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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리가 파리에 나타났다. 제33차 유네스코 총회에 상정될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한 협약'을 지지하기 위해 파리를 방문한 문씨를 지난 8일 저녁 파리 15구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문소리가 파리에 나타났다. 제33차 유네스코 총회에 상정될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한 협약'을 지지하기 위해 파리를 방문한 문씨를 지난 8일 저녁 파리 15구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 박영신

문소리가 파리에 나타났다.

제33차 유네스코 총회에 상정될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한 협약(이하 문화다양성 협약)'을 지지하기 위해 파리를 방문한 문소리는 오는 10일 오후 3시(현지 시각) <로이터> <아에프뻬(AFP)> <르 몽드> 등 전 세계 언론을 대상으로 한 기자회견에 세계 문화예술인 대표의 한 사람으로 초청됐다.

문소리는 여기서 한국 영화인들과 문화예술인들이 스크린쿼터라는 문화 정책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온 과정과 주권국의 문화정책 수립의 자주권을 보장하는 문화다양성 협약의 절박함을 알리고 예비 초안의 수정 없는 채택을 호소할 계획이다.

<시골에서의 일요일>(1984)로 칸 국제영화제 감독상, <미끼>(1995)로 베를린 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하는 바 있는 프랑스의 거장 감독 베르트랑 따베르니에, 말 그대로 아프리카 영화의 수호자로 불리는 말리의 감독 술레이만 시세, '아프리카 재즈의 선구자' '최고의 아프리카 재즈맨' '카메룬의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는 마누 디방고 등 총 8명이 세계 문화 예술인 대표로 문소리와 자리를 함께 한다.

기자회견을 앞둔 지난 8일 저녁 파리 15구의 한 식당에서 문소리를 만났다. 그는 스크린쿼터 문제에 대해 "내가 발을 딛고있는 분야이고 내 정체성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흔쾌히 초청에 응했다"며 세계 문화의 심장부라 할 만한 파리에서 한국의 스크린 쿼터 제도를 소개하게 돼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거리낌 없고 당찬 모습이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신인 감독과의 작업, 한국영화계에 대한 의무감 때문"

지난해 7월 민주노동당이 마련한 영화 <화씨 9/11> 시사회장에서 당원이자 영화배우인 문소리씨가 무대에 나와 인사하고 있다.
지난해 7월 민주노동당이 마련한 영화 <화씨 9/11> 시사회장에서 당원이자 영화배우인 문소리씨가 무대에 나와 인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한국 영화에서 여배우를 위한 견고한 배역이 여전히 취약한데, 여성이 부각되는 작품 속에는 문소리씨가 있다. <오아시스>와 <바람난 가족>(2003. 임상수)이 대표적인데 문소리씨에게는 매 영화가 일종의 도전으로 보인다. 이미지 변화를 위해 혹은 재능 있는 시네아스트들과 함께 하는 작업을 즐긴다고 할까?
"나는 태생 자체가 회사에서 이미지를 만들고 그것을 팔 목적으로 키워진 배우가 아니기 때문에 전면에 내세울 이미지라는 것이 없었고 <오아시스>를 하면서는 이미지를 만들 기회마저 박탈된 상태였다. 주변에서 이제 영화를 더 못할 거라고 우려했을 정도였다.

이창동 감독이 나를 기용하는 용기를 발휘했듯이 나 또한 과감하게 신인감독이랑 작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무 같은 게 마음 한 곳에 있다. 이 감독이 나를 캐스팅했을 때 제작사나 투자자들로부터 적잖은 반대에 부딪쳤던 것으로 안다. 이 감독에게는 스타를 쓰지 않고도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신념과 스타 시스템에 반기를 들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한국 영화에 받아들여진 것은 노무현씨가 대통령이 되고 강금실씨가 법무장관이 되는 등 사회적인 분위기와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변화된 사회적 풍토가 나와 잘 맞아떨어진 것이다.

이창동 감독이 <박하사탕>(1999) 촬영 때 '한국 영화계가 너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으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기획 상품으로 가치가 없었던 내가 <박하사탕> <오아시스>를 거쳐서 <바람난 가족>을 오가며 배우로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한국 사회와 한국영화계의 변화가 주효했기 때문임을 인정한다.

지금은 문소리를 캐스팅하면 큰 돈은 아니더라도 영화가 돌아가는 환경은 만들어지니까, 상업적으로 그다지 가능성이 없는 시나리오라고 하더라도 신인 감독과 작업할 수 있어야 하고, 한국영화에서 보여지는 여자 캐릭터의 전형을 깨는 캐릭터를 소화하고 소개하는 임무가 작용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좋은 작품 제의를 잘 받은 것이다."

