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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 11월 28일 김영일 한나라당 사무총장 등이 나서 '국정원 도청자료'라며 관련 문건을 공개하고 있다.
지난 2002년 11월 28일 김영일 한나라당 사무총장 등이 나서 '국정원 도청자료'라며 관련 문건을 공개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영균

지난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의원들은 무려 5회에 걸쳐 국가정보원 도청의혹을 제기했다. 대개는 국회의원 면책특권을 이용해 국정감사 등 주로 회기 중에 이뤄졌지만, 선거 막판에는 사무총장(김영일 의원, 11월 28일)과 선거대책 부위원장(이부영 의원, 12월 1일)이 직접 나서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는 형식으로 '도청'을 쟁점화했다.

그 가운데 일부는 최근 국정원의 '8·5 고해성사'(과거 불법감청 실태보고)와 그 이후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검찰의 진술 청취로 기정사실화 되었다. 일부 직원들이 한나라당이 도청자료라며 공개했던 문건의 관련 내용을 자신들이 듣고 통신첩보로 작성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것이 불법인지 편법(관행)인지를 떠나 이 사안을 단순화하면, 한나라당이 공개한 도청 문건의 일부는 국정원 감청결과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제기되는 본질적인 의문은 이런 것이다.

국가정보원은 감사원과 함께 대통령 직속기관이다. 다만 헌법기관인 감사원은 대통령 직속기관임에도 업무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반면에 국정원은 철저히 대통령의 안보결정과 정책판단을 보좌하기 위해 존재하는 예속기관이다. 국정원은 또한 공작업무를 수행하는 비밀정보기관으로서 어떤 기관보다도 보안을 생명으로 삼는 조직이다.

국정원과 한나라당의 두 가지 공통점

한나라당이 지난 대선 전에 '도청증거'라며 공개한 문건.
한나라당이 지난 대선 전에 '도청증거'라며 공개한 문건.
그런데 대통령에게만 보고하는 직속기관이고, 복사와 출력 인쇄가 안되는 전용 단말기로만 읽을 수 있도록 엄격히 관리하는 이른바 'S(Special) 보고'라고 부르는 감청자료가 비밀인데도 그것이 왜 야당인 한나라당에 집중적으로 건네졌느냐는 점이다. 그들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 대목에서 이어지는 질문 하나. 국가정보원과 한나라당의 공통점은? 첫째, 둘 다 국가안보를 최우선으로 삼는 보수집단이라는 점이 닮은꼴이다. 따라서 한나라당으로의 정보 유출은 서로 '코드'가 통하는 보수집단이라는 동질성과 선거 때가 되면 나타나는 한나라당의 집권 가능성에 '베팅'을 하는 줄 서기 등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어딘가 모르게 '허전'하다. 말이 정보 유출이지, 국정원 직원들이 업무상 지득한 정보를 외부에 유출하는 것은 파면 및 구속 사유에 해당하는 '위험'한 행위인 만큼 한나라당과 일심동체인 '빨대'가 없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두 번째 공통점은? 구성원들의 면면을 보면, 놀랍게도 두 집단에서 근무한 경험을 공유했던 '인연의 끈'이 지난 70년대부터부터 현재까지 끊어지지 않고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가 국정원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나라당 보수파 의원들의 경력을 분석한 결과이다.

한국 사회는 학연과 지연 그리고 직장연 등 이런저런 연고의 그물망이 씨줄과 날줄로 촘촘이 엮인 연줄사회이다. 한국 사회의 특징인 '끼리끼리 문화'와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도 인연의 끈과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이제 비로소 앞서의 본질적 의문이 풀린다.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대표적 보수집단은 군과 검찰이다. 따라서 직업군인들과 검사들 모두에게 청와대와 국가 정보기관 파견 근무는 대표적인 출세 코스였다. 특히 검사들에게 청와대와 국정원 파견 근무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전형적인 출세 코스였다. 청와대에서는 주로 특수부 검사들을 선호한 반면에 국정원에서는 주로 업무 연관성이 밀접한 공안부 검사들을 선호했다.

