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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 석계동에 위치한 태릉 민방위교육장은 시설이 현대화 되어 있다. 직접 소화기로 불 끄는 연습을 하지만 수용인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성북구 석계동에 위치한 태릉 민방위교육장은 시설이 현대화 되어 있다. 직접 소화기로 불 끄는 연습을 하지만 수용인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 김규환

변화의 중심에 선 민방위 교육

훈련이라면 치를 떠는 내 성격에 군복만 봐도 짜증이 나고 어떻게 한번이라도 벗어나볼까 별 궁리를 다 해보았다. 어찌어찌 대한 남아로서 군대와 관련된 모든 사항을 완수하고 어엿한 어른으로 대접받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군대를 늦게 가는 바람에 예비군교육을 8년 동안 마치고 서너 해 흘렀다. 한결 대한민국에 산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도록 마음이 여유로웠다. 명단이 누락되었던지 민방위대원 편성이 되지 않아 살다보니 이 나라에서 혜택을 받아보기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여기며 태평성대를 구가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이 자유, 구속되지 않은 행복감이라니!

한 동안 잊고 지냈던 소집 통지서가 올 봄에 날아왔다. 또 하나의 관문인 민방위교육이다. 북한 노농적위대에 필적하는 대항마를 키우겠다는 애초 뜻은 굉장한 변화를 거쳐 이젠 군사교육이나 이념 따위를 선전하는 도구에서 생활 현장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안전사고에 대비한 탈바꿈을 하여 꽤나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몰라보게 바뀐 것은 정권안보가 아닌 지자체장의 치적을 자화자찬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는 점이다. 학원을 우리 구에 유치하였느니, 상습침수구역이었던 어디 어디 일대를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한 점을 부각한다. 두 차례 갈 때마다 대동소이했다.

취임한 지 3년밖에 되지 않은 구청장이 마치 자신이 다 해결한 듯 선거운동을 할 때는 실로 따지고 싶었지만 또 튄다는 소리 들을까봐 참는 게 약이라는 격언을 떠올리며 훈련에 임했다. 다음 순서로 이른바 말짱하던 사람 졸게 하는데 특효인 마약 정신교육은 여전하였다.

시장판보다 더 소란하고 난장판인 어른들 구경하려면 아침에 민방위교육장을 가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연차가 짧아 태릉교육장에 몸소 납신 우리는 안전핀을 뽑고 소화기로 직접 불을 꺼보는 소방훈련, 심폐소생술을 실제 체험하기도 했다. 대피 요령도 시청각 교육을 곁들이니 여기까지는 좋았다.

민방위 교육이 달라진 점은 또 있다. 날짜를 선택할 수도 있고 어느 지자체에서나 그 해 훈련을 소화하면 인정된다는 측면에서는 꽤나 민간인 취급을 조금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국가 동원 교육이 언제나 끝날지 모르겠지만 유지되는 동안이라도 획기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국가 동원 교육이 언제나 끝날지 모르겠지만 유지되는 동안이라도 획기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 김규환

민방위 교육도 강남북 차별이?

하지만 나는 두 가지 측면에서 꽤나 실망을 금치 못했다. 한 가지는 민방위교육에서마저 강남북 격차가 크다는 걸 발견했으니 강남으로 이사 가지 못하는 내 신세가 퍽이나 서글펐다. 그건 다름 아닌 강남구와 서초구 등에서는 작년부터 집이나 직장에서 인터넷으로 출석을 체크하면 교육 참가를 인정해준다.

하지만 내가 사는 성북구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일말의 기대를 안고 온라인 교육을 받아볼 참에 "그럼 우리도 강남구에서 실시하는 사이버교육을 받을 수 있나요?"라고 물었더니 그건 제외라고 한다. 왜냐고 물었다. "아직 우리 구 정보화수준으로는 강남구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컴퓨터 없는 집들도 꽤 있고요."

