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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포 경수로 공사 현장.
신포 경수로 공사 현장. ⓒ KEDO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 먼저 미국이 경수로 제공 의사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4차 6자회담 공동성명에서는 "적절한 시점에 경수로 문제를 논의한다"고 돼 있다. 미국이 이 입장을 고수하는 한 북핵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북한이 반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핵을 포기하고 나서, 경수로를 줄지 말지를 논의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것이다. '만약 그때 가서 경수로를 제공하지 않는 쪽으로 결론이 나면 우리만 꼼짝없이 당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다. '핵의 평화적 이용권은 완전히 물거품이 된다'는 게 북측의 주장이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경수로를 이용, 핵무기를 만들 것을 우려해 경수로 제공을 주저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지나친 기우다. 핵전문가들은 경수로에서 핵무기를 만들 핵연료를 추출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우라늄을 원자로에 넣고 태우는 기간이 짧을수록 핵무기의 원료로 적합하다고 한다. 통상 중수로는 우라늄을 1년간 태우는 반면 경수로의 경우, 우라늄을 경수로에 한번 집어넣으면 3년간 태운다.

따라서 중수로에서 태우고 난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하면 핵무기를 만들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지만, 경수로에서 태우고 난 '사용후 핵연료'는 핵무기의 원료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은 혹시 경수로에서 태우고 난 '사용후 핵연료'를 이용해 북한이 플루토늄을 추출하지 않을까 염려하는데, 이는 결코 쉽지 않다고 핵전문가들은 주장한다. 미국은 이 작은 가능성조차 북한에 허용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만약 미국이 경수로에서 핵무기를 만들 핵연료 추출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면, 1994년 제네바합의에서는 왜 북한에 경수로를 지어주겠다고 약속했는지 그 이유를 밝혀야 한다.

신포 경수로 공사 재개, 북·미 양측의 요구 모두 충족시킬 수 있어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면, 새 경수로를 짓기보다는 현재 공사가 중단된 함경남도 신포 경수로 공사를 재개하는 게 낫다. 신포 경수로 공사를 재개할 경우,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

먼저 북핵 문제를 빠른 시간 내에 매듭지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매우 호의적으로 협조해도 IAEA가 북한의 핵 시설과 핵 활동을 사찰·검증하는 데 최소한 1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완전히 폐기하기까지는 적어도 3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본다. 일부에서는 10년까지도 예상하고 있다. 따라서 북핵 문제를 빠른 시간 내에 해결하려면 북한과 미국이 서둘러 구체적인 일정에 합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북한의 NPT 복귀와 신포 경수로 공사 재개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이는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나아가 공사가 완공될 때까지 북한이 IAEA의 핵 사찰 및 검증을 받음은 물론 핵 시설까지 완전히 폐기한다면, 북·미 양측의 요구는 모두 충족되는 셈이다.

또 공사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신포 경수로 공사는 2003년 12월 중단됐을 당시 이미 3분의 1 정도 공사가 진척된 상태였다. 전문가들은 신포 경수로 공사를 재개할 경우 이르면 2011년께 완공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여기에 들어간 비용도 무려 15억4000만 달러다. 이중 11억2000만 달러를 우리 정부가 부담했다. 결국 신포 경수로 공사를 재개하면, 공사 기간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동안 투자된 비용도 살릴 수 있다.

이와 함께 우리 정부의 부담도 줄일 수 있다. 신포 경수로 공사의 주체인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는 한국·미국·일본·유럽(EU)이 회원국이지만, 실제 공사비 가운데 70%는 우리 정부가 부담했다. 만약 KEDO에 6자회담 참가국인 중국·러시아를 새로 포함시키면, 우리의 부담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9·19 6자회담 공동성명'에서 회담 참가국들은 북한에 에너지 제공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이 두 나라에 일정액을 부담시키는 것은 큰 무리가 안된다.

경수로 건설과 대북송전 비용은 통일비용의 일부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경수로 건설 비용과 지난 7월에 약속한 200만kw의 대북 전력 지원 비용을 우리가 모두 떠안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사실 200만kw 대북 송전을 위한 설비 건설비가 2조5000억원, 연간 전기 생산비가 약 1조원이나 들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그러나 경수로가 완공되면 대북 전력 지원을 중단하면 된다. 다시 말해 대북 송전은 경수로 공사가 완공될 때까지 하면 된다는 얘기다. 그러면 이중 부담을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그럴 경우, 대북 송전 시설이 무용지물이 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대북 송전 시설을 통일비용의 일부로 간주한다면 크게 문제될 게 없다. 나중에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 너머 산, 벽 너머 벽을 넘어" 6자회담 공동성명이 나왔다. 회담 참가국들이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 유연한 협상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5차 6자회담을 앞두고 다시 한번 이 같은 협상 자세가 요구되고 있다. 6자회담 우리측 수석대표인 송민순 차관보의 발언은 그런 점에서 곱씹어 볼 만하다.

"외교는 협상을 통해 타협을 하는 예술이다. 합칠 수 없는 것도 합치는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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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현 기자는 오마이뉴스 고정 칼럼니스트입니다. 건국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연구위원을 거쳐 94년 <중앙일보>에 입사, 현대사 및 북한 담당 전문위원을 역임했습니다. 현재 <오마이뉴스> 부사장 겸 건국대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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