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고기복
"무기오노는 일요일에 처음 쉼터에 왔는데, 오기 전에 전화로 온다고 했대요. 그런데 정작 자신들이 쉼터에 도착하자 목사님이 안 계셨고, 목사님이 쉼터에 돌아오고 나서는 한참을 기다려서야 상담을 받았대요. 그리고 상담을 받았지만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다고 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쉼터 회원은 길게 상담하면서 세세히 묻고 도와줄 방법을 찾는데 멀리서 온 자신들은 컴퓨터 앞에 앉지도 않고 건성으로 대했다는 거예요. 자신은 약속을 하고 왔는데도 처음부터 다른 단체에서 상담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에 상담을 받을 생각이 없었는지 상담 시간도 짧고 물어보는 것도 별로 없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목사님이 사람을 차별한대요."

그 말을 듣고 나서 무기오노가 누군지 기억이 났습니다. 지난 일요일 인도네시아 공동체 축구 시합이 있어서 운동장으로 막 출발하려고 할 때에 전화를 해 왔던 사람이었습니다. 상담하러 방문해도 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전화상이었지만 먼저 지금 일하는 지역이 어딘지 물었고, 그는 '화성'이라고 답했습니다. 그 말에 저는 가까운 수원이나 발안 같은 지역에도 외국인지원단체가 있으니, 그곳을 찾아보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미 다른 곳에 가 봤고,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전화가 길어질 것 같아 축구 시합이 있어서 잠시 외출할 건데, 돌아오는 시간이 언제 정도일 것이라는 답변을 하고 끊었습니다.

축구를 끝마치고 쉼터에 돌아오자, 무기오노와 함께 한 여덟 명이 쉼터 밖에서 담배를 피우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마 전화를 끊고 바로 출발했던 모양이었습니다. 잠시 숨을 돌리고 나서 상담을 시작하려고 하자, 인도네시아 공동체 사회 담당인 수찝또(Sucipto)가 미리 받아 적은 상담일지를 가져와서 순서를 말해 줬습니다.

순서에 따라 상담을 진행하는데, 무기오노와 그 친구들 바로 앞에 상담을 했던 수리완(Suriwan)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해외취업을 지원했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약골이었습니다. 그는 제가 인도네시아에 있을 때 2년간 살았던 지역 출신이었습니다. 그런 그를 말로나마 위로해 보고자, "내가 족자에 있을 때, 코흘리개 초등학생이더니 많이 컸네. 이제 못할 일 없겠네" 하며 마치 어릴 적에 그를 보았던 것처럼 농담을 하며 웃음꽃을 피웠습니다.

수리완 상담이 끝나고 들어 온 무기오노와 친구들은 사무실에 다 들어오지 못해 거실로 자리를 옮겨 앉은뱅이 책상 위에서 사연이 뭔지 듣기로 했습니다. 책상에 둘러 앉아 상담을 진행하려 하는데, 누군가 "Ada prioriti utk anggota sini? 쉼터 회원에게 상담 우선권이 있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대수롭지 않게 "상담은 접수순서대로 해요. 여기 회원들은 공동체 창립할 때 회의했던 친구들인데, 문제가 있어서 오진 않아요. 축구도 하고 놀기도 하고 그러지…" 하고 지나갔습니다.

사연을 들어본 결과 그들은 근무처를 변경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핑계로 자신들이 본국에서 계약한 회사대표와 실제 일하는 회사대표가 다르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그들이 갖고 온 업체 대표 명함과 근로계약서를 확인해 본 결과, 이름이 다른 것은 확인됐지만 주소나 전화번호 등이 똑같았습니다. 계약서 체결 후 입국 중간에 대표 명의 변경이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해주며, "어느 회사라도 한꺼번에 아홉이나 되는 인력이 그만두려 한다면 말린다. 근무처 변경을 할 수 있는 요건이 안 된다는 건 다른 곳에 알아봤으니 잘 알 거 아니냐. 그냥 솔직하게 더 좋은 직장 얻고 싶어서 회사 옮기고 싶다고 하지 이런 핑계는 아무도 안 들어준다" 하며 상담을 마무리지었습니다.

무기오노와 그 친구들 중 몇이 상담을 끝냈지만, 휴일인 개천절과 월요일까지 쉼터를 이용했던 모양입니다. 그 와중에 자신들이 차별을 당했다고 털어 놨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불평에 대해 쉼터를 자주 이용하는 친구들이 웃기만 할 뿐, 자기편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화까지 냈다는 것이었습니다. 말을 마친 수뿌리야디는 이마에 손가락 하나를 갖다 대며 생긋 웃고는 나갔습니다. 무기오노가 이상하다는 뜻이었습니다.

수뿌리야디가 나간 후, 저는 '차별'이라는 단어 때문에 머리가 '띵'해졌습니다. 누군가를 차별한다고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 차별하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상대방이 본의 아니게 차별을 당한다고 느끼게 했다면 그게 차별일까? 하는 의문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회사 생활이 힘들었으면, 회사 대표 이름이 틀리다는 핑계를 대서라도 근무처를 변경하게 해 달라고 여기 저기 돌아다녔을까? 하는 생각은 상담을 하며 왜 해 보지 않았을까? 나는 이미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 이렇게 무관심할 정도로 매너리즘에 빠졌는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은 왜 나를 차별하는가?" 하는 질문이 가슴을 찌릅니다.

덧붙이는 글 | 조금 전(저녁) 무기오노와 쉼터 돌아가는 얘기를 잠시나마 나눴습니다. 그는 사흘 동안 쉼터에 찾아오는 사람들과 저의 일상을 지켜봤다고 했습니다.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저 역시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