14년 근무하고 기조실장 지낸 김용갑, 12년 근무하고 차장 지낸 정형근

원조 보수파...군 출신인 김용갑 의원은 중앙정보부 시절인 71년부터 85년까지 14년 동안 안기부에서 근무했다.
원조 보수파...군 출신인 김용갑 의원은 중앙정보부 시절인 71년부터 85년까지 14년 동안 안기부에서 근무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나라당 내에서도 '원조 보수파'로 꼽히는 김용갑 의원은 중앙정보부 시절인 71년부터 85년까지 14년 동안 안기부에서 근무했다. 밀양농잠고·육사(17기)를 졸업한 김 의원은 장교 임관 10년만에 중정 산하 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겨 80년 신군부가 등장한 이후 국가안전기획부 감찰실장과 기조실장을 역임했다. 김 의원은 이후 5, 6공에 걸쳐 청와대 민정수석을 맡았다가 총무처 장관에 기용되었다.

국정원 파견 검사의 '원조'는 김기춘 의원이다. 경남고·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김기춘 의원은 중앙정보부 시절인 74년 4월부터 79년 2월까지 대공수사국장 등으로 근무했다. 김 의원은 특히 중정 파견 수사검사 시절에 재일교포 문세광의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 수사를 직접 담당했다. 이후 청와대 법률비서관으로 근무한 김 의원은 검사장, 검찰총장, 법무장관 등으로 승승장구했다.

정형근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의 '평가절하'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내에서 국정원 인맥이 가장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자타가 공인하는 정보통이다. 김기춘 의원의 경남고·서울대 법대 후배인 정 의원은 김 의원과 비슷한 코스를 밟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국정원으로 '시집'(파견) 갔다가 다시 '친정'(검찰)으로 돌아오는 다른 검사들과 달리, 정 의원은 친정(75-83년)에서보다 시집(83-95년)에서 더 오래 살았고 친정으로 돌아오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정 의원의 단출한 친정 경력과 대비되는 화려한 시집 경력에서도 재확인된다. 정 의원은 친정생활 8년 동안 부산지검→춘천지검 강릉지청→서울지검→수원지검→서울지검을 전전하며 평검사로만 지냈다. 반면에 83년에 안기부 대공수사국 법률담당관으로 시작한 시집생활 12년 동안에는 제1차장실 법률담당 보좌관→대공수사국 수사2단장→대공수사국장→수사차장보→제1국장(기획판단국장)→제1차장(국내담당)으로 이어지는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어쩌면 그가 낙마하게 된 '지자체 선거 연기 문건' 파동만 없었더라도 김영삼 정부에서 안기부장까지 했을지도 모른다. 또 97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승리했다면 그에게 이회창 정부 초대 안기부장 자리가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의 오랜 시집생활의 결과로, 파견근무 시기가 정 의원보다 앞선 김용갑·김기춘 의원을 제외한 다른 한나라당 의원들은 죄다 정 의원보다 '잔밥수'가 적은 후배들이다.

'우리가 남이가'...정형근 의원과 강재섭 원내대표가 지난 7월 5일 김승규 국정원장후보 인사청문회에서 뭔가 논의하고 있다. 검사 출신인 두 사람은 안기부에서 함께 근무했다.
'우리가 남이가'...정형근 의원과 강재섭 원내대표가 지난 7월 5일 김승규 국정원장후보 인사청문회에서 뭔가 논의하고 있다. 검사 출신인 두 사람은 안기부에서 함께 근무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강재섭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85년 5월부터 88년 4월까지 3년 동안 안기부장 제2특보(법률담당)실에서 분석연구실장으로 근무했다. 분석연구실장이 하는 역할은 안기부 지휘부에 대한 법률 지원이다. 경북고·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강 의원 역시 경북고·서울법대 선배이자 '6공의 황태자'였던 박철언 전 의원과 함께 청와대 파견근무 경험이 있다.

