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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은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발생 관련사건에 대해 허태학 전 에버랜드 사장에 대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박노빈 현 에버랜드 사장에 대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각각 선고했다. 허태학 전 사장이 법원을 나서고 있다.
4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은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발생 관련사건에 대해 허태학 전 에버랜드 사장에 대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박노빈 현 에버랜드 사장에 대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각각 선고했다. 허태학 전 사장이 법원을 나서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법원이 4일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변칙증여 사건에 대해 유죄를 인정함에 따라,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이재용 상무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의 도덕성과 정당성에 치명타를 입게 됐다.

또 법원에서 1년여 넘는 법적 공방과 심리를 통해 삼성의 경영지배권 승계과정이 불법이라는 판단을 내림으로써, 이미 배임 교사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이 회장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와 함께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삼성 에버랜드 주식을 가지고 있는 계열사의 경영진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도 진행할 예정이어서, 삼성 경영진은 대규모 민사 손해배상 소송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

법원, 삼성 경영 승계구도의 불법성 첫 인정

에버랜드 전환사채 변칙 증여사건은...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변칙 증여는 지난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2월 이재용 상무는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60억8000만원을 물려받는다. 이 상무는 증여세 16억원을 내고, 나머지 44억8000만원으로 삼성엔지니어링과 에스원 등 계열사 주식을 사들인다. 이들 계열사 상장으로 600억원의 시세차익을 올린 이 상무는 에버랜드와 삼성생명, 전자 지분 등을 사들인다.

96년 11월 당시 에버랜드의 허태학 사장 등 이사들은 이 상무 등 남매 4명에게 에버랜드 CB 125만4777주를 배정한다. 전체 지분 가운데 62.5%에 해당하며, 주당 금액은 7700원이었다. 검찰은 이들 주식값이 최소 8만5000원임에도 헐값에 이들 이씨 남매에 배정해, 회사에 969억원의 손해를 끼쳤다고 밝혔다.

검찰은 공소시효 만료 하루를 앞두고, 지난 2003년 12월에 허태학 전 에버랜드 사장과 박노빈 전 상무만을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고, 지난 1월에 이들에게 각각 징역 5년과 3년을 구형했었다. / 김종철 기자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이혜광 부장판사)는 이날 삼성 에버랜드 CB를 싼값으로 발행해 이 회장의 장남 재용씨에게 지분을 변칙적으로 증여한 혐의로 기소된 허태학 전 사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박노빈 전 상무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가 이날 밝힌 판결문을 보면, 허 사장 등은 재용씨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당시 시중가격보다 현저히 낮은 값으로 전환사채를 발행해, 재용씨에게 재산상 이득을 주었고 그만큼의 회사에 손실을 입힌 혐의를 확인했다.

대신, 검찰이 당시 에버랜드 주식 값이 8만5000원이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따라서 검찰이 주장한 970억원에 달하는 손실금액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산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에 따라 허 사장 등에 적용된 법률도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이 아니라, 형법상 업무상 배임 혐의만 인정됐다.

이번 판결은 비록 회사 손실 금액을 확정하지는 않았지만, 삼성 지배구조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에버랜드 주식의 헐값 배정에 대해서 법원이 처음으로 불법으로 규정한 사례가 된다.

따라서, 이미 참여연대 등으로부터 배임 교사 혐의 등으로 고발된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등 삼성 최고 경영층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실제로 이날 오전 천정배 법무부 장관도 기자들과 만난자리에서 법원이 유죄판결을 내릴 경우, 이 회장 등에 대한 검찰 수사를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삼성 이씨일가 지배구조 '흔들'

법원이 4일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변칙증여 사건에 대해 유죄를 인정함에 따라,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이재용 상무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의 도덕성과 정당성에 치명타를 입게 됐다.
법원이 4일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변칙증여 사건에 대해 유죄를 인정함에 따라,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이재용 상무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의 도덕성과 정당성에 치명타를 입게 됐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이번 판결은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상무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의 정당성과 도덕성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또 향후 검찰이 이 회장 등 삼성 최고위층의 헐값 매각 지시와 공모여부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에 나설 경우, 삼성 지배구조 자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재판부가 에버랜드의 편법 증여에 대해 불법을 인정함에 따라 삼성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로 그룹을 지배하는 에버랜드의 최대주주인 이 상무의 보유 지분 자체에 대한 정당성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됐다.

또 그동안 불법적인 방법으로 그룹 경영권을 승계하려고 했다는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의 주장에 법원이 손을 들어줌으로써, 삼성 그룹의 대외 이미지 추락과 함께 도덕성에도 타격을 입게 됐다.

삼성그룹의 경우 삼성에버랜드를 정점으로 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 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 출자식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에버랜드는 삼성생명 지분의 19.34%를 갖고 있고,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의 7.23%를 보유하고 있다.

또 삼성전자는 삼성카드 지분을 46.9% 가지고 있으며, 삼성카드는 에버랜드 지분의 25.64%를 가지고 있다. 나머지 에버랜드 지분 가운데 이재용 상무가 25.1%로 최대주주로 있으며, '에버랜드 사건'으로 96년 당시 CB를 배정받은 이부진, 서현, 윤형씨 등이 각각 8.37%씩 보유하고 있다.

법원이 허 전 사장등에 대해 배임죄를 인정함에 따라, 이 상무가 보유한 에버랜드 지분의 정당성 자체가 문제가 될 소지가 크다. 이는 다시 삼성 그룹 전체의 지배구조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은 "경영진의 배임혐의가 확정됨에 따라 에버랜드의 삼성계열사를 통해 주주대표소송을 진행할 방침"이라며 "에버랜드 주식을 가지고 있는 제일모직 등 계열사의 당시 경영진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소장은 이어 "법원의 유죄 판결은 삼성의 경영권 승계구도가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라며 "향후 삼성도 이 같은 지배구조 형태를 이끌어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오마이뉴스>는 창간 초기인 지난 2000년 말, 수개월에 걸쳐 삼성그룹 이건희-이재용 부자의 '편법-불법 승계' 문제를 집중 제기한 바 있다. 당시 '삼성3세 이재용의 출발선은 왜 다른가'라는 제목으로 보도됐던 이 집중기획을 통해 오마이뉴스는 "'이재용 문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지켜보는 것은 한국의 미래를 읽는데 중요한 힌트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로부터 약 5년, 법원의 1심 판결로 이재용씨의 부의 승계가 '명백한 불법'에 기초하고 있음이 법률적으로도 확인됐다.

(당시 특별기획 기사 전문은 아래 클릭!)

[2000-2001 특별기획] 삼성3세 이재용, 그의 출발선은 왜 우리와 다른가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그룹 본관건물앞에 내걸린 삼성그룹 깃발.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그룹 본관건물앞에 내걸린 삼성그룹 깃발.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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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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