- 문소리씨는 박찬욱·봉준호 감독들과 함께 민주노동당 당원이고 스크린쿼터 문화연대 대외협력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문화다양성협약 채택을 위해 파리에 연사로서 참가하는 것, 현재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스크린 쿼터 축소를 둘러싼 한·미 커넥션을 고발한 다큐멘터리 <위험한 정사, Vol 2004>(2005. 이훈규)에서 배우 봉태규씨와 나란히 내레이션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 같은 활동의 배경 혹은 신념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활동이 그 같은 목소리의 일환으로 비치기를 원한다. 옳다고 판단되는 일에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힘이 되고 싶다는 소박한 생각이다.

자신이 소속된 정당을 밝히는 배우들이 그다지 없었기 때문에 내 거동이 한국 사회에서 확대 해석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당원으로 활동하는 것일 뿐인데 의도보다 훨씬 크게 반향을 일으켰다. 또 영화로 관객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에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고 또 자제하는 부분도 있다. 최소한 내가 반드시 해야할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있는데 당원이라는 것만 강조돼 배우로서 나의 삶을 제한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도 있다."

노 대통령 면전에서 한 말 "역사에 문화 팔아먹은 대통령으로 기억되지 않게..."

지난 7월 문소리씨가 대종상영화제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레드카펫을 밟으며 식장에 들어서고 있다.
지난 7월 문소리씨가 대종상영화제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레드카펫을 밟으며 식장에 들어서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재밌는 일화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난 2003년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있었던 일 말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알고 싶다.
"1999년 데뷔하자마자 모든 영화인들이 총파업으로 검은 옷을 입고 광화문 사거리에 모인다고 해서 스크린쿼터가 뭔지도 모르고 그냥 나갔다. 신인배우가 뭘 알겠나? 임권택 감독을 필두로 한석규, 정우성, 이정재, 심은하씨 등 거의 모든 영화인이 나와 있었다. 그때부터 스크린쿼터가 뭔지 알게 됐고 관련 모임이 생기면 참가하게 됐다.

이창동 감독이 문화부장관을 하던 시절인 2003년 겨울, 노무현 대통령이 영화인들의 의견을 편하게 들어보고 싶다고 해서 정지영, 명계남, 안성기, 장미희씨 등 영화인 9명이 청와대 저녁 식사에 초대된 일이 있다. 2002년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이후로 그런 공식적인 자리에 많이 불려다녔던 나는 젊은 영화인을 대표해 동행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아무리 우리를 허물 없이 대해도 식사하기에 편한 자리가 결코 아니다보니 대화가 효과적으로 진행되지 않는 분위기였다. 한마디도 하지 않고 밥만 먹다가 식사가 끝날 무렵 '오늘의 만남이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날 것'이라는 불안감이 들었다. 국가를 이끄는 대통령과 젊은 혈기뿐인 나의 입장이 분명 다르다는 건 알았지만 용기를 냈다.

이창동 감독이 장관직을 위해 영화계를 떠날 때 나와 몇마디를 나눈 일이 있는데 '감독님은 장관 일을 하셔야 한다, 역사가 당신을 부를 때는 당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잠시 접고 가시라'고 했었다. 그 사실을 대통령께 털어놓으면서 대통령도 '역사에 문화를 팔아먹은 대통령으로 기억되지 않게 해주십시오'라고 했다. 대통령은 그 말을 듣고 '허허'하고 웃으셨던 것 같은데, 아마 맹랑하다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다. 함께 오신 분들이 많이 놀랬다고 말했다. 섬뜩했다는 반응도 있었다."

"다양성 문제는 정부가 나서야"

- 스크린쿼터제는 한국 영화인들의 밥그릇 지키기라거나 편협한 국수주의라는 비난을 듣기도 한다. 현장에서 할리우드의 위협을 피부로 느낀 적이 있나?
"모든 것은 밥그릇 지키기에서 시작하고 이것은 정당하다. 기본적 생존권을 보장 받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권리며 싸움은 거기에서 시작된다. 싸우다보니 반대 입장의 논리가 하나의 빌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배우게 된다.

<고질라>(1998. 롤랜드 에머리히) 때문에 <여고괴담>(1998. 박기형) 첫번째 이야기가 극장에서 바로 간판을 내린 일을 기억할 것이다. 내가 일하는 동안에는 스크린 쿼터가 존재해왔고 또 한국 영화가 역동적으로 성장해왔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내 생계에 위협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할리우드의 독과점을 당해낼 수 없을 거라는 것은 절실히 느낀다."