26년 동안 단 한 해도 안 거르고 연줄 그물망이 촘촘이 짜여 있는 한나라당

최연희 국회 법사위원장은 90년 1월부터 91년 8월까지 정형근 국장이 지휘하는 안기부 대공수사국에서 '수사지도실장'으로 대공수사 법률지원 역할을 했다. 서울고·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1년7개월 동안의 안기부 근무를 마치고 청와대 사정·민정비서관을 거쳐서 춘천지검 차장으로 친정에 복귀했다.

박종근 의원은 경제관료 출신임에도 특이하게 안기부 파견 근무를 했다. 경북고·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박 의원은 경제기획원 재직중인 91년 7월부터 93년 5월까지 안기부장 제2특보실 정책연구관(1급 경제정책실장)을 지냈다.

"내 전력을 국민에게 알리지 말라"?...권영세 의원은 94~97년 안기부에서 근무했지만 그의 경력난에서 그 3년간은 공백으로 비어 있다.
"내 전력을 국민에게 알리지 말라"?...권영세 의원은 94~97년 안기부에서 근무했지만 그의 경력난에서 그 3년간은 공백으로 비어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정보위원인 권영세 의원 또한 94년부터 9월부터 97년 8월까지 3년 동안 안기부장 특별보좌관실 정책연구관 등으로 근무하며 안기부 지휘부에 대한 법률지원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안기부에 근무한 적이 있는 다른 의원들과 달리, 국회수첩이나 의원 홈페이지 경력난에서는 그의 안기부 경력을 찾을 수 없다.

배재고·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권 의원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수원지검→춘천지검 강릉지청→독일 연방법무부 파견(독일 통일법령 연구)→법무부 특수법령과 검사(93-94년)→대검 검찰연구관(97-98년)→서울지검 부부장 검사 경력만 있고 94-97년 경력은 공백으로 비어있다. 요즘 뜬 '충무공 버전'으로 풀이하면 '내 전력을 국민에게 알리지 말라'이다.

홍준표 의원 또한 94년 10월부터 95년 9월까지 안기부장 특별보좌관실에서 정책연구관으로 근무했다. 영남고·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강력부 검사 시절에 이른바 '모래시계 검사'로 유명세를 탔던 홍 의원은 우연히 만난 검찰·안기부 선배인 정형근 의원의 권유로 안기부 파견근무를 지원했다.

홍 의원은 안기부에서도 주로 마약·조직범죄 관련 업무를 맡았다. 솔직하고 소탈한 성격의 홍 의원은 자신의 짧은 안기부 경력을 숨기지는 않지만, 정보기관의 속성인 'NCND'(시인도 부인도 안하는 것)를 활용(?)해 자신의 활약상과 무용담을 다소 과장하는 편이다.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안기부 시절까지 근무한 한나라당 의원 8명의 근무 연한을 결합하면 71년에 중정 근무를 시작한 김용갑 의원부터 97년 대선 직전에 안기부 근무를 마친 권영세 의원까지 26년 동안 단 한 해도 걸르지 않고 연줄의 그물망이 촘촘이 짜여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각각 14년과 12년 동안 몸담은 김용갑 의원과 정형근 의원의 그물망이 연줄의 밀도를 높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국가 정보기관 근무 현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괄호 안은 출신고·대학, 근무기간, 주요보직 순).

▲김용갑(밀양농고·육사 71.11-85.2 기획조정실장) ▲김기춘(경남고·서울대 74.4-79.2 대공수사국장) ▲정형근(경남고·서울대 83.3-95.3 대공수사국장·1차장(국내)) ▲강재섭(경북고·서울대 85.5-88.4 제2특보실 분석연구실장) ▲최연희(서울고·서울대 90.1-91.8 대공수사국 수사지도실장) ▲박종근(경북고·서울대 91.7-93.5 제2특보실 정책연구관) ▲권영세(배재고·서울대 94.9-97.8 특보실 정책연구관) ▲홍준표(영남고·고려대 94.10-95.9 특보실 정책연구관)

