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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일 하다 얼떨결에 보게 된 방송

지난 20일 저녁 7시 20분에 방송된 MBC < TV특종 놀라운 세상>에서 타일로 뒤덮인 자동차에 관한 사연을 방송했습니다.

모두 네 꼭지로 이뤄진 이날 방송 맨 마지막에 방영된 '엽기자동차에 숨은 사연'은, 제가 지난 9월 4일에 기사화했던 '시각 공해? 삶을 위한 자구책?'을 읽고 취재한 내용이 틀림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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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공해? 삶을 위한 '자구책'?

행여라도 자동차 주인에게 누가 될까봐 일부러 동 이름을 빼고 올린 기사 때문에 자동차의 소재를 알지 못한 취재팀은 무작정 대전 대덕구를 수색(?)했다고 합니다. 대전에 내려온 취재팀은 어렵사리 자동차를 발견하긴 했지만, 하룻밤을 잠복하고 난 그 다음 날에야 타일 자동차의 주인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타일 자동차 주인 박명수씨
타일 자동차 주인 박명수씨 ⓒ 김유자
차의 주인은 대덕구 중리동에서 타일 시공업을 하고 있는 박명수(49)씨였습니다. 그분 말로는 이 타일 자동차 제작에 꼬박 2년이 걸렸으며 제작비만 200만원이나 들어갔다고 하더군요. 타일 자동차 제작에 들어간 타일의 개수를 정확하게 셀 수는 없지만, 버린 것까지 합치면 만장 이상이 들어갔을 거라고 합니다. 들어간 타일을 무게로 환산하면 200kg이 넘는 무게랍니다.

자동차에 이렇게 무거운 중량이 실리다보니 한 달 기름값만 자그마치 60만원이 들어간답니다. 그래서 차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운전석을 제외한 나머지 의자를 전부 떼어냈다고 합니다. 달리다보면 차에서 타일이 떨어질 가능성에 착안해서 강력한 수압을 가진 물을 뿌려보더군요. 하지만 타일은 꼼꼼하고 단단하게 붙어 있었습니다. 이 차를 운전하고 거리에 나서면 사람들은 이 엽기적인 차를 찍느라 야단법석이라고 합니다. 때로는 차를 쳐다보느라 신호를 놓치기까지 한답니다.

그런 게 처음에는 미안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사람들의 시선을 부담스러워 하기보다는 즐긴다는 박씨. 그는 일과가 끝나는 늦은 밤 시간이면 꼬박꼬박 PC방에 들리곤 합니다. '영혼을 수놓는 타일'이라는 자신의 누리집 관리를 위해서랍니다. 소년 소녀 가장들이 자신의 누리집에 올리는 욕실 공사를 신청하는 사연을 읽기 위해서랍니다. 사연을 읽고 무료로 타일 시공을 해줍니다. 박씨는 자신의 사업이 어려웠을 때도 이 일만은 빼놓지 않고 계속해 왔다고 합니다.

소년소녀 가장집에 타일을 시공하고 있는 박명수씨
소년소녀 가장집에 타일을 시공하고 있는 박명수씨 ⓒ 김유자

주방 벽에 붙여진 가족 사진을 인화한 타일. 박명수씨는 여러가지로 자상한 분이다.
주방 벽에 붙여진 가족 사진을 인화한 타일. 박명수씨는 여러가지로 자상한 분이다. ⓒ 김유자
"내 자신을 위해서 남을 돕는다"

방송은 할머니와 함께 사는 한 소녀 가장 세대의 욕실을 수리하는 과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시공할 타일을 아이들이 직접 마음에 드는 타일을 고르도록 하기 위해서 자신의 자동차로 데리고 가서 고르도록 하더군요. 박씨가 차를 온통 타일로 꾸민 것은 단순히 타일을 홍보하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박씨는 여러 가지로 사려깊고 자상한 분이었습니다. 아이들이 고른 밝고 깔끔한 색에 예쁜 그림이 들어가 있는 타일로 욕실을 바꾸고나더니 나이 많으신 할머니가 일하시기 좋게 주방까지 손봐주더군요. 그렇게 해서 어둡고 침침한 공간이 환하고 아름다운 공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아이들의 얼굴도 덩달아 환해졌습니다. 너무나 고마운 나머지 할머니는 눈물까지 글썽거리십니다.

고마워 눈물 흘리는 할머니
고마워 눈물 흘리는 할머니 ⓒ 김유자
박씨를 지켜본 이웃 사람들은 "자기도 생활이 어려운데 남을 도와주고 산다"면서 그의 선행을 칭찬했습니다. 박명수씨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남을 위해 돕는 게 아니라 제 자신을 위해서 남을 돕고 싶습니다."

이런 맛에 기사를 쓰나 봅니다

사실 제가 이 기이한 차를 발견하고 사진을 찍어 올릴 때는 "이런 게 무슨 기사 거리가 되랴"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기사가 떡하니 메인서브로 배치되는 것이었습니다. 기사에 대한 반응도 갖가지였습니다. "뭐 이런 걸 기사랍시고 올렸냐"라는 쪽지를 날린 분도 있었고, 자칭 차 주인이라는 분은 "이 거 말고 타일 스티커 붙인 트럭도 있어요"라는 쪽지를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기사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에 제보할까 하는데 제게 동의를 얻고 싶다는 쪽지도 있었습니다.

그런 반응에 일희일비할 필요 없다는 생각 때문에 그저 그러려니하고 넘기고 말았지만. 기사에 대한 반응은 생각 외로 열띤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제가 생각하기엔 아무 것도 아닌 기사를 적절하게 배치한 편집부의 감각이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제가 쓴 기사가 결과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선행을 베푸는 한 평범한 시민을 발굴해내는데 일조했다는 점이 저를 몹시 기쁘게 했습니다. 이번 일은 두고 두고 흐뭇한 기억이 될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20일 밤, 부엌일을 하다 엉겁결에 방송을 보게 되어 화면 캡쳐 등 아무런 준비가 없는 상태여서 '다시보기'를 통해서 내용을 다시 확인하고 화면 캡쳐를 하느라 이제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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