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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안구 문화의 거리 지정 촉구 퍼포먼스의 장승지기 김영부 위원장
ⓒ 이현정
평촌 신도시 개발 바람에 뒷전으로 밀린 안양의 옛 중심가였던 만안구. 그 만안구를 살리고, 만안구의 ‘1번가’였던 벽산로를 ‘문화의 거리’로 지정할 것을 촉구하는 고행의 나무 십자가 행진, 세 번째 ‘장승십자가 퍼포먼스’가 시작됐다.

지난 9월23일. 1주일만에 어김없이 돌아온 금요일 5시. ‘만안구 문화의 거리 추진위원회’ 김영부 집행위원장(안양군포 민예총 사무국장)이 또다시 고행의 행진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두 차례 장승십자가 행진을 통해 소문을 들은 시민들이 하나 둘 김 위원장 곁으로 모여들었다. 벽산로 인근 안양 중앙성당의 네 분의 천주교 사제들도 두 손을 모으고 고난의 행렬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렇듯 모여든 사람들은 어느덧 20여명을 넘어섰다. 특히 이들 천주교 사제들은 장승 십자가 퍼포먼스 소식을 듣고 긴급회의를 연 끝에 앞으로도 계속 이 행진에 함께 할 예정이라고 한다.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소리없이 번져나가 취재 열기도 예사롭지 않다. 지역 케이블방송인 안양방송과 지역신문인 안양시민신문 기자들도 김 위원장 일행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저 몸으로만 말할 뿐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하던 김 위원장은 결국 이들의 요청에 못이겨 취재에 임했다.

“우리 만안구 주민들은 진실을 원하며, 진실합니다. 제 몸 하나 던져 진실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어렵고 힘들지만 기꺼이 다시 나섰습니다. 이제는 소외받아온 만안구 주민들이 우리의 문화를 우리의 힘으로 올곧게 세울 때입니다.”

김 위원장은 이렇듯 짧은 한 마디를 던지고 기원문을 낭독했다.

간단한 예를 올리고 무거운 장승 십자가를 등에 짊어지는 김 위원장의 몸짓이 사뭇 무거워 보인다. 아마도 간반에 내린 비로 잔뜩 젖은 장승십자가가 고독한 고행의 길에 무게감을 더한 듯 하다.

이날의 세 번째 장승십자가 행진은 벽산로 옆 중앙성당을 출발→2001아울렛→안양1번가 입구의 조흥은행→(구)안양본백화점→옛 대농과 안양공고 사거리→삼덕제지 터로 이어지는 장장 10리길에 이르렀다.

이는 이전의 두 차례 행진에 비해 부쩍 길어진 여정이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투지가 더욱 불타오르기 때문일까? 하지만 길어진 여정 만큼이나 엄청난 체력이 소모되기 마련이다.

정확히 오후 5시15분에 출발한 장승십자가는 멈춰서는 횟수가 잦아졌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김 위원장의 온 몸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버렸다. 멈춰 설 때마다 가쁜 숨을 내쉬며 손목을 주무르는 것 보면 그 고통이 이만저만 큰 게 아니라는 걸 미뤄 짐작할 수 있었다.

1시간 30분에 걸친 고통스런 행진을 마치고 옛 삼덕제지 터 입구로 들어선 순간 김 위원장은 잠시 숨을 고르고 미리 준비한 유인물을 공장 벽에 도배하기 시작한다. 유인물에는 우뚝 솟은 공장굴뚝 그림과 함께 ‘안양의 상징. 삼덕제지 굴뚝을 살려내라!’ 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 공업도시 안양의 상징이었던 삼덕제지 굴뚝의 철거 전 모습.
ⓒ 이현정
김 위원장이 공장 굴뚝을 살려내라고 요구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실 이 곳은 안양에서 오랜 세월 제지공장을 운영하던 삼덕제지 창업주가 지난 2003년 7월 공장을 이전하면서 공장 터 4364평을 시민공원 부지로 안양시에 무상기증을 한 곳이다.

무려 300억대의 공장 터를 기증한 8순의 전재준 회장(82세)은 “옛 삼덕제지 터의 상징인 굴뚝만큼은 반드시 보존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였고, 이에 신중대 안양시장은 “꼭 보존하겠다”며 굳게 약속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신 시장의 이같은 약속은 물거품이 돼버렸고, 굴뚝은 지난 5월28일 안양시에 의해 전격 철거됐다.

김 위원장을 비롯한 수많은 만안구 주민들에게 삼덕제지의 높다란 굴뚝은 제지산업이 번창했던 예전의 공업도시 안양을 상징하는 일종의 ‘기념비’다. 그 굴뚝이 ‘개념도 철학도 없는’ 시 당국에 의해 무참히 철거되면서 또 하나의 안양의 전통적 상징물이 흔적도 없이 묻혀버렸다고 보는 것이다.

삼덕제지에서 유인물을 붙이는 작업을 마친 김 위원장은 다시 장승십자가를 메고 안양 중앙시장 중심부를 지나 전진상 복지관에 도착했다. 드디어 고통스러운 ‘장승십자가 행진’이 막을 내린 것이다. 행진 내내 장승십자가를 뒤따르던 지역의 한 어르신은 쑥스러운 듯 김 위원장에게 악수를 청하며 한 마디 건낸다.

“같이 따라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까 해서 따라 나섰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이렇게 동참하는 것뿐이라 생각했습니다.”

그이와 함께 장승십자가를 따르던 수많은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했다.
어렵고 힘든 고행길을 마친 김 위원장은 모여든 주민들에게 일일이 막걸리 잔을 건내면서 행진 내내 속내에 담아두었던 한 마리를 토해낸다.

“우리는 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철학이 없는 안양시가 벽산로를 문화의 거리 지정하길 거부한 것은 마찬가지로 단호히 거부합니다. 결국 ‘문화의 거리 벽산로’는 우리 안양의 전통과 서민적 문화의 가치를 찾고자 하는 주민 여러분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반드시 이뤄낼 것입니다. 주민 여러분들의 동참을 호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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