국정원 근무 경험이 있는 열린우리당 의원은 문희상·이강래 전 기조실장뿐

짧은 인연 긴 영욕...문희상 의원은 우연히 국정원에서 근무한 인연으로 정보위원장을 맡기도 했으나 그로 인해 도청공세에 시달렸다.
짧은 인연 긴 영욕...문희상 의원은 우연히 국정원에서 근무한 인연으로 정보위원장을 맡기도 했으나 그로 인해 도청공세에 시달렸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반면에 열린우리당에서 국가 정보기관 근무 경험이 있는 사람은 문희상 당의장과 이강래 의원뿐이다. 이강래 의원이 국민의 정부 초대 기조실장을 지냈고,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근무하다가 이 의원과 자리를 맞바꾼 문희상 당의장이 그뒤를 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국정원 근무 연한을 합쳐봐야 겨우 1년여에 불과하다. 대경상고·명지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이강래 의원은 98년 3월부터 5월까지 두 달 동안 기조실장을 지냈을 뿐이고, 문희상 의원도 98년 5월부터 99년 6월까지 1년 1개월 동안 기조실장을 지냈다.

문희상 의원은 그때 국정원과 우연히 맺은 짧은 인연으로 17대 국회 들어 국회 정보위원장도 지냈지만, 최근에는 국정원의 고해성사(과거 불법감청 실태보고)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한나라당에서는 국정원이 아르투(R2)니 카스(CAS)니 하는 감청장비를 개발해 운용했음을 고백했는데 당시 국정원 예산을 담당한 문희상 전 기조실장이 모를 리 없다고 문 의장에게 공세를 펼쳤다. 그는 국정원과의 '짧은 인연'으로 '긴 영욕'을 겪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국정원과 얽힌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연줄의 그물망 밀도를 비교하면 무려 '26 대 1'이다. 겨우 1년 동안 쌓은 인간관계와 26년 동안 쌓은 인간관계는 게임의 상대가 될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7월 11일 오후 청와대에서 김승규 신임 국정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느닷없이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의 '국정원 빨대' 발언을 거론하며 "정형근 의원의 정보력이 별 것 아니다"고 애써 강조했다(관련기사 참조). 그러나 이런 강조법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한나라당의 '빨대'가 강력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문희상이 경기도니, 이강래하고 바꿔"
DJ가 문희상 정무수석-이강래 기조실장 맞바꾼 사연

98년 당시 문희상 청와대 정무수석이 국정원 기조실장으로 간 것은 '우연'의 결과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당시 특별한 인사현안이 없는데도 갑작스레 문희상 정무수석과 이강래 기조실장을 맞바꾸었다.

그러자 한나라당에서는 친정체제를 강화하고 국정원을 장악해 정치자금(예산)을 모금하려 한다는 등 별별 상상력을 동원해 분석했으나 모두 사실과 동떨어진 것이었다.

국민의 정부 초대 국정원장을 맡게 된 이종찬씨는 자신이 서울 출신인 탓인지 아무런 지역적인 고려 없이 국정원 수뇌부를 구성해 김대중 대통령에게서 재가를 받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나종일 1차장·신건 2차장·이강래 기조실장 등 차관급 정무직 3명의 고향이 모두 전북 출신이었다. 그러자 시간이 흐를수록 국정원 내부에서 전북 일색의 인사편중 불만이 제기되었고, 그 불만의 목소리는 김대중 대통령에게도 전달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김대중 대통령이 이종찬 원장에게 "청와대에 들어와 아침을 먹자"고 불렀다. 김 대통령은 대뜸 "이 원장은 왜 전라북도 사람들만 앉혀 뒀냐"고 힐난조로 물었다.

얼른 눈치를 챈 이종찬 원장은 "나종일 차장은 서울서 자랐고 중앙고·서울대를 나와 고향이 전북인줄 몰랐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김 대통령은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문희상이 경기도(의정부)이니 이강래하고 바꿔"라고 지시했다.

이렇게 해서 문희상 정무수석이 졸지에 기조실장으로, 같은 차관급이지만 사실상 좌천된 것이다. 이종찬 원장은 평소 낙천적인 성격인데도 코가 쑥 빠진 문희상 정무수석에게 "함께 일하자"고 겨우 설득해 그를 기조실장 자리에 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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