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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석 목사님, 우선 목사님의 강의를 2시간 동안이나 듣게 된 점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지난 9월 22일 천주교의 한 단체에서 주최하고 있는 목요신학강좌 시간에 목사님의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저한테 목사님은 개신교 목사님이라기보다 사회운동가로서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특히 경실련 사무총장으로 이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다방면에 걸쳐 많은 일을 해오신 것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늘 개량한복을 입고 조선족 동포를 위해 열심히 봉사하는 훌륭한 지도자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 서경석 목사
ⓒ 오마이뉴스 이종호
목사님은 조용조용한 어조로 마치 가까운 이웃에게 말하는 것처럼 다정하게 강의를 해주셨습니다. 그동안 민주화운동을 해오며 박해당했던 이야기, 안타까운 개신교의 분열에 관한 이야기, 지금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국가정체성의 혼란에 관한 이야기, 시민단체의 바람직한 성격과 몰락 위기에 처하게 된 까닭 등 목사님의 강의 내용은 폭이 넓었고 무궁무진했습니다.

그날 강의 주제는 '신앙과 사회정의'였는데 그에 걸맞게 숱한 역경을 이겨내면서 지금도 사회운동에 헌신하고 계신 목사님의 모습이 말씀 하나하나에 그대로 배어나왔습니다. 저는 정말로 시원했습니다. 특히 사소한 견해의 차이로 자신을 내쫓은 후배를 진심으로 용서를 해주고 모든 기독교 관련 운동이 먼저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인식부터 해야된다는 말씀에 마음속으로 힘찬 박수를 보냈습니다.

목사님은 강의를 하시면서 '독선'을 제일 경계해야 된다고 수차례 말씀하셨습니다. 그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그동안 봐온 여러 운동을 사실적으로 예시하면서 이것이야말로 한시라도 빨리 없애야 할 큰 문제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선으로서 악을 이겨야 한다'는 성서 말씀을 마음에 깊이 간직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운동을 할 때에 상대방을 무섭게 증오했던 자세에서 벗어나 용서하며 사랑으로 그들을 순종하게 만드는 것이 진짜 참 승리라고 하셨습니다.

증오하는 마음이야말로 이제는 이 땅의 모든 운동에서 사라져야할 악이라고 단정하셨는데, 대부분의 수강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독선에서 벗어나야 된다는 것, 그리고 상대방을 증오하는 마음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것, 선으로 악을 이기도록 늘 노력해야 된다는 것 등 어느 하나라도 마음에 와닿지 않는 것이 없었습니다. 나도 그동안 살아오면서 나 자신의 언행만이 옳고 상대방의 언행은 다 그르며 꼭 없어져야 할 것으로 여긴 적이 없었는지 잠깐 되돌아보기도 했습니다.

감동 가득했던 강의의 갑작스런 반전

목사님의 잔잔한 강의에 푹 빠져 들어갈 때에 이야기는 현재의 국내 상황으로 바뀌었습니다. 근래에 조선족 돕기나 어려운 이웃나라 돕기, 북한 동포 돕기 등의 사회운동에 심혈을 기울이다가, 나라 돌아가는 꼴이 도저히 눈 뜨고는 볼 수가 없어 이 모든 것을 잠시 접고 이 나라를 제대로 바로잡기 위한 운동에 전념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최 측에서 나누어준 자료에 목사님을 '기독교 사회책임 공동대표'라고 썼는데, 그 단체의 성격을 소개하며 이 나라가 지금 몹시 흔들리고 있는데 정신 똑바로 차리고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모두가 애를 써야된다고 역설하셨습니다. 이 땅의 수많은 기독교인들도 교회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사회운동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일해야 된다고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나라의 위기를 거론하는 대목에서 내용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난데없이 386 얘기가 나왔습니다. "현재 위기는 바로 386 좌파가 나라를 잘못된 방향으로 좌지우지 하고있기 때문이며, 그들이 내세우고 있는 모든 일련의 사회주의 정책이 이 나라의 정체성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며 비난을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과도한 평등주의, 지나친 편가르기, 포퓰리즘 등을 거론하며 그들을 향해 격한 어조로 분노를 표현하셨습니다.

목사님은 '386 좌파'라는 용어를 수차례 사용하며 그들이 이 나라를 결딴내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다음 정권은 절대로 386이 잡아서는 안되며 어느 정권이 되더라도 '386 좌파'는 단 한 명이라도 가까이해서는 안된다고 역설하셨습니다.

저는 순간 황당했습니다. 지금까지 강의를 들으며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이며 감동까지 받은 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386이 밉고 싫었으면 그동안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 같이 차분한 어조로 강의를 했던 태도에서 벗어나 목소리가 커지고 빨라졌으며 인상이 강한 투사처럼 무섭게 변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상황이 왔는지 저는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앞에서 들었던 그 좋았던 강의 내용이 한 순간에 깨져버리는 듯 엄청난 충격에 빠져들었습니다. 큰 감동이 이렇게 생각지도 않은 상황으로 말미암아 큰 실망으로 변할 줄이야 정말 몰랐습니다.

독선을 경계하라더니 386을 절대 안된다고요?

목사님. 목사님께서는 독선이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운동을 하든지 간에 먼저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며 죄인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386 만은 안 된다니요? 절대로 정권을 잡아서도 안되며 그들은 정권 근처에 가서는 안된다니요?

저도 그들이 지금 정치를 잘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그렇게 비난하지는 않습니다. 사랑을 이야기하고 독선을 경계하는 목사님은 그들을 위해서 건전한 비판은 하되 이 나라의 어른답게 그들을 잘 이끌어주고 껴안아주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것이 '기독교 사회책임'이란 단체의 공동책임을 맡은 목사님이 하셔야 할 일이 아닌가요?

목사님은 독선의 위험함을 여러번 우리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독선에 목사님이 가장 깊이 빠져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만이 옳고 상대방은 잘못이라는 생각 말입니다. 목사님은 증오의 운동문화를 종식시켜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목사님이 그 어느 누구보다도 증오심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설령 386이 하는 언행이 못마땅하다 하더라도 가까이에 둬서는 안될 그런 부류로 여겨서야 되겠습니까? 목사님의 강의를 열심히 귀를 쫑긋 세우고 그 어느 때보다도 잘 들었는데, 그만 마지막 20여분간에 걸친 현 정부의 정책과 386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격렬한 비난이 찬물을 끼얹고 말았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이 누누이 강조한 독선에 대한 경계,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인식을 갖는 것, 증오의 운동문화에서 벗어나는 것 등 저의 가슴 한복판에 깊이 와 박힌 것들은 잘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세로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386에게 퍼부은 엄청난 비난은 제가 배우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목사님께서 정성을 들여 강조한 정신을 정면으로 어기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부디 앞으로 그 좋은 정신으로 목사님께서 하시는 사회운동이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을 모두가 사랑으로 아우르며 미래의 선진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 데 큰 힘이 되어주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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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즈음 큰 기쁨 한 가지가 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마이뉴스'를 보는 것입니다. 때때로 독자 의견란에 글을 올리다보니 저도 기자가 되어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우리들의 다양한 삶을 솔직하게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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