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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다리실베짱이.
검은다리실베짱이. ⓒ 권용숙
여유로운 일요일(9일) 낮. 한 쪽엔 잘 익은 들깨를 베어 말리느라 길게 쌓아 놓고 혹 새들이 쪼아 먹을까 초록 그물로 덮어 놓았고, 밭엔 빈 등걸만 남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산과 산길밭 사이엔 초록 네트로 담을 쳐놓았다. 바로 이 초록 네트가 베짱이의 놀이터이자 치열한 삶의 터전이다.

지나면서 보니 메뚜기도 짝짓기를 하던데 혹시 베짱이도 그래 주면 얼마나 좋을까. 멀리서 보니 베짱이 두 마리가 네트에 붙어 있다. 야홋~! 그러면 그렇지. 카메라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가까이 가본 나는 일주일 만에 다시 만난 베짱이를 보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검은다리실베짱이 암놈 식사 중.
검은다리실베짱이 암놈 식사 중. ⓒ 권용숙
왼쪽으로 고개 돌린 듯한 검은다리실베짱이.
왼쪽으로 고개 돌린 듯한 검은다리실베짱이. ⓒ 권용숙
누가 볼까 머리 깊게 박고 먹다.
누가 볼까 머리 깊게 박고 먹다. ⓒ 권용숙
바로 베짱이가 베짱이를 먹고 있었다.

난 곤충학자는 아니지만 베짱이가 베짱이를 뜯어 먹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눈앞에서 생생히 지켜보며 이것도 하나의 자연의 섭리라고 생각하자고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자세히 살펴 보니 위에 베짱이는 꼬리쪽에 낫처럼 굽은 산란관이 있었다. 암컷이다.

그래, 풀, 꽃, 이슬만 먹다 보니 단백질이 부족했나 보지. 튼실한 새끼를 낳기 위해 영양 섭취를 하는 걸 게야~ 베짱이가 먼저 죽으면서 유언을 했는지도 모르지. "춥고 배고프고 먹을 것이 없거들랑 앞으로 나올 내 새끼들을 위해 나를 먹어다오~!"

먹다 남은 베짱이와 먹은 후의 베짱이(극과 극).
먹다 남은 베짱이와 먹은 후의 베짱이(극과 극). ⓒ 권용숙
베짱이는 다른 베짱이 배 부분을 거의 다 야금야금 뜯어 먹었다. 배가 부른지 먹다 남은 베짱이를 뒤로 한 채 검은 긴다리를 쭉 뻗어 자리를 뜨고 있었다.

야비한 놈! 속으로 다시 베짱이가 잔인해 욕을 하는데 그 놈이 갑자기 내 카메라 위로 뛰어올라 앉아서 톡 튀어나온 눈으로 날 노려 봤다. 접사를 한다고 카메라를 너무 가까이 들이 밀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친해도 그렇지 뭘 이쁘다고 카메라 위에까지 뛰어 오르는지 그 순간을 촬영하지 못하고 멍하니 당한 생각을 하니 분하다. 앞으론 카메라 두 대를 가지고 다녀야 할까 보다. 카메라 위에 겁도 없이 앉아 버린 베짱이를 동부콩 줄기 위에 떨어 뜨려 놓았다.

그때서야 참았던 소변도 마렵고 배도 고프다.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사진 찍는 나를 노려 보다.
사진 찍는 나를 노려 보다. ⓒ 권용숙
카메라에 앉은 베짱이. 콩줄기 위에 떨어뜨리다.
카메라에 앉은 베짱이. 콩줄기 위에 떨어뜨리다. ⓒ 권용숙
집에 들어오며 막내에게 물었다.

"오늘 엄마가 찍은 사진 제목이 뭔줄 알아?"

막내가 대답했다.

"베짱이의 점심식사지~"
"어떻게 알았어?"
"당연한 거 아냐?"
"짜식~"

사진도 보지 않고 어떻게 알았지. 오늘부터 일주일간은 우리 식구들은 또 베짱이 이야기를 귀가 아프도록 들어야 될 듯하다. 하지만 난 베짱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신이난다. 집에 와서 베짱이에 대해서 공부도 했다.

"검은다리실베짱이 먹이는 분꽃나무 등 식물의 꽃잎, 꽃가루, 잎사귀 등을 먹는 초식성 곤충이다."

백과사전마다 검은다리 실베짱이를 소개하는 말이다. 백과사전에 나도 한줄 넣고 싶다.

검은다리실베짱이는 가끔 베짱이를 먹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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