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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에르난데쓰
ⓒ 조명신
그를 소개하려고 한다. 조지 에르난데쓰(George Hernandez). 스물일곱 살의 청년이자 멕시코에서 온 일용 노동자.

나는 그를 미 텍사스주 달라스에 위치한 인력시장 '라 에스끼나'(La esquina, '길 모퉁이'라는 듯의 스페인어)에서 처음 만났다. 인력시장 취재차 그곳을 찾은 나에게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인력시장의 경험이 많은 그는 최상의 '인터뷰이'였다.

그는 영어를 할 줄 아느냐는 내 질문에 무뚝뚝한 목소리로 “왜 그러느냐”고 되물었다. 그렇게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나는 이 일이 좋다"

- 미국에는 언제 누구와 처음으로 왔나?
"1995년에 혼자 왔다. 처음엔 텍사스주의 휴스턴으로 갔는데 포트워스를 거쳐 2000년에 달라스로 오게 되었다."

- 어떤 계기로 해서 인력 시장에 나오게 되었나?
"원래는 엘리베이터 회사에서 부속 만드는 일을 한 2년 정도 했다. 가끔 지각을 했더니 회사에서 몇 차례 경고하고 결국 해고했다. 그후 친구 소개로 인력시장에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너무 부끄러워서 적응하기 힘들었다. 일손을 구하러 트럭이 오면 다들 뛰어다니는데 나는 한 구석에 서있곤 했다. 지금은 내가 이곳에서 일한지 2년 반정도 되는데 이곳 돌아가는 사정에 훤하다."

- 이곳 인력시장에는 보통 몇 시쯤 나오나?
"대략 8시에서 9시 사이에 나온다. 버스를 타고 오는데, 버스 정류장에서 간발의 차이로 버스를 놓치게 되면 좀 더 늦어지기도 한다."

- 항상 일자리를 구하나?
"대부분은 구한다. 그렇지만 어떤 때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기다리다 결국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그냥 돌아간 적도 있다."

"결정의 순간 이후" 일용노동자를 구하러 온 트럭에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일할 사람이 결정되자 다들 흩어지고 있다.
ⓒ 조명신
- 대체로 무슨 일을 하는가?
"대중 없다. 시키는 일은 다 한다. 목공, 청소, 잔디깎기, 페인트칠, 중국이나 한국에서 들여온 컨테이너에서 물건 내리기 등 일할 기회가 있으면 무조건 간다. 이곳에서는 일손을 구하는 차가 오면 무조건 차에 탄다. 무슨 일인지 묻는 동안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자리를 선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의 내용은 일자리에 도착해서야 알수 있다."

- 이곳 경기는 어떤가?
"'전쟁 상황'이다.(웃음) 이곳이 텍사스에서 가장 큰 시장이다 보니 여기저기에서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리고 있다."

- 이곳에서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끼리는 사이가 좋은가?
"모두들 히스패닉이기 때문에 서로 친구처럼 지낸다. 서로 사용하는 스패니시가 약간 다르긴 하지만 의사소통에는 별 문제가 없다."

그는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불법 체류자들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렇다면 미국으로 어떻게 들어왔냐는 질문에 "알면서 뭘 묻냐"고 대답하며 웃었다.

- 가족들은 모두 멕시코에 있나?
"그렇다. 아버지, 어머니, 누나, 남동생 둘이 있다. 막내 동생은 내가 여기 온 이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아직 한번도 못봤다. 난 앞으로 여기서 계속 살 생각이지만 가족들이 보고 싶기도 하다. 보름에 한번씩은 꼭 전화를 한다."

- 영어는 어떻게 배웠나?
"미국에 오기 전에는 영어를 전혀 못했다. 처음 텍사스로 왔을 때 영어를 못해서 서러운 적이 많았다. 그러다가 백인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5년 정도 함께 살았는데 다행히 그녀는 스패니시를 할 줄 알아서 내게 영어를 가르쳐 주었다. 매일 영어와 스패니시를 번갈아가며 배웠는데 9개월이 지나니까 영어를 알아 듣기 시작했고 또 다시 5개월이 흐르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아이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6살된 딸이 있다고 했다. 이름을 묻자 티셔츠의 왼쪽 소매를 걷어붙이며 '끌라리사(Clarisa)'라고 새겨진 문신을 보여주었다. 여자친구와 복잡한 문제가 있어서 헤어졌고 이제는 그녀가 다른 사람과 결혼했기 때문에 딸을 보러갈 수 없다고 했다.

- 수입은 어떤가?
"일주일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이곳에 나온다. 며칠을 일하러 가느냐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일주일에 대략 500달러 정도 번다."

- 시간당 얼마를 받나?
"나는 무조건 10달러를 받는다. 더 적게 받는 사람들도 많지만 100도(섭씨 38도)가 넘는 이런 더운 날씨에는 그 정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일이 힘들지 않나?
"사실 나는 이일이 좋다. 이젠 직업을 갖는 것이 싫다. 나는 여기에서 많은 걸 배웠고 내가 원하는 것을 많이 얻었다. 나는 이곳을 사랑한다.(웃음)"

- 한국인과 일해본 적 있나?
"많다. 한국 사람들과는 대부분 임금 때문에 다투게 된다. 대체적으로 백인들이 임금을 제일 후하게 주고 인도 사람들이 제일 짜다. 어떤 한국사람은 점심시간까지 줄이려고 한다.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시키고 50불 주면서 점심을 안사주기도 한다. 트럭에 짐을 싣거나 내리는 일의 경우 심지어는 운전하며 오간 시간은 다 빼버리고 일한 시간만 따져서 돈을 주는 사람도 있다."

"스물 일곱살, 멕시칸 일용 노동자" 선글라스를 쓰고 환한 웃음을 짓는 '조지 에르난데쓰' 뒤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길가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 조명신
"우리에게 친절히 대해달라"

그가 몇몇 한국인들의 행태에 대해 성토할 무렵 주변의 히스패닉 몇사람이 가세했다. 이 지역에서 이름을 대면 알만한 큰 한국회사 하나는 하루 일당으로 50불을 주기고 약속하고 일을 시킨 다음 30불 밖에 안주었다고도 하고, 일하는 동안은 잘 대해 주다가 일이 끝나고 나면 함부로 대한다거나, 무조건 빨리 빨리만 외치다가 정작 점심시간에는 밥도 안준다는 항의성 이야기들. 부끄럽고 미안했다.

이야기를 정리할 필요를 느꼈는지 조지가 수습하려고 나섰다. "모든 한국인이 친절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좋은 한국인은 적다. 이렇게 말해서 미안하기는 하지만, 사실이다." 그러면서 딱 한가지만 한국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에게 친절히 대해달라(Be nice to us)."

그는 내가 인력시장에서 만난 히스패닉 노동자들 가운데 가장 영어를 잘 했고, 자신감이 넘쳤으며, 자신의 생각을 적절하게 표현할 줄 아는 친구였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만난 혹은 당신과 함께 일하는 그 이주노동자는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거나 자신의 생각을 당신에게 정확히 표현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역시 같은 당부를 하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를 산다는 것은 사용자나 노동자 모두에게 힘든 일이다. 그러나 장사꾼의 심성에 물들어 부끄러움조차 잃어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다. 성숙한 세상에 같이 서기 위해서는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다른 이민자들처럼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미국땅을 밟았을 그에게 꿈이 무어냐고 물었다. 큰 집도 좋은 차도 필요없고, 그냥 "행복해지고 싶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덧붙이는 글 | 텍사스주 달라스의 동포신문인 '뉴스코리아'에도 송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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