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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절인 10월 3일 정오. 경기도 오산 한신대 잔디광장에서 특별한 결혼식이 있었다. 신랑 이성존(30)씨와 신부 박미자(27)씨. 이들은 근 20여년을 장애인시설에서 함께 생활하다 이날 결혼식을 올렸다.

▲ 에바다 사태의 주역으로 해아래집에서 생활하던 신랑 이성존씨와 신부 박미자씨
ⓒ 이철용
신랑 신부는 청각장애인들이다. 이들의 결혼식이 특별한 이유는 단지 장애인시설에서 오랫 동안 함께 생활해서가 아니다. 장애인들이기 때문만도 아니다. 이들은 장애인 시설비리의 대표적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에바다 사태'의 중심에서 장애인 당사자로 시설 비리에 맞서 싸웠던 중심적 인물들이다.

'에바다 사태' 주역들 한자리에

그래서인지 이날 결혼식에는 7년간의 에바다 사태에서 함께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한 자리에 모였다. 에바다 투쟁의 중심인물이기도 한 에바다학교 권오일 교감, 에바다농아원 김지원 원장, 에바다학교의 학생과 교직원들, 해아래집 식구들, 에바다장애인종합복지관 식구들. 뿐만 아니라 에바다복지회 이사인 한신대 남구현 교수, 노들장애인야학 박경석 교장, 민주노동당 평택시을지구당 김용한 위원장 등 투쟁의 과정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모처럼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 결혼식에는 긴 에바다 투쟁의 주역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 이철용
아담한 잔디광장에서 손님을 맞는 신랑 이성존씨는 결혼에 대해 '장모님이 결혼하라고 하셔서 그냥 결혼하게 되었어요'라고 수화로 다소 엉뚱한 대답을 한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에바다농아원에서 보았던 청소년의 모습은 사라지고 어엿한 장년의 모습이다.

잔디광장 한켠에 마련된 신부대기실에서는 신부 박미자씨가 친구들에 둘러싸여 수화로 즐거운 대화를 하고 있다. 멋진 웨딩드레스를 입은 그의 모습에서는 지난날 에바다투쟁 과정에서 울부짖던 모습은 찾아볼 길이 없고 축하와 부러움을 한몸에 받으며 날아갈 듯 기뻐하는 모습이다.

하객들 "참으려 해도 눈물이...", 결혼식 축가도 수화로

12시, 각종 풍선과 꽃으로 장식된 식장에 신랑 신부가 나란히 마주 섰다. 사회자의 입장 선언에 신랑 신부가 힘찬 입장을 한다. 300여 축하객들은 뜨거운 박수로 이들의 결혼을 축하한다. 그런데 군데군데에서는 눈시울을 붉히며 훌쩍이는 사람들이 보인다. 한 축하객은 "이들의 결혼이 그만큼 의미가 있기에 도저히 참으려고 해도 참을 수 없이 눈물이 흐른다"고 말했다.

▲ 주례를 맡은 한신대 오영석 교수 앞에서 신랑 신부가 서약을 하고 있다.
ⓒ 이철용
주례는 한신대 전 총장인 오영석 교수가 맡았다. 오 교수는 에바다투쟁 과정을 옆에서 지켜봤던 사람이다. 때문에 이들의 결혼식 주례를 흔쾌히 맡아주었다. 오 교수는 주례사를 통해 "두 사람에게, 작게 시작하지만 나중이 복되다는 성경의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살다보면 어려운 일이 생기게 되는데 성경 속의 사람들이 예수를 초청해 어려움을 이겼듯이 이 가정에도 그런 복된 날들이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축복했다.

주례사에 이어 결혼서약에서 신랑 신부는 변함없이 생을 다하기까지 함께할 것이라는 고백을 축하객들 앞에 약속했다. 이어 신랑 신부가 예물을 교환했다. 성혼기도와 선언에 이어 축하의 순서가 이어졌다. 평택농아인협회 예쁜소리 자원봉사단에서 수화로 이들의 출발을 기원하는 노래를 펼쳤고 이어 박은진ㆍ이슬모랑 두 어린이의 설장구 공연이 이어졌다.

"이들의 결혼은 에바다의 또 하나의 역사"

결혼식의 마지막 순서인 신랑 신부의 행진. 둘은 팔을 꼭잡고 담당하면서도 당당하게 청중들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모든 축하객들은 일어서서 박수와 환호로 이들의 출발을 축하했다. 이날 모든 예식은 신랑 신부와 하객들을 위해 2명의 수화통역사가 동시에 수화통역을 했다.

▲ 결혼식을 열광적으로 축하하는 에바다학교 선생님들
ⓒ 이철용
결혼식 내내 감격에 겨운 모습을 보이던 에바다농아원 김지원 원장은 이들의 결혼식에 대해 "감개무량하다"는 말과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김 원장은 "긴 에바다 투쟁 속에서 아름다운 결과를 맺었다. 에바다 투쟁의 힘든 시기, 추운 겨울에 해아래집에서 고생을 견디고 이렇게 결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 이것은 에바다의 또하나의 역사다"라는 말로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다.

