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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타쥐르의 앙티브 해변.
ⓒ 배을선
눈이 시리도록 푸른 지중해를 마주하고 있는 프랑스 남부는 우리가 흔히 부르는 '남불', '남블란서'가 아닌 '프로방스(Provence)'라는 멋진 이름을 가지고 있다. 프로방스는 지역에 따라 제각각 이름을 갖고 있는데, 카지노의 나라 모나코(Monaco) 몬테카를로, 여름 휴양지로 유명한 니스(Nice), 영화제로 유명한 칸(Cannes), 그리고 브리짓 바르도가 주연한 영화촬영지로 널리 알려진 쌍 트로페(St. Tropez)까지를 잇는 해안선은 특별히 '코타쥐르(Côte d'Azur)'로 불린다.

코타쥐르는 유럽인들이 여름휴가를 보내고 싶은 지역으로 언제나 상위를 차지하는 곳이자, 부유한 유럽인들, 할리우드 스타들의 부동산 투자지역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뜨거운 여름을 제외하면 일년 내내 온화하고 따뜻한 기후를 만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 곳에 정착해 그림을 그린 세계의 유명한 화가들도 셀 수 없이 많다. 마티스, 샤갈, 장 콕토, 고흐, 고갱, 그리고 피카소...

코타쥐르에서는 이들 중 피카소의 인기가 단연 높다. 아를(Arles)에서 그림을 그린 고갱이나 노년을 니스에 정착해 살았던 마티스도 후배인 피카소의 인기만 못하다.

코타쥐르에서 만난 피카소

그런데 왜 피카소일까.

우선, 피카소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20세기 최고의 화가라는 점이 있지만 피카소는 다른 화가들이 프로방스의 한 도시에 정착해 그림을 그린 것과 달리, 무젱, 앙티브, 발로리, 칸 등 여러 도시에서 생활했기 때문이다. 특히 피카소는 동시대의 그 어떤 화가들보다 정치적이기도 했다.

일례로 스페인 태생인 그는 비인류적인 스페인 내전이 계속되는 동안 스페인 땅을 한번도 밟지 않았을 정도다. 그는 "인류의 정의가 실패할 수 있음을, 인간의 정신이 폭력에 꺾일 수 있음을, 그리고 용기가 무망하게 산화할 수 있음을 스페인에서 배웠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 발로리의 피카소미술관 건물. 샤토발로리라 불리는 성에서 지금의 박물관으로 태어났다.
ⓒ 배을선
코타쥐르의 두 도시 앙티브(Antibes)와 발로리(Vallauris)에는 각각 피카소 미술관이 위치하고 있다. 이 두 미술관은 파리의 미술관에 비해 규모도 작고 전시된 작품수도 많지 않으며, 하루 관람객들의 수도 적지만 나름대로 정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피카소, 발로리에서 한국전쟁 관련 그림을 그리다

사실, 앙티브 미술관과 발로리 미술관은 한국과 한국인들에게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이 이곳 발로리에서 그려졌기 때문이다.

▲ <한국에서의 학살>
제 2차 세계대전으로 히틀러가 폴란드를 비롯해 유럽의 여러 나라를 침공했을 당시 피카소는 앙티브에 머물며 평화를 갈구하는 그림을 그렸다. 한국전쟁이 시작된 1950년에는 도자기 작업으로 유명한 도시 발로리에서 전쟁과 평화를 상징하는 벽화를 제작했다. 이 시기에 그는 '피스 무브먼트(Peace Movement)'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이는 한국의 평화를 염원하는 목적에서였다.

▲ 발로리의 피카소 미술관 내부에 걸린 피카소 사진.
ⓒ 배을선
<한국에서의 학살>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개입을 비판하며 그려진 작품이다. 당시 프랑스 공산당에 소속되어 있어 표면적으로는 북한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였던 피카소는 사실 당적을 떠나 모든 폭력과 전쟁에 반대했다.

<한국에서의 학살>을 보면 무방비상태로 보이는 나체의 여성들과 순진한 아이들이 왼쪽에 서서 총구를 겨누고 있는 병사들과 대치하고 있다. 두 명의 여성은 임산부이고 병사들은 기계인지 사람인지 모를 정도로 무장을 하고 있다. 여성과 아이들이 꼭 한국인들처럼 보이지 않고, 병사들도 꼭 미국군인들처럼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서의 학살>은 한국에서의 평화를 기원하는 계기로 그려졌지만 한국전쟁과 관련된 특수성보다는 모든 폭력과 전쟁에 반대하는 피카소의 보편적 관점을 보다 더 절실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피카소는 이 작품을 발로리에서 그렸으나 현재는 파리의 피카소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이 시기 피카소는 특별히 한국 평화를 염원했다"