- 스크린쿼터를 옹호하는 측은 미국 영화가 아닌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의 다양한 영화도 보고 싶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국의 스크린쿼터제는 한국 영화 상영을 강제할 뿐이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보호하고자 하는 한국 영화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미국 영화가 차지할 것이 뻔하지 않나? 이러면 다양한 문화의 순환과 교류를 기대하기는 힘들고 스크린쿼터제가 오히려 문화 다양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지 않겠나?
"한국 영화·아프리카 영화가 공존하는 것이야말로 세계 문화의 다양성에 이바지하는 것이나, 한국의 국내 시장의 다양성 문제는 다른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 스크린 쿼터제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할리우드 영화의 독과점을 견제하는 장치로 '한국 영화 대 미국 영화'의 대립 구도를 설정한 것이다.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없는 현실은 스크린쿼터가 아닌 다른 제도로 보완해야 하고 그것은 정부가 당장 나서야 하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스크린쿼터와 할리우드의 대립은 세계 문화 운동의 상징이 됐다"

- 그럼 반대로 생각해 보자. 방송 콘텐츠 쿼터 이야기인데, 이를테면 현재 중국·대만·일본 등지로 수출되고 있는 한류, 즉 우리의 TV 드라마, 대중 음악이 상대국의 강력한 방송 쿼터에 막혀 지금과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문화 다양성 협약에 반대하는 경향을 보인 일본의 입장은 한류 차원에서 오히려 우리에게 이로울 수도 있지 않을까?
"한쪽에서는 한류에 편승해 돈을 벌면서 한쪽에서는 스크린쿼터를 말하는 게 이중적으로 보일 수 있다. 내가 일명 한류스타가 아니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말한다는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10년 안에 중국의 거대한 문화상품들이 한반도를 공략할 것이라는 전망도 팽배해 있다.

문화다양성 협약 13조가 지적하는 것이 '공동 제작의 확대'인데, 중국에 우리 문화를 알리고 중국 시장으로 진출하려면 미국과 같은 패권주의적 발상으로 가면 안된다는 거다. 중국과 한국이 공동 제작 협정을 체결하면 되는 것이고 문화다양성 협약은 이를 강조하고 있다.

프랑스는 48개 국가와 공동 제작 협정을 맺었으나 한국과는 아직 체결하지 못한 상태다. 중국과 한국이 일정 비율로 공동 제작한 작품은 중국과 한국 양국에서 스크린쿼터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정체성도 지키면서 다양성도 확대해가는 것이다. 균형 잡힌 교류를 하려면 '우리의 것'이 있어야 한다. 만약 한류가 대만 시장의 80~90%를 차지하게 되면 대만 정부는 제약을 둘 수 있고 정당한 일이다. 이것이 국수주의로 이해되면 곤란하다."

지난 2003년 3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 반대 기자회견에 영화배우 문소리(오른쪽)씨가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왼쪽은 박재동 화백.
지난 2003년 3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 반대 기자회견에 영화배우 문소리(오른쪽)씨가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왼쪽은 박재동 화백.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스크린쿼터제의 부작용도 없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면 영화가 어지간하면 극장에 간판을 걸 기회가 주어지니 성공한 영화의 질 낮은 아류가 횡행하는 문제 같은 것 말이다. 이것은 지금도 지적되는 문제 아닌가?
"쿼터제가 시장의 논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영화의 위기는 상업적인 시장의 논리만 있고 공적 영역이 없다는 것이다. 저예산, 예술, 독립, 작가주의 영화 부분들은 시장의 논리로 가면 안된다. 프랑스처럼 공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 영화는 상품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를 동시에 갖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2000여 개 제작사가 매년 70~80편의 영화를 만들어 낸다. 한국 영화끼리도 경쟁이 치열하다. 미디어센터나 예술영화 전용관을 지원하고 확대하면 된다. 현존하는 예술영화 전용관들도 정부의 지원이 없어 문을 닫아야 하는 실정이다. 정부가 의도만 있다면 언제든지 보완할 수 있는 문제다.

지금은 국제통상법상 덤핑에 대해 말해야 한다. 3500억 들인 <타이타닉>(1997. 제임스 카메론)과 30억 들인 한국 영화가 어떻게 시장에서 똑같이 7000원에 판매되느냐 말이다. 힘의 논리에서 대결이 안되는 거다."

- 이번 회의에 연사로 참가하는 각오 한마디 한다면?
"우리나라의 스크린쿼터와 할리우드의 대립은 세계 문화 운동의 상징이 됐다. 내 일터는 소속사가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현장이다. 한국의 배우라는 내 위치에서 문화 다양성이 갖는 의미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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