▲ 대통령께 에바다 문제 해결을 위해 편지를 썼던 박미애씨
ⓒ 이철용
결혼식장에는 눈에 띄는 인물이 보였다. 에바다학교 학생이었던 박미애씨. 그는 지난 2003년 4월 '대통령 아저씨, 에바다 해결해 주세요'라는 공개편지를 노무현 대통령께 보냈던 학생이다. <오마이뉴스> 등에 보도된 당시 편지의 내용은 "노무현 대통령 아저씨 안녕하세요? 저는 평택에 있는 청각장애인학교 에바다학교에 다니고 있는 고3 학생 박미애입니다. 대통령께 편지를 쓴다는 것이 너무 두렵고 어렵지만… 대통령 아저씨, 제 소원좀 들어주세요…"라는 문제해결을 위한 진솔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지난해 2월 에바다학교를 졸업한 박미애씨는 회사에 취직을 해서 당당한 사회인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신부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미애씨는 기자를 만나자 반갑게 인사하며 "에바다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어서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아요. 학생들이 즐겁게 공부할 수 있어서 무엇보다 좋아요"라며 언니의 결혼보다 에바다 문제 해결을 더 기뻐하는 모습이다.

그는 언니의 결혼에 대해 "부럽고 너무 예쁘고 행복해 보인다"며 "아기 잘 낳아서 키우고 사랑이 변하지 않고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현재 회사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미애씨는 주말이면 오늘 결혼을 한 언니 집에서 생활할 예정이라고 한다.

에바다 교사들과 자원봉사모임 중심으로 '제대로 결혼식하자!' 준비

▲ 에바다학교 권오일 교감
ⓒ 이철용
그러나 이들의 결혼에 무엇보다 큰 힘이 되었던 사람은 에바다학교의 권오일 교감이다. 권 교감은 결혼을 하는 신랑에 대해 과거를 회상하며 "10여년 전 에바다학교에 부임시 성존이는 농아원에서 동생들을 울리는 문제아였다. 그러나 에바다 사태가 발생하고 96년 11월 27일 학생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농성을 시작하자 큰 변화가 있었다. 농성을 통해 가장 많이 변했고 믿음직한, 제일 든든한 인물이었다"고 말했다.

권 교감은 신부에 대해서는 "항상 몸이 약해서 매일 양호실 신세를 지고, 우울한 모습이었는데 에바다 사태 이후 1-2년이 지나며 힘든 가운데서도 얼굴이 밝아지고 건강도 좋아졌다"며 "믿음직스럽고 성실한 두 사람의 결혼은 역경을 딛고 맺어졌기에 걱정을 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결혼이 처음 얘기되었을 당시 양가에서는 간단하게 찬물 한 그릇 떠놓고 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에바다 식구들에게 이들의 결혼은 남다른 의미였다. 7년간의 힘겨운 에바다 투쟁의 결실이었기에 무리가 따르고 힘이 들더라도 제대로 된 결혼식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고 에바다학교의 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에바다사태란?

에바다사태는 사회복지법인 에바다복지회가 운영하는 청각장애인 생활시설인 에바다농아원에서 청각장애 아동들이 굶주림과 추위속에서 강제노역과 폭력 등 비인간적인 처우에 대한 반발과 재단비리를 문제시하며 1996년 11월 27일 새벽 농아원생 70여명이 농성을 벌임으로써 시작되었다.

법인은 최모씨 일가가 족벌체제로 에바다학교, 에바다장애인종합복지관, 에바다농아원 등 산하시설을 운영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지원금 횡령, 친인척 유령인물 등재 월급 수령, 주민등록증 이중 발급, 강제노역, 폭행 등 각종 인권침해 사례가 언론에 수십차례 보도되었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공개방송 '국민과의 대화'에서 해결을 약속하기도 했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7년여를 끌던 에바다 사태는 2003년 6월 새롭게 구성된 이사회가 강제적으로 농아원에 진입해 불법점거를 하던 최모씨 일가를 퇴거시킴으로써 정상화되었다. / 이철용 기자
다행스럽게 예식장도 한신대 측에서 허락을 했고 평택농아인협회 자원봉사 모임인 예쁜소리 회원들이 백방으로 다니며 결혼식을 준비했다. 예쁜소리는 에바다 사태가 발생한 이후 학생들이 생활하던 해아래집을 매월 방문하며 생일과 각종 경조사를 지금까지 챙겨주고 있는 단체다. 이들은 이날 신부의 웨딩드레스는 물론이고 수화통역과 축가 등 많은 역할을 감당했다.

신랑인 이성존씨는 에바다학교를 졸업한 뒤 현재도 에바다학교에서 생활하고 있고, 신부인 박미자씨는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은 거의 20여년을 에바다농아원에서 함께 자라며, 특별히 에바다 사태라는 사회복지시설 초유의 사건 속에서 7년여간 힘든 싸움을 통해 하나가 되었다. 폭행과 회유 등 각종 시련과 유혹이 있었지만 이들은 해아래집을 중심으로 흔들리지 않았고 에바다 사태가 해결된 지 2년만에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가정을 꾸리게 된 것이다. 때문에 이들은 또 한번 축하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 이철용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기자에게 에바다학교 권오일 교감은 당부의 말이 있다고 손을 잡았다. 그는 "에바다 승리는 전국 양심세력의 연대의 힘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책임을 져야 한다. 에바다가 승리하도록 했던 사람들이 협력과 감시를 할 때 에바다의 건강성을 지킬 수 있다. 그래야 변질하지 않고 10-20년 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다시 불거지고 있는 정립회관 사태를 예로 들며 "정립회관도 10여년 전 개혁을 통해 바로 세웠지만 이러한 감시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기에 부패했다. 에바다도 마찬가지다"라는 말로 항상 에바다를 잊지말고 함께해 줄 것을 당부했다.

덧붙이는 글 | 장애인인터넷신문 위드뉴스(http://with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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