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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공항청사 위의 김일성 주석 초상
평양공항청사 위의 김일성 주석 초상 ⓒ 박도
조선 선조 때 노계 박인로가 쓴 가사 <선상탄>에 보면 "죽은 제갈 량이 산 중달을 멀리 쫓고"라는 글귀가 나온다.

중달이 평소에 제갈 공명을 무서워하여 감히 공격을 못하다가, 공명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쳐들어갔으나 의외로 공명이 의젓하게 가마를 타고 나오므로 도망쳤다는 고사다. 실은 가마에 타고 있던 것은 공명의 시체였다고 한다.

국제친선전람관 마지막 방에서다. 그 방 한 벽면에는 밀랍 김일성 주석이 서 있었는데 마치 살아 있는 듯하였다. 생시에 입던 양복차림에 모자를 쓰고 빙그레 볼웃음을 지으면서 관람객을 맞았다. 조금도 돌아가신 분같지 않게 서 있었다. 북녘의 안내원들은 그 밀랍 상을 향해 마치 살아 있는 분을 대하듯 최대의 경의를 표했다.

북녘 전역에 김일성 주석은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 공항에도 국경선에도 눈길이 잘 미치는 곳에는 김일성 초상이 걸려 있다. 아니 북한의 인민들 가슴에 김일성 배지가 없는 이가 없다. 가는 데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구호가 씌어 있었다. 만나는 사람들의 말 속에도 '김일성 수령님'은 빠지지 않았다.

북한 안내원 가슴마다 김일성 배지가 붙어 있었다
북한 안내원 가슴마다 김일성 배지가 붙어 있었다 ⓒ 박도
북녘사람들에게는 예수, 석가, 공자보다 김일성 주석이 더 상위에 있는 듯 보였다. 내가 한 안내원에게 잠꼬대를 할 때도 '위대한 수령'을 말하느냐고 묻자 그는 웃으면서 그렇다고 답하였다.

내가 살펴본 바, 온 나라에 김일성 주석의 체취가 없는 곳이 없었다. 사람들이 만든 인공물은 물론, 백두산 묘향산 바위에도 말씀이나 글이 새겨져 있었다.

남녘 사람들은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그동안 항일유적답사 길에 양심적인 국내 역사학자나 동북지방의 공산당 관계자로부터 여러 증언과 자료를 듣고 받아 보아서 그 실체는 조금 이해하고 있으나, 아직도 대한민국의 백성들 대부분은 잘 모른다. 심지어는 지난날 '가짜 김일성'으로 배워온 찌꺼기가 남아서 그렇게 알고 있는 이도 더러 있다.

한 인물의 실체를 정확히 기술한 역사가 아쉽다. 한 인물의 업적을 정당하게 평가해야겠지만, 그 인물을 의도적으로 과장하거나, 반대로 폄하하는 일도 옳지 못하다. 한 인물에 대한 평가는 사후 100년이 지나야 바로 된다고 하니 아직은 시기상조일 테다. 솔직히 필자도 김일성 주석에 대한 실체적 진실 접근에 아직도 많이 부족하기에 이 기사에서 섣부른 평가는 삼갈 수밖에 없다.

보현사 뜰에서 바라본 묘향산
보현사 뜰에서 바라본 묘향산 ⓒ 박도
천하 으뜸 경치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 관람을 마치고 다시 향산 호텔로 돌아와서 점심을 먹은 뒤 묘향산 보현사로 갔다. 묘향산은 풍치가 하도 절묘하고 아름다우며 향기 그윽한 곳이라 하여 '묘향산(妙香山)'이라는데, 웅장하고 신비롭다는 뜻에서 '웅심산' 혹은 '삼신산'으로도 불렀다고 한다. 또한 이 산의 바위들이 유달리 희고 정갈하며 큰 산이라는 의미에서 '태백산'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한다. 이곳에서 산 관광안내책자의 일부만 옮겨본다.

묘향산 절경의 하나인 인호대(왼쪽), 신선이 내려왔다는 강선대의 가을 경치(오른쪽)
묘향산 절경의 하나인 인호대(왼쪽), 신선이 내려왔다는 강선대의 가을 경치(오른쪽) ⓒ <조선화보>
천하 으뜸 경치 묘향산은 구조상 다양하다. 예로부터 '8만 4천봉'이라 일러오듯이 묘향산은 웅장 수려한 여러 산줄기들에서 생긴 우아한 연봉들과 기암절벽들, 그 사이사이로 뻗은 여러 갈래의 골짜기들과 수정같이 맑은 옥계수, 여러 가지 모양의 수많은 폭포들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식물원과 자연동물원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이 명산에는 각종 희귀한 식물들과 동물들이 있어 사철 경치를 더욱 이름답게 장식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해당 부문 연구가들의 관심도 끌고 있다.

묘향산의 명승은 최고봉 비로봉(1909미터), 향로봉(1500미터)을 비롯하여 법왕봉 오선봉의 봉우리와 만폭동, 9층폭포, 칠성폭포, 비선폭포 금강폭포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폭포 등 지상만 아니라 지하에도 룡문대굴, 백령대굴에는 돌기둥 돌순 돌고드름 돌꽃들이 천태만상의 기묘한 풍경을 펼쳐 보이고 있다.


선녀들이 이 폭포에 비낀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는 비선폭포(왼쪽), 상원동에 있는 룡연폭포(오른쪽)
선녀들이 이 폭포에 비낀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는 비선폭포(왼쪽), 상원동에 있는 룡연폭포(오른쪽) ⓒ <조선화보>
하지만 묘향산 들머리에서 산에 오르지 못하고 산의 모양새만 바라보는 나그네의 마음이 아프기만 할 뿐이다.

"박 선생, 글만 잘 쓰면 북조선에 다시 올 수 있습니다. 그때는 혼자 오시지 말고 내외분이 같이 오셔서 이 묘향산에서 한 사나흘 머물면서 두루 두루 구경하고 가시라요. 그래야 제대로 구경할 수 있습네다."

심 안내원이 산을 바라보며 아쉬워하는 내 마음을 읽고서는 다시 이곳에 올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하지만 나는 쉬 다시 못 올 듯한 예감이 들었다.

보현사에서 바라본 묘향산의 원경
보현사에서 바라본 묘향산의 원경 ⓒ 박도

묘향산 만폭동의 유선다리
묘향산 만폭동의 유선다리 ⓒ 조선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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