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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문화센터
심청문화센터 ⓒ 조갑환
곡성군에서 말하는 바로는, 심청전은 곡성군 오산면에 위치한 관음사의 연기설화가 그 뿌리라고 한다.

맹인 원랑이라는 사람이 곡성현에 살았는데 일찍이 아내가 죽고 홍장이라는 딸과 둘이서 살고 있었다. 어느날 공덕을 쌓으면 눈을 뜰 수 있다는 스님의 말을 듣고 외딸 홍장을 시주했다는 것이다.

당시 중국의 진나라 황제는 황후가 죽고 난 후 외로움에 젖어 있던 중 꿈을 꾸었는데 동국의 소량포에 가면 부인을 만날 수 있다는 꿈이어서 신하를 동국의 소량포에 보내어 홍장을 데려와 황후로 삼았다는 것이다. 홍장은 황후가 되었지만 고국에 있는 아버지를 잊지 못하여 관음상을 만들어 바다 건너 동국으로 보내 고향에 있는 성덕산에 안치하고 관음사를 창건했다는 설화다.

홍장의 이야기가 이웃 남원의 판소리 문화의 발전에 따라 심청전으로 자연스레 변화했다는 것이다. 남원에서는 곡성의 원홍장 이야기를 심청가로 변화시켜서 판소리로 불러왔고 지금의 심청가로 발전했다고 말한다.

9월 10일, 추석 앞에 처갓집을 찾았다. 호남고속도로에서 옥과 나들목으로 들어서 오산면 소재지로 들어가는 국도 15호선을 탔다. 길 양편으로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피어있어 여유로움이 한껏 깃든 한적한 2차선 도로다.

화순 북면으로 빠지는 15번 국도를 달리다 보면 길 옆에 '효'공원을 조성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이 공원에는 당시 심청이 타던 배와 뱃사람, 심청전 배역인물들을 장승으로 만든 조형물 23기와 심청효행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곡성 오산면이 심청의 고향, 효의 본고장임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심청공원
심청공원 ⓒ 조갑환
아내가 다녔던, 지금은 폐교된 오산면 성산초등학교에는 '심청문화센터'가 들어서 있다. 이 문화센터는 현대의 희미해져가는 효의 위상과 의미를 재정립하겠다는 목적에서 지어졌다. 이곳에는 문화체험센터숙박시설, 야외놀이공원, 전통문화전수관 등이 있어 관광객들이 놀이를 통해 우리의 전통문화를 자연스레 익히고 현장체험을 할 수 있도록 계절별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아내는 이 문화센터를 보자 옛날 초등학교 시절이 무척 생각나나보다. 자신이 다니던 초등학교 시절의 친구 얘기들을 옆에서 참새처럼 재잘거렸다. 학교는 40년 전 그대로이고 들과 마을도 변하지 않아서 지금이라도 친구들을 부르면 금방 뛰어 나올 것만 같다는 것이다.

불타지 않고 남아있는 관음사의 별채
불타지 않고 남아있는 관음사의 별채 ⓒ 조갑환
국도에서 관음사로 들어가는 방향으로 접어 들었다. 백아산 줄기의 골짜기를 따라 5km 정도 들어갔다. 관음사에 들어서니 인기척이라고는 없이 고즈넉하다. 몇 분의 학승이 TV를 보느라고 사람이 왔는지 어떻는지 관심도 없다.

관음사는 백제 분서왕 3년(서기 300년)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백아산과 관음사는 6ㆍ25 당시 '공비'들과 국군과의 격전이 있었던 곳이다. 이곳은 소설 <남부군>의 초기 무대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당시 유물들이 많이 타버렸다. 관음사의 건물 8채 중 3채만이 타지 않고 남아 있고, 대웅전 및 주요 건물들은 전부 최근에 새로 지은 건물들이다.

아내의 고향 곡성군 오산면에 가면 심청의 얼을 느낄 수 있다. 심청의 원형, 원홍장 처녀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삼백석에 뱃사람들에게 팔려갔던 아름다운 이야기의 무대이다.

 

덧붙이는 글 | '내 고향 명소'에 응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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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행에 관한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여행싸이트에 글을 올리고 싶어 기자회원이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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