항상 전쟁과 폭력에 반대한 피카소는 발로리에서 작업하는 동안 기념비적인 작품을 남기고 싶어 했다. 누구보다 경쟁심이 강했던 그는 샤갈과 마티스가 이웃의 작은 도시인 방스(Vence)의 예배당을 장식하는 그림을 그리자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그가 작은 예배당을 꾸미는 일을 싫어하거나 무시했던 것은 아니다. 기왕이면 예배당을 역사적인 '평화의 전당'으로 바꾸자는 것이었는데 그 당시 한국전쟁이 막 발발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피카소는 12세기에 건축돼 1791년 프랑스 혁명 이후 사용이 중지된 발로리 성의 예배당에 벽화를 그릴 수 있도록 허락을 받게 된다. 피카소의 대작 <전쟁과 평화>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 <전쟁과 평화> 중 평화(위)와 전쟁(하).
'피카소 전쟁과 평화 국립박물관'으로 불리는 이 예배당은 발로리 도자기 박물관 및 피카소도자기박물관과 함께 위치해 있다. 입구로 들어가면 피카소의 도자기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예배당 깊숙이 들어가면 왼쪽의 '전쟁'과 오른쪽의 '평화', 그리고 원래 예배당의 문을 막아버린 작품 '세계의 4부분'이 전시되어 있다. 검정, 노랑, 빨강, 그리고 하얀 인류가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떠받치고 있는 이 패널(Panel)은 '전쟁'과 '평화'를 잇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

▲ 발로리 광장에 세워진 피카소의 <양을 들고 있는 남자> 청동조각상.
ⓒ 배을선
이 작품은 한국전쟁 시기와 유사하게 1950년 시작돼 3년에 걸쳐 완성되었으며 1954년 이 예배당에 영구적으로 설치되었다. 이 시기의 피카소는 프랑수아 질로와 함께 살았는데, '전쟁'의 하얀 방패에는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와 프랑수아 질로의 얼굴이 오버랩 되어 그려져 있고 '평화'에는 한국을 상징하는 태극문양이 그려져 있다. 박물관의 안내 팸플릿에는 "이 시기의 피카소는 특별히 한국의 평화를 염원했다"고 적혀있다.

미술관 밖의 광장에는 피카소의 유명한 청동조각상인 <양을 들고 있는 남자>가 서있다. 그는 이 조각상이 실내에 있지 않고 광장이나 거리에 세워질 수 있도록 계획했다. 그 위로 아이들이 올라가서 놀고, 개가 동상 밑에 오줌을 누어도 되게끔 말이다. 실제로 광장의 조각상에는 낙서와 스티커가 붙어있으며 쓰레기가 널려있고 소변냄새가 나기도 한다. 그 주위를 아랍 이민자들이 삼삼오오 둘러싸고 한가로이 시간을 때우고 있는데, 그 모습이 정말 한가하고 평화로웠다면 잘못된 해석이라 불릴까.

피카소의 기록 "예술가는 정치적 존재다"

앙티브의 피카소미술관에도 평화를 염원하는 작품이 전시돼 있는데 <삶의 기쁨(Vivre de Joi)>이 그것이다. 피카소는 평화로운 곳에서 아이들이 춤추는 장면을 상상하며 살아가는 기쁨을 묘사했다. 앙티브 미술관의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인 <삶의 기쁨>을 제대로 보려면 언제나 웅성웅성 모여든 관람객들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 앙티브 미술관에 전시된 피카소의 <삶의 기쁨> 앞은 언제나 관람객들로 붐빈다.
ⓒ 배을선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앙티브로 피난을 왔던 피카소는 당시 넓은 작업실이 필요했다. 앙티브 시로부터 그리말디(Grimaldi)성에서 작업을 하도록 배려를 받은 피카소는 끝없이 펼쳐진 지중해를 마주하며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려나갔다. 피카소는 이 시기에 그린 많은 작품을 그리말디성에 기증했으며, 피카소의 두 번째 부인 잭클린도 피카소 사후 많은 작품을 앙티브 피카소미술관에 기증했다. 그리말디성은 후에 앙티브 미술관을 거쳐 지금의 피카소미술관으로 바뀌어 부르게 된다.

이제 그가 세상을 뜬 지 32년이 흘렀다. 피카소의 염원과는 달리 지구 곳곳에서는 여전히 폭력과 테러가 행해지고, 한국은 전쟁 이후 분단국가가 되었다. 지구상에서 아주 완벽한 평화시대는 결코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피카소 같은 정치적인 예술가들이 존재하는 한 평화는 미술관의 캔버스 위로, 동네 광장의 작은 조각상 위로,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마음 안으로 빛처럼 새어들 것이다.

"예술가는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파괴적이거나 결정적인 사건, 혹은 가슴 훈훈한 사건들을 끊임없이 의식하면서 살고, 그것들로부터 자신을 형성해가는 정치적 존재다."- 시몬 테리를 위한 피카소의 기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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