝나자마자 검찰의 전격적인 계좌추적 사실이 알려지자 당황해 하는 모습이다. 또 같은 날 참여연대에서 이재용 상무 등에 대해 배임혐의로 추가 고발한 것을 두고,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다.

검찰 수사에 대해, 공식적으로 그룹 차원의 반응은 자제하고 있다. 삼성 구조본 관계자는 "검찰의 계좌추적 등 수사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면서 "(계좌추적) 사실 여부 등을 포함해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검찰로부터 계좌추적 등에 대해 어떤 내용도 통보를 받은 바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건은 우리쪽에서도 2심에 항소를 해놓은 상태이고 유죄가 확정된 것이 아니지 않느냐, 향후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검찰이 일상적인 수사활동까지 언론에 공개하면서, 여론몰이를 하는 것 아니냐며 내심 불쾌한 기색도 보이고 있다. 구조본 관계자는 "검찰의 계좌추적은 수사의 일상적인 행위 아니냐"면서 "관련 사안이 현재 2심에 계류돼 있고, 계좌추적 사실을 언론에 알린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할 뿐"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의 이재용 상무 등을 고발한 것에 대해서는 언급할 가치가 없다는 입장이다. 인터넷 회사 지분을 계열사가 인수한 것은 전적으로 경영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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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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