명색이 수도 서울 그것도 문화와 전통이 어우러지고 4년제 종합대학이 7개나 있는 성북구 수준이 이거란 말인가. 컴퓨터가 없어서 그런다니 실태나 제대로 파악하고서 그러는지 기가 찼다. 다음에 가면 대원을 상대로 설문조사라도 벌일까 보다.

인공호흡법만 제대로 알고 있어도 여름철 사고를 줄일 수 있다.
인공호흡법만 제대로 알고 있어도 여름철 사고를 줄일 수 있다. ⓒ 김규환

여성이 민방위 교육을 더 받아야 한다

또 한 가지가 있다.

하반기 교육도 뻔할 뻔자라 여기고 30여 분 전에 억지로 집을 나섰다. 여자도 군대에 가야 한다는 헌법소원이 한 여성에 의해 청구되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던 9월이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걷던 중 억지로 가고 싶지 않은 마음과 상반기에 받은 내용이 퍼뜩 떠올라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민방위 교육 여자들이 더 받아야 되는 것 아니오?" 한참 뒤 답신이 왔다. "메롱~."

어? 정말 진심으로 보낸 것인데? 집에서 주부는 주로 여성이고 남자들은 군대에서 화생방 교육과 응급처치 방법을 줄기차게 반복해서 몸에 익혀왔지만 여고 졸업이나 88학번까지 대학에서 교련수업을 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까먹었고 실생활에 유익할 것인데도 나에게 "메롱~"이라며 혀를 내밀다니. 저녁에 보면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여성이 군대에 가야 남성과 대등한 관계가 정립될 것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모병제인 징병소집 자체를 폐지하고 군축을 내세워 평화시대, 통일시대를 열어가야 할 시점에 여성마저 군대를 보내다니 시대 흐름에 역행할쏜가.

굳이 여성이 가고 싶다면 일부조항을 개정하여 일반 병으로 군대에 입대하도록 하면 된다. 다만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히 엄중한 국제 정세에 살아남는 방법은 양쪽 다 군비로 눈먼 돈이 물 쓰듯 소비되는 상황 타개를 위해 소수정예 현대화된 군으로 거듭나서 통일 이후에도 자위(自衛) 능력을 키우는 게 급선무다.

소방법에 따라 소화기를 비치하기는 하나 분기마다 흔들어줘야 한다. 막상 불이났을 때는 당황하여 잘 알고 있는 사람도 안전핀 뽑는 걸 잊는 경우가 많은데 손잡이를 잡고 뽑으면 뽑힌다. 기초가 튼튼해야 재난을 막을 수 있다.
소방법에 따라 소화기를 비치하기는 하나 분기마다 흔들어줘야 한다. 막상 불이났을 때는 당황하여 잘 알고 있는 사람도 안전핀 뽑는 걸 잊는 경우가 많은데 손잡이를 잡고 뽑으면 뽑힌다. 기초가 튼튼해야 재난을 막을 수 있다. ⓒ 김규환
민방위훈련 이야기하다 다른 곳으로 빠졌다. 하지만 분명히 이유가 있다. 여성과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위해 민방위대를 적극 활용하자는 제안을 하고 싶다. 총을 들어야만 나라를 지킨다는 생각도 바꾸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아이까지 낳을 수 있으니 남자보다 한 가지 능력이 더 있는 여성 인력을 굳이 방치할 이유가 없잖은가.

아직 집안 살림 주도권은 여성에게 있고 가스나 아이들 사고의 경우 여성에게 더 많은 짐이 지워져 있다. 이에 따라 여성 혼자만 있을 때에 빈발하는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치하는 차원에서라도 남성 대원 편성 연수(年數)를 줄이든가 1년에 두 번 있는 1~4년차 교육을 남녀 교대로 받도록 하자. 정히 안 된다면 세대당 1명이 받도록 추진하면 좋겠다.

도시 생활에는 대형 참사가 늘 잠재하고 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스스로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생활형 교육이 절실하다. 약자에게 대처법을 강화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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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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