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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침떼기 세린이. 아내 말대로 하루 떨어지는 것도 이렇게 서운한데 나중에 시집은 어떻게 보내나? 누군지 모르지만 벌써부터 고놈이 미워지려고 하네.
새침떼기 세린이. 아내 말대로 하루 떨어지는 것도 이렇게 서운한데 나중에 시집은 어떻게 보내나? 누군지 모르지만 벌써부터 고놈이 미워지려고 하네. ⓒ 장희용
저녁에 퇴근해 "딩동~"하고 초인종을 누르면서 내 입가에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열리지 않은 현관문 틈 사이로 "와~"하는 소리와 함께 "쿵쿵쿵" 소리가 들리면 손에 들고 있던 도시락 가방을 바닥에 내려 놓는다.

와~ 하는 소리는 다섯 살 된 딸 세린이가 반기는 소리고, 쿵쿵쿵 소리는 두 살 된 태민이가 뛰어(?)오는 소리다. '누가 먼저 아빠 품에 안기나?' 시합을 하는 다섯 살 우리 딸과 두 살 우리 아들. 세린이가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면 두 팔을 벌린다. 문이 열리자마자 세린이는 맨 발로 뛰어나와 개구리처럼 폴짝 뛰어 아빠 품에 안긴다.

항상 달리기에서 질 수밖에 없는 태민이. 자기가 무슨 인디언이라고 두 팔을 하늘로 치켜 들고는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우우~ 소리를 내며 부지런히 달려온다. 세린이와 나는 그 귀여운 모습을 보면서 항상 웃을 수밖에 없다. 뒤늦게 도착해서는 자기가 안기려고 아빠 품에 매달려 있는 누나를 필사적으로 떼어내려 한다. 양보할 리가 없는 누나 때문에 결국 울고 만다. 토닥거려 안아준다. 그럼 웃는다.

양 쪽 팔에 두 녀석을 안고 거실로 가면 아내가 "자기는 좋겠다"면서 시샘을 한다. 나는 우쭐해 한다. 내가 아내보다 아이들한테 인기가 많다는 것이 흐뭇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매일 매일 겪는 일이지만 후다닥 아빠 품을 향해 뛰어오는 딸과 어기적어기적 팔자걸음으로 제 딴에는 열심히 뛰어와 품에 안기는 아들, 그리고 질투(?)하는 아내, 나는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하루의 고단함도 싹 가신다.

난생 처음 세린이가 집을 떠납니다

옷도 갈아입기 전에 세린이의 자그마한 입에서 조잘조잘 하루 동안의 이야기가 쏟아진다.

"나 내일 캠프 간다. 어~ 동물원도 가고, 엉~ 자연학교도 가고, 공연도 볼 거다."
"그래! 와~ 좋겠다."

세린이가 유치원에서 1박 2일로 캠프 간다는 것을 며칠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말까지 더듬어 가며 흥분된 표정으로 캠프 가는 것을 자랑하는 세린이에게 "아빠도 알아"라고 간단히 말해 버리면 혹여 세린이가 맥이 빠질까봐 천성적으로 작은 눈을 놀란 토끼처럼 크게 뜨면서 목소리 높여 호응해 줬다.

아빠가 지대한 관심을 보이자 더욱 더 신이 난 세린이. 동생이 자꾸 아빠 무릎에 앉자 동생을 떠밀어내고는 바싹 안겨서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남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나도 그런 세린이가 귀여워 세린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진짜, 와, 그래"하면서 감탄사를 연발하니 우리 딸, 기분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만이 해 주는 진한 키스까지 해 준다.

아내가 김밥 재료를 사러 나가자고 한다. 나는 둘째만 데리고 갔다 오라고 했다. 오늘 실컷 놀아야 내일 세린이 없을 때 나도 서운하지 않고, 세린이도 아빠가 덜 그리울 거라는 이유를 댔다. 그리고 "우리 세린이, 아빠가 많이 사랑해. 내일 아빠 보고 싶다고 울면 안 돼 알았지?"하면서 세린이를 꼭 안았다.

아내는 "아휴, 하루 밤 캠프 보내면서 요란법석 떨기는... 나중에 시집은 어떻게 보낼 거야"하더니 둘째를 데리고 나간다. 그런데 무슨 억하심정인지 닫았던 현관문을 열더니 고개를 삐죽 내밀고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도 살짝 웃으면서, 아주 유혹적인 목소리로.

"세린아! 엄마 지금 슈퍼 가는데~."

아니나 다를까. 무릎에 앉아 있던 세린이, 슈퍼 간다는 엄마의 달콤한 목소리에 고개를 획 돌리더니 단박에 같이 가자면서 벌떡 일어선다.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가더니 금세 현관문 밖으로 사라진다.

지금쯤 아내는 속으로 '아휴, 고소해라'하면서 웃고 있을 거다. 그런 아내가 생각나면서 일격을 당한 것에 분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방금까지도 죽고 못 살 것처럼 아빠 품에 안겨서 조잘거리던 딸, 베란다에서 가서 밑을 내려다 보니 엄마 치맛자락 붙잡고 폴짝 폴짝 뛰어가고 있다.

'뭐야, 아... 진짜. 무슨 심보가 저러냐? 요놈의 자식 들어오기만 해 봐라...'

들어 주는 사람 아무도 없건만 괜히 혼잣말로 아내와 세린이한테 심통을 부린다. 이부자리를 깐다. 눕는다. 한참 후에 뭐가 그리 즐거운지 복도에서 떠드는 세린이 목소리가 들린다. 눈을 감았다. 생각해 보니 유치한 짓이었지만 그 때는 내가 삐쳤다는 것을 보여주는 최대의 항의 표시였다.

매일 매일 누나 때문에 울기도 하지만 아마 태민이도 누나 없는 동안 무척 심심할 것이다.
매일 매일 누나 때문에 울기도 하지만 아마 태민이도 누나 없는 동안 무척 심심할 것이다. ⓒ 장희용
내 품에 안기는 우리딸, 어떻게 시집 보내죠?

"나 오늘 아빠랑 잘 거야."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세린이가 아빠랑 잔다면 이불 속으로 쏙 들어온다. 엄마가 시킨 줄은 알지만 그래도 내 품으로 들어오는 귀여운 내 새끼가 마냥 예뻐서 꼭 안아준다. 팔베개를 해 주고는, 또 다시 캠프 이야기를 한다.

"자기 전에 울면 안 된다"는 말이 자꾸 떠올랐지만 혹시나 그 말 때문에 오히려 잘 때 울까봐 그 말은 더 이상 안 했다. 대신 캠프에서의 즐거운 상상 이야기를 했다. 엄마, 아빠와 떨어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달래 주기 위해서였다.

잠든 세린이 머리에서 땀이 흐른다. 내가 너무 오랫 동안 안고 있었나 보다. 머리를 쓸어 올리면서 세린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내의 말이 자꾸만 생각난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어휴, 이 담에 커서 시집 어떻게 보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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