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오르막 길을 한 참 올라가야 있는, 달동네의 가난한 집이지만 삶에 대한 여유가 있고, 가난에 위축되지 않은 영지 아빠가 살기에 오히려 소박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 김은주

"영지씨하고 연락이 안돼서 왔어요."
"연락이 왜 안 돼? 연락이 안 되면 말지 뭐 하러 여기가지 찾아오고 난리야?"

특유의 삐딱한 시선과 걸고넘어지는 것 같은 문법. 그러더니 준우가 사온 과일 바구니를 신통찮다는 듯 건드리며,

"내가 싫어하는 과일 밖에는 없네. 그리고 여기 하얀 봉투 하나 있어야 되는 거 아니야? 젊은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센스가 없어?"

그리고는 노골적으로 돈을 바란다는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집에 물이 새는데, 수리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느니, 집이 전세라느니, 돈 얘기밖에는 없다.

처음 찾아온 딸의 남자 친구를 대하는 아버지의 태도로는 뭔가 부적절하다. 조심스러워야 할 첫 만남에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얘기를 마구 해대는 아저씨. 이 상황은 영지의 아버지에게 준우가 일방적으로 당하는 모습이었다. 친절하고 착한 사람을 이용하는, 지나칠 정도로 뻔뻔한 아저씨로 보였다.

준우에게 영지의 비참한 상황을 보여주기 위한 장면이었다. '봐라, 집은 다 쓰러져가기 일보전이지 아버지라는 작자는 후안무치한 그런 인간이지, 영지는 너와는 물이 완전히 다른 그런 애다. 네가 귀족이라면 영지는 최하층이다' 바로 이런 차이를 부각시키기 위한 설정이었다.

그런데 의도가 빗나갔다. 이 장면은 시청자가 봤을 때는 영지가 결코 준우와 어울릴 수 없다는, 비열하고 천박한 부끄러운 아빠의 모습이 아니라 가난하지만 결코 가난에 위축되지 않은 당당함을 보여줬다고 생각된다.

'비가 샌다느니, 영지가 벌어서 먹고 산다느니'하는 그의 말에는 가난이 흠뻑 묻어있다. 하나 느낌은 아니다. 오히려 당당하고 가난에 휘둘리지 않고 삶에서 한 발 떨어져 '잘 살아도 한 세상 못 살아도 한세상'식의 관조가 느껴진다.

영지 아빠의 대책 안서는 뻔뻔함에는 일종의 여유가 묻어있다. 영지의 출신성분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는 아버지의 정체가 일찍 부인이 가출하고 특정한 직업도 없이 빈둥거리는 그런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지만 이 사람이 갖고 있는 생에 대한 여유가 결코 남루하지 않기에 영지가 비록 파출부를 하고, 대리운전을 하는 소녀가장이지만 결코 초라해보이지가 않는다.

주현 아저씨가 연기하고 있는 캐릭터는 어떻게 보면 도가 지나칠 만큼 뻔뻔스러워 보이는데, 다른 한 편에서는 인생을 알기에 삶을 느긋하게 사는 사람으로 보여 진다. 종잡을 수 없는 미묘한 뉘앙스를 풍기는데 원래 이 캐릭터의 의도였는지 아니면 주현아저씨가 연기하면서 이런 새로운 캐릭터가 만들어졌는지 알 수는 없으나 매우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