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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린이에게 용돈을 주는 어머니. 언제부터인가 우리 집 실세가 아버지에게서 어머니로 바뀌었다.
세린이에게 용돈을 주는 어머니. 언제부터인가 우리 집 실세가 아버지에게서 어머니로 바뀌었다. ⓒ 장희용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상황이 180° 바뀌었다. 그 막강한 권한을 마음 놓고 휘두르시던 아버지가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어머니의 기세(?)에 항상 코너로 몰리신다. 잘 모르겠지만 두루 뭉실 추측해 보면 대략 그냥 나이가 드시면서부터 이렇게 상황이 바뀌었다. 그래서 예전에는 어머니 편을 많이 들었는데, 요즘은 형이나 누나, 그리고 나까지 모두 아버지 편이다.

그래서 언제인가 내가 어머니한테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그만 좀 괴롭히지” 그랬더니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또 고자질 했냐? 이 놈의 영감탱이가’하시더니 ‘이봐! 할아배! 할아배 어딨어’하시면서 아버지를 찾는데, ‘아, 괜히 말했다’하는 후회감과 함께 어머니한테 또 당하실 아버지가 떠올랐다. 실제로 아버지는 어머니의 구박을 넘어 보복조치를 받으신 경우도 많다.

언젠가는 “야, 애비야. 니 엄마가 아버지가 잘못 했다고 글쎄 저녁도 안 차려 준다. 나 니 집에 가야겄다”면서 아군인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셨다. 그 날은 어머니가 고추에 약을 주자고 하셨는데, 아버지가 요리조리 피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 어머니 동네 마실 나갔을 때 몰래 전화한다는 것이 그만 일찍 돌아오신 어머니한테 들켜서 가중치로 보복을 받으셨다고 한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아무리 그래도 니 아버지 저녁이야 굶기겄냐’ 했는데, 아버지가 나한테 고자질 하는 것이 괘씸해서 정말로 저녁 안 차려 줬단다. 그랬더니 혼자 슬그머니 부엌으로 가 라면 끓여 드시더란다. 그러고 보면 어머니의 보복이라는 게 밥을 안 차려 주는 건가 보다. 그래서 집에 가면 라면이 항상 있었나? 이런 사정을 몰랐을 때에는 집에 라면이 있어도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알고 보니 그 라면은 아버지 나름대로의 비상식량인 셈이었나 보다.

자식이 이렇게 말해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이래저래 해서 이래저래 했다며 두 분이서 번갈아 가면서 전화를 하시고는 억울함과 속 터짐이 발생하게 된 계기부터 과정, 그리고 결말까지 아주 자세히 말씀하시는 것을 가만히 수화기를 통해 듣다보면 알콩달콩 신혼부부 같다는 생각에 속으로 막 웃는다. 그래서 아버지가 조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보기 좋다.

마늘을 까달라고 했는데도 아버지는 모른 척 잠만 주무셨다고. 그래서 어머니한테 보복(?)을 당하셨단다.
마늘을 까달라고 했는데도 아버지는 모른 척 잠만 주무셨다고. 그래서 어머니한테 보복(?)을 당하셨단다. ⓒ 장희용
아참,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안 했구나. 오늘 아버지가 전화하신 건 아버지가 어제 저녁에 어머니를 도와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마늘을 까는 데 아버지는 누워서 드라마를 보셨단. 어머니가 ‘조금 남았으니 얼른 끝나게 마늘 좀 까주지?’하길래 아버지는 들은 체 만 체. 어머니가 좀 더 큰 목소리로 ‘마늘 좀 까주지?’해서 귀찮아서 획 돌아누워 그냥 눈을 감으셨다고.

아버지 말씀, 만약 내가 거기까지만 했으면 어머니는 그냥 속으로만 뭐라 하셨을 텐데, TV 리모컨을 찾더니 TV를 끄셨다나 뭐래나. 아버지도 그 순간에 왜 그랬는지 당신도 잘 모르겠다고 하신다. 아무튼 어머니는 ‘무슨 심술이냐’며 화를 버럭 내시고는 아버지가 덮고 계시던 이불을 확 끌어 당겨 저 멀리 던져버리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좀 추웠다고 했다. 하지만 자존심에 꿋꿋이 버티고 그냥 주무셨다고 한다.

하지만 새벽까지 혼자서 마늘을 까신 우리 어머니는 마늘 하나 하나를 까면서 다짐했나 보다. ‘이 놈의 영감탱이 내일 아침 밥 주나 봐라’라고. 이런 어머니의 결심은 실천으로 이어졌으니, 어머니 일어나시자마자 부엌으로 가시더니 뭔가를 가지고 왔는데, 어느 새 다시 가져와 덮고 있는 이불 위로 획 던지더니 ‘마늘 장사한테 마늘 갔다 주러 간다’는 말과 함께 방을 나가시더란다. 아버지가 반쯤 일어나 쳐다보니, 그건 신라면이었다고.

여기까지가 내가 아버지한테 들은 이야기 전부다. 전화가 중간에 끊겼기 때문이다. 아마 내 추측으로는 우리 아버지 나한테 전화하다 마늘 주러 갔다 돌아오시는 어머니를 발견한 것 같다.

그나저나 신라면은 지금 다섯 개일까? 아니면 네 개일까? 거 참 궁금하네. 하지만 이런 나의 궁금증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빠르면 내일 아침, 늦어도 내일 저녁까지는 아버지가 또 전화하실 것이다.

아버지 말씀대로 가장 확실한 노후보험으로 아내한테 잘하기로 했다. 그런데 설마 아내가 이 기사 읽고 ‘왜 내 얼굴 제대로 나온 게 없냐, 관심이 없는 것 아니냐?’면서 보험료 올리는 건 아니겠지?
아버지 말씀대로 가장 확실한 노후보험으로 아내한테 잘하기로 했다. 그런데 설마 아내가 이 기사 읽고 ‘왜 내 얼굴 제대로 나온 게 없냐, 관심이 없는 것 아니냐?’면서 보험료 올리는 건 아니겠지? ⓒ 장희용
아참 또 잊어버렸다. 정작 중요한 말을 안 했다. 요즘 TV광고 중 유행하는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라는 카피를 잠시 인용하면, 아버지는 말씀 끝에는 항상 이 말씀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꼭 하셨다.

“애비야, 너도 늙어서 구박 안 받으려면 에미한테 잘해라. 요즘은 뭐, 뭐라더라 노후보험? 뭐 그런 게 있다고 그러더만, 아버지가 배운 건 없어도 칠십 평생 살면서 느낀 건데, 남자들은 늙으면 다 애 된다 애. 그러니 그 애를 누가 돌봐 주겄냐. 니 옆에 있는 사람 밖에 더 있냐. 그러니 에미한테 잘해라.”

그래서 난 아버지 말씀대로 오늘 가장 확실한 노후보험으로 아내한테 잘하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 천 원짜리 장미꽃 하나 사들고 갈란다. 이제 노후보험 들었으니 나는 애가 되도 아무 걱정이 없겠다.

덧붙이는 글 | 다른 남편분들께서도 이 보험 한 